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 전반적으로 심심하고 느슨한 극전개, 넓은 무대 여백 아쉬움

16세기 독일에 실존했던 마법사 파우스트는 전설이 된 인물이다. 쾌락을 위해 악마와 계약을 맺었다는 이야기가 끊임없이 예술가들의 영감이 된 탓이다.

영국의 극작가 말로우의 희곡에서 마법사는 학자로 변모해 처음으로 작품 속에 등장했다. 이후 대문호 괴테, 토마스 만, 프랑스 작곡가 구노와 베를리오즈 등이 파우스트란 인물에 다양한 상징체계를 녹여냈다.

보이토 역시 파우스트에 매료된 예술가 중 한 명이다. 이탈리아의 시인이자 소설가, 오페라 대본작가였던 그에게 파우스트는 '오페라 작곡가'라는 타이틀을 안겨준 유일한 작품이기도 하다. 보이토는 파우스트가 아닌 <메피스토펠레>라는 타이틀로 오페라를 선보였는데, 이는 보이토가 선과 악이 공존하는 인간 내면에 집중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지킬과 하이드처럼 메피스토펠레는 파우스트의 또 다른 이름인 것이다. 어쨌든 이 작품은 괴테의 이념을 잘 살려냈다는 평을 받아왔다.

보이토의 유일한 오페라 <메피스토펠레>가 지난 10월 20, 22, 23일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국립오페라단이 국내 초연했다.

총 4막 전후로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를 더해낸 탓에 1868년에 이루어진 보이토의 오페라 초연은 처참하게 실패했다. 이후 작품을 대폭 압축해 볼로냐에서 다시 공연됐는데, 국립오페라단은 볼로냐 버전을 따르고 있다.

프롤로그와 에필로그가 극을 느슨하게 만들 것 같지만 <메피스토펠레>의 백미는 기실 이 두 곳에 있다. 구름을 헤치고 올라간 하늘, 환희에 찬 천사들의 합창으로 시작되는 프롤로그엔 평화로운 천상의 이미지와 음성으로 가득 차 있다. 이 장면에서 100여 명이 하나의 목소리로 들려주는 '천상의 서곡'은 하모니의 정점을 보여준다. 파우스트가 임종을 앞에 두고 노래하는 '나의 성스러운 시' 역시 테너 박성규의 역량을 한껏 드러내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파우스트의 색다른 해석에 지나치게 기대했기 때문일까. 극의 전개는 전반적으로 심심하고 느슨했다. 메피스토펠레가 파우스트를 유혹하는 장면이나 정신착란증세를 일으키는 마르게리타의 등장, 메피스토펠레의 수하들이 등장하는 지옥 신 등에서는 감정이 한껏 고조될 법했지만 객석까지 인간 내면의 굽이치는 갈등이 전해지는 데는 역부족이었다.

연출을 맡은 다비데 리베르모어는 연출 노트에서 "메피스토펠레는, 지겨운 일상과 따분한 규범 너머로 일탈하고자 하는 모든 인간의 한 면을 보여주는 존재"라고 밝히고 있다. 그 때문이었을까. 바리톤 프란체스코 엘레로 다르테냐의 카리스마 넘치는 음성에도 불구하고 고매한 학자를 타락의 늪에 빠뜨리는 메피스토펠레의 강력한 마성은 충분히 드러나지 못했다. 게다가 대규모 합창 신을 제외하고는 넓은 무대가 고스란히 여백으로 남아 아쉬움을 남겼다.

악의 근원을 바라보는 다양한 시선을 조명하는 국립오페라단의 오페라 시리즈의 첫 번째 작품 <메피스토펠레>. 내년에는 베를리오즈의 <파우스트의 겁벌>과 '캉캉'으로 유명한 오펜바흐의 <천국과 지옥>으로 이어갈 예정이다.



이인선 기자 kell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