정신분석 통한 인간성 탐구와 동시대 예술정신 결합

발레에서의 '고전 파괴자'는 누가 있을까. 최근 몇 년 동안 활발한 공연을 하고 있는 매튜 본이 먼저 떠오르지만, 고전 발레 텍스트를 파격적으로 재해석하는 작업은 마츠 에크가 원조다.

마더 콤플렉스 왕자와 스킨 헤드 백조, 게이샤들의 봄의 제전, 마약중독에 걸린 요염한 오로라 공주, 담배를 문 카르멘 등 다소 과격하면서도 현대와 동양을 접목시키는 실험에서 평단은 에크를 높게 평가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29일부터 이틀간 공연되는 마츠 에크의 <지젤>은 그를 세계적으로 주목받게 한 작품이다. 낭만발레를 대표하는 <지젤>은 문외한들도 알 만큼 유명한 고전이지만, 평소 "세월이 지나도 깊이와 감동을 느낄 수 있는 고전은 오히려 너무 유명해서 사람들의 상상력을 가둔다"고 말했던 에크는 이 작품에서 특유의 비틀기 시선을 즐기고 있다.

순백의 정령들, '지젤 라인'으로 잘 알려진 청순한 지젤의 이미지는 에크의 <지젤>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재해석된 지젤은 원래 좀 모자란 소녀로, 막이 오름과 동시에 맨발로 나타나 밧줄을 허리에 감고 나서며 곧 다가올 사랑의 비극을 암시한다. 순진한 시골처녀가 무분별한 사랑에 빠진 끝에 비극으로 치닫는 설정은 언뜻 고전과 그 맥을 같이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1막에서 알브레히트에게 버림받은 지젤이 2막에서 정령인 윌리들의 숲 속이 아니라 정신병원의 한 병실에 등장하며 변주는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죽은 지젤의 동료들은 윌리가 아니라 정신병자들이다.

윌리들의 리더인 미르타는 여기서는 수간호사로 출연해 색다른 위용을 선보인다. 병원 가운을 입은 광기 어린 지젤이 빚어내는 각양각색의 파장에선 현대의 옷만 바꿔입은 원작의 아우라가 그대로 느껴진다.

또 원작의 낭만성이 재해석되는 과정에서 보다 현실적인 느낌을 갖게 된 것도 흥미로운 설정이다. '페전트 파드 되'로 유명한 1막의 농부들의 춤에선 원작의 순수함이나 공동체 의식 같은 것이 느껴지지 않는다. 돈을 벌기 위해 춤을 추는 소작농들의 몸짓은 무례하고 서투르며 무겁다.

지젤에게 용서받으며 정신병원에서 밤을 보낸 알브레히트가 다음날 태아처럼 벌거벗은 채로 등장하는 장면은 인간 존재의 원시적 순수성의 회복에 대한 에크의 독특한 해석이 빛나는 부분이다.

이처럼 정신분석을 통한 인간성의 탐구와 함께 동시대의 예술 정신의 결합을 볼 수 있는 것이 마츠 에크 작품의 특징이다. 이 같은 경향은 <백조의 호수>(1987), <카르멘>(1992), <잠자는 숲 속의 미녀>(1996) 등에서도 그대로 이어진다. 발레를 미학이나 기교적 관점이 아니라 사회, 인종, 심리분석의 관점에서 다루며 해석의 폭을 넓힌다.

<지젤>의 경우 1982년 작품인데도 오늘날에도 흥미롭게 해석되는 것도 이러한 통시적 감각에서 비롯된다.

마츠 에크의 작품 중 <카르멘>과 <백조의 호수>는 그가 몸 담았던 쿨베리 발레단의 내한공연으로 국내 관객과 먼저 만났다. 특히 <카르멘>은 국립발레단 레퍼토리로 채택되어 호평을 이끌어낸 바 있다. <지젤>은 한국 초연으로, 성남아트센터가 개관 5주년을 맞아 초청한 프랑스 리옹 국립오페라발레단의 무대로 진행된다.



송준호 기자 trista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