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와 , 연극

돈 조반니
희대의 호색한 와 카사노바의 관계는? 바흐의 악보는 어쩌다가 푸줏간의 고기 싸는 종이로 전락했을까? 베토벤이 죽기 전 평범한 왈츠곡에 집착했던 이유는?

인류의 유산이 된 음악들은 음악 그 자체를 넘어 하나의 역사적 사건으로 다음 세대에 전해진다. 음악에 담긴 당대의 사회적 분위기, 인간에 대한 이해는 멜로디와 리듬만큼이나 중요한 읽을거리다.

최근 개봉한 영화 <>와 , 무대에서 공연 중인 연극 을 통해 본 음악사의 흥미진진한 뒷이야기.

<>를 둘러싼 카사노바와 다 폰테, 모차르트의 전쟁

실존주의 철학자 키에르케고르는 오페라 <>에 대해 이런 말을 남겼다.

"샴페인처럼 이는 거품, 그게 그의 삶이다. 그가 내면의 열기 속에서 들끓으며 자신의 멜로디 속에서 풍성한 소리를 내는 동안에도 이 포도주 안에 들어 있는 진주는 계속해서 떠오르고 있듯이, 그렇게 향락의 욕망은 바로 그의 삶인 원초적인 격앙 속에서 반향된다."

세계 최고의 호색한, 쾌락만이 삶의 목적이었던 남자. 오페라 역사상 가장 위험하고도 매력적인 인물 는 작가 로렌조 다 폰테와 모차르트의 합작품이다.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에 이어 다시 한번 의기투합한 결과물. 스페인의 거장 카를로스 사우라 감독의 영화 <>는 오늘날까지 널리 사랑 받는 이 불멸의 오페라의 상상된 '메이킹 필름'이다. 다 폰테와 모차르트가 만나고 다투고 고초를 겪고, 각자의 사연을 투영하는 과정을 재현했다.

영화 내용 중 가장 흥미로운 것은 관련 인물들이 오페라와 얽히고 겹치는 부분들. 다 폰테는 못지 않은 여성 편력을 자랑한다. 한때 베니스의 사제였던 그는 외설적인 시를 쓰고, 유부녀와 간통한 죄로 종교재판을 받아 15년간 추방당한다. 이후 빈에서 본격적으로 작가 활동을 하는 와중에도 향락의 나날을 보낸다. 는 그런 그의 자아 정체성이 반영된 인물인 것이다.

다 폰테의 배후 인물 카사노바의 역할도 빼놓을 수 없다. 다 폰테가 빈에서 자리 잡도록 돕고 <>를 쓰도록 부추긴 사람이 바로 카사노바다. 전성기를 지난 그는 다 폰테를 통해 대리만족하며, 역시 각별한 마음을 지켜본다.

영화 속에는 를 '차지'하려는 둘 간의 미묘한 신경전이 표현된다. 다 폰테가 사랑하는 여인의 신뢰를 얻기 위해 가 지옥에 가 방종의 대가를 치르는 것으로 오페라의 결말을 맺자, 카사노바는 "왜 그의 영혼을 구해주지 않지? 나를 벌하고 싶었나?"라며 못마땅해 한다.

<33개의 변주곡>
카사노바는 심지어 다 폰테에게 배신당한 옛 연인인 소프라노 페라레제에게 자신이 기록해 둔 다 폰테의 여성 목록을 넘기기도 하는데, 이 일은 고스란히 오페라에 담긴다. 의 하인인 레포렐로가 에게 버림받고 그를 찾아 다니는 돈나 엘비라에게 여성 목록을 보여주며 포기할 것을 권한다. 페라레제는 돈나 엘비라 역을 맡아 "내 가슴엔 복수심만 남았다"는 가사를 목 터져라 부른다.

한편 모차르트에게 <>는 아내의 표현대로 "그를 죽이고 있는 오페라"였다. 이 오페라를 작업하는 동안 모차르트는 가난했고 건강이 악화되었으며, 아버지의 죽음까지 겪었다. 그가 부고를 들은 후 하는 대사는 모차르트의 오이디푸스 컴플렉스를 잘 드러낸다. "아버지는 나를 엄격하게 키웠고, 계속 몰아붙여 더 많은 수입을 챙겼지만 나는 아버지를 사랑했다"는 내용이다. 그 동안 얼마나 많은 에너지를 쏟아 부었는지, 모차르트는 <> 초연 후 3년 만에 35세의 나이로 숨을 거두었다. 프라하신문이 이 오페라에 바친 찬사 "모차르트에게 만수무강을!"이 무색하게도.

하지만 영화 내내 그려지는 모차르트의 캐릭터는 기지 넘친다. <>에 대해 황제가 "빈에서는 소화하기에 어려운 재료가 아닌가?"라고 묻자 그는 "그럼 그들에게 소화시킬 시간을 주시면 어떨까요?"라고 되묻는다. 그런 발칙함이 <>의 매력이 된 것이 아닐까.

베토벤과 맥주홀 왈츠의 미스터리

연극 은 베토벤의 말년과 베토벤을 연구하는 음악학자 캐서린의 말년을 겹쳐 놓는다. 연결 고리는 '디아벨리의 왈츠를 주제로 하는 33개의 변주곡'. 베토벤이 1819년 음악 출판업자인 안톤 디아벨리로부터 의뢰받아 쓴 곡으로 역사상 가장 중요한 변주 형식으로 거론된다. 베토벤이 청력을 잃고, 건강 악화로 죽음의 문턱을 드나들며 남긴 작품이다.

루게릭병을 앓고 있는 캐서린이 마지막 작업으로 선택한 주제는 베토벤이 왜 이 변주곡에 집착했는지를 밝혀내는 것. 설명할 수 없는 것들이 많다. 베토벤은 평소 왈츠를 싫어했고, 변주의 테마였던 디아벨리 본인이 작곡한 볼품 없는 왈츠는 더더욱 싫어해서 '구둣방의 가죽조각 같다'고 평했다. 더구나 이 작업에 손을 대기 시작했을 때, 이미 <장엄미사곡>과 <제9교향곡>을 쓰고 있던 상황. 그러나 그는 디아벨리에게 거절을 표한 뒤 돌연 결정을 번복한다. 베토벤의 하인이었던 쉰들러가 남긴 기록에 따르면 "도대체 무슨 영문인지 그 변주곡에 푹 빠져" 단 한 곡만 요구했던 디아벨리의 청을 뛰어 넘어 33개의 변주곡을 만들어낸 것이다.

캐서린은 "베토벤이 디아벨리의 왈츠를 조롱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자신은 한낱 모래알갱이 하나로 이렇게 무궁무진한 것을 만들 수 있음을 과시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같은 가설을 세운다. 그리고 자신이 찾을 수 있는 마지막 단서가 될 베토벤의 자필 스케치를 보기 위해 본에 있는 문서보관소로 떠난다.

무대의 한 편에서는 늙고 병든 베토벤이 자신의 마지막 기회를 잡으려 애쓰고, 다른 한 편에서는 캐서린이 스스로 내준 인생의 숙제를 푼다. 음악에 대한 질문과 삶에 대한 질문이 겹친다. 베토벤의 변주곡에 대한 캐서린의 해석은 곧 삶에 대한 이해이기도 하다. 가령 캐서린은 베토벤의 변주곡이 위풍당당한 행진곡 풍으로 시작했다는 것을 이렇게 읽는다. "아마도 이런 속뜻이 있었을 것이다. 비록 두려움 속에 이 여정을 시작하고, 종착지가 어디일지 알 수는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용기와 결단을 가지고 이 여정에 올라야 한다."

그리고 변주곡의 마지막 악장을 여는 24번에 대해서는 이렇게 해석한다. "베토벤은 프로젝트를 마무리하기 시작한다. 그의 이별은 정말 부드럽다. 교만도 없고, 후회도 없다. 대신 미지의 영역으로 부드럽게 걸어간다. 여전히 생각은 많다."

연극은 결국 디아벨리의 왈츠가 당시 서민들이 맥주홀에서 부르며 춤추는 데 쓰일 법한 곡이었다는 데에서 실마리를 찾는다. 마지막 부분, 캐서린은 자신이 평생 무시했던 딸이 더없이 다정한 눈으로 잠든 연인을 바라보는 평범한 광경에서 베토벤이 디아벨리 왈츠에서 발견한 것을 간파해낸다.

"베토벤은 이 왈츠에 담긴 모든 순간들을 우리에게 보여주려고 했던 것이다. 바삐 지나가는 삶이 우리에게 강탈해간 사소한 것들. 춤을 추기 위해 당신의 손이 연인의 손을 처음 잡았던 순간, 서로의 눈이 마주치는 순간, 음악이 시작되면서 손으로 전해지는 미세한 떨림의 순간 말이다."

그 순간, 베토벤의 의도가 정말 그런 것인지는 알 수 없어도, 그렇게 믿고 싶어진다. 베토벤의 힘겨운 말년에 대해 알고 있기 때문에 더더욱. 연극은 11월 28일까지 동숭아트센터 동숭홀에서 공연된다.

만약에 바흐가 없었더라면 세상은 어떤 소리가 되었을까

영화 은 '음악의 아버지' 바흐의 음악에 대한 해석과 그의 음악이 현대 생활에 미친 영향을 영상으로 번역한 작품이다. 바흐의 삶과 바흐의 음악을 듣고, 연주하고, 둘러싼 삶들이 콜라주된다. 성토마스교회 지휘자로 재직하며 작곡한 바흐의 음악은 엄격한 형식 속에서 영성을 고양하는 멜로디와 리듬을 추구한다. 영화는 이런 특징이 어떤 공간에서 탄생했고 일상 속의 어떤 움직임과 이미지로 보여질 수 있는지를 쫓아간다.

예를 들면 로마네스크 양식과 고딕 양식이 혼합되어 기하학적이고 질서정연한 성토마스교회의 건축적 특성을 찍은 화면에 바흐의 음악을 직조하는 식이다. 트램과 지하철의 일정한 속도, 세수를 하고 머리를 빗고 옷을 입는 일련의 아침 의식 같은 일상 속 규칙들도 바흐의 음악과 만난다. 트럭 운전사 같은 평범한 사람이 노동 시간 틈틈이 바흐의 음악을 연주하는 모습은 경건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이런 영상 속에서 바흐의 음악은 세속에서 인간이 추구하고 있는 최선의 격식을 상징한다.

<바흐 이전의 침묵>
영화 속에서 바흐는 자신의 아들인 크리스토퍼 프리드리히에게 이렇게 가르친다. "정확하고 엄격한 질서를 향해 연주하렴. 너의 내적 평안과 하느님의 은총을 통해서 순수한 음악을 느껴보렴." 바흐가 후대에 끼친 영향은 바로 이런 정신이었다. 철학자이자 작가였던 에밀 시오랑은 이런 말을 남겼다. "바흐가 없었다면 신은 권위를 잃었을 것이다. 바흐가 있기에 세계는 실패작이 아닐 수 있었다."

하지만 바흐는 한 우연한 사건이 아니었다면 영영 묻혀버렸을지도 모르는 음악가다. 그가 죽은 지 50년이 지난 1829년 멘델스존의 하인이 고기를 사러 가지 않았다면 말이다. 푸줏간에서 고기를 싸준 종이가 바로 바흐의 '마태의 복음서에 의한 주예수수난곡'이었고, 이를 발견한 멘델스존이 바흐를 재조명하면서 그는 비로소 다시 세상에 불려 나오게 됐다.

바흐에 대한 또 하나의 흥미로운 일화는 '골드베르크 변주곡'의 탄생 배경이다. 불면증에 시달리던 카이저링크 백작이 연주자 골드베르크를 통해 바흐에게 의뢰한 이 '수면곡'은 당시 시간이 부족했던 바흐가 속성으로 만들었음에도 오늘날 베토벤의 '디아벨리의 왈츠를 주제로 하는 33개의 변주곡'과 더불어 가장 중요한 변주 형식으로 일컬어지고 있다.

가 말하는 바흐

지난 21일 서울 압구정CGV에서는 상영 후 팝페라테너 가 바흐에 대해 이야기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가장 존경하는 작곡가 중 한 명으로 바흐를 꼽는 그는 이 영화의 트레일러송으로도 쓰인 '예수, 인류 소망의 기쁨'을 다음달 내는 새 앨범에 수록할 예정이다. 그가 들려준 바흐에 대해 알고 싶은 몇 가지.

Q 왜 바흐가 음악의 아버지가 됐나.

A 바흐 이전에도 비발디나 헨델 등이 있었지만 이들은 바흐만큼 획기적인 음악가가 아니었다. 자신의 작품을 복제하고 모방하는 모습도 보인다. 예를 들면 헨델은 아리아 '울게 하소서'를 몇몇 오페라에 반복해서 사용한다. 하지만 바흐는 변화무쌍하다. '골드베르크 변주곡'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리고 대단히 과학적이라는 점을 들 수 있다. 공학도들도 악보를 보면 놀랄 정도다. 아마 이런 기본적인 이유 때문에 후대 음악에 대대로 영향을 미치지 않았나 싶다. 덕분에 나를 포함한 많은 현대 음악가들이 지겨울 정도로 바흐를 공부한다.(웃음)

Q 바흐의 아들인 크리스토퍼 프리드리히는 누구인가.

A 그는 바흐의 아들 중 가장 음악적 재능이 없었다. 집안 내력에 따라 그 역시 훗날 음악가가 되었지만 평생 스카우트 되지 않고 단 한 명의 귀족 밑에서 일했으며 세 곡의 교향곡만을 남겼을 뿐이다. 그나마도 현대에는 전혀 연주되지 않는다. 영화 속에 바흐가 그에게 음악을 가르치는 장면이 삽입된 것은 아마 그만큼 그를 안쓰러워했을 것이라는 뜻 아닐까.

임형주
Q 왜 바흐의 음악이 사후 50년이 지날 때까지 조명되지 않았나.

A 아마 바흐는 생전에 작곡가이기보다는 궁정음악가, 오르가니스트로 불렸을 것이다. 그래서 그의 작품들도 따로 정리되지 못했던 것 같다. 멘델스존이 바흐를 발견한 후에야 여기 저기 흩어져 있던 작품들이 '발굴'되기 시작했다. 그가 그냥 묻혀져 버렸다면 이후 음악사가 어떻게 되었을지 모르겠다.



박우진 기자 panorama@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