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로 듣는 한국문화 1] 망자를 기리는 소리장례 소리의 변천사, 한 문화가 죽음을 다루는 방식 보여줘

전통 장례 행렬
우리의 일상은 소리로 가득합니다. 출퇴근길, 학교나 일터는 물론 집에서도 소리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정작 소리가 우리의 삶을 얼마나 반영하고, 바꾸는지는 잘 모릅니다. 그 숨은 뜻을 짚어보는 연재를 시작합니다. 소리를 통해 한국문화를 들여다봅니다.

죽음을 대하는 소리는 태초의 소리 중 하나다. 언어를 만들기 이전에 죽음이 닥쳤으므로 인간은 미처 말이 되지 못한 음으로 빈 자리를 메워보려 했을 것이고, 그때 그 소리는 삶과 존재에 대한 최초의 깨달음이자 최후의 의문이었을 것이다.

장례의 소리에는 한 문화가 죽음을 다루는 방식이 깃들어 있다. 단순히 슬픔을 가누기 위한 것이 아니다. 인간의 한계를 수용하고 세계의 오묘한 질서와 화해하려는 의지가 있다.

세계와 화해하는 장례의 소리

전통적 장례의 소리는 “슬프다”는 단정 대신 엉뚱한 질문을 해댄다. “이제 가면 언제 오나”, “친구 벗이 많다 한들 누가 대신 가리오” 등등. 어떤 상엿소리는 주구장창 자연 풍경만 묘사한다.

숭례문 화재 현장의 추모 행렬
“원산에 안개 돌고 근촌에 닭이 운다/ 양곡에 젖은 안개 월봉으로 돌아든다/ 어장촌에 안개 짙고 샛별 뜨고 희안봉에 구름 떴다(후략)” 아마도 상여 지나가는 길인가 보다. 마지막엔 눙친다. “이 궤를 져다 저 물에 들이칠까.”

그런데 이런 소리를 따라가다 보면 어쩐지 한시름 놓인다. 무거운 상여를 놓아 버리는 결말에 이르러선 심지어 후련하기까지 하다. 죽음이 무엇보다 자연의 일임을 깨우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당신의 죽음이 내 삶을 갉아 먹을 만큼 미련 가질 것도, 무엇을 책망할 것도 없다. 그저 지금 최선을 다해 예를 지키고 소리 내면 되는 것이다.

그렇게 생의 헛됨과 귀중함이 만난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돌고 돈다. 비극이 숙성하면 희극이 된다는 것을 전남 진도에 전해오는 다시래기굿이 증명한다. 다시래기굿은 상여를 내가기 전날 상가에서 벌어지는 놀이다. 한 판 춤과 노래, “장삿집(상가)이니 송장 파는 장사를 하자”는 등 수위 높은 재담까지 벌어진다. 그 떠들썩함은 장례를 축제로 바꾸어 놓는다.

“특히 바다에 면한 지역에서 이런 풍습이 이어져 옵니다. 자연재해가 잦고, 물에 빠져 죽는 사람이 많으니 죽음에 대한 개념이 육지와는 다를 수밖에요.”

김진묵 음악평론가는 다시래기굿에서 자연스럽게 우러나온 삶의 방식을 읽는다. 아이러니는 죽음을 빨리 씻어내지 않으면 삶이 이어질 수 없었던 터전에서 자라났다.

소리꾼 장사익
현대적 장례에서 무슨 소리를 들을 것인가

오늘날 장례에 도통 들을 만한 소리가 없다는 것은 그만큼 죽음에 대한 철학이 빈곤해졌다는 뜻이다. 소리의 거세는 생사가 일상으로부터 분리되면서 일어났다. 죽음은 의료 체계에 포섭됐다.

많은 이들이 병원에서 죽음을 맞는다. 병실과 수술실을 전전하다가 병원 장례식장에 도착한다. 종착지다. 막다른 곳에서 나올 수 있는 소리는 체념과 절망뿐이다. 무력한 침묵 혹은 그악스러운 오열. 그 단순한 소리들이 현대 의학이 죽음을 다루는 방식이다.

병원 장례식장에서 다시래기 굿은 언감생심이다. 죽음을 삶의 에너지로 전환하는 비약은 일어나지 않는다. 망자와 산 자가 공유했던 삶의 터전은 흔적도 없다. 추모객들에게 장례는 단조롭고 지루한 일이 됐다.

돌아볼 것 없는 절차가 됐다. 장례식장을 나서면 순환하는 자연이 아니라 필사적으로 저항하지만 어쩔 수 없이 죽음을 향해 가고 있는 환자들이 보인다. 살아 있는 누구라도 자신과는 먼 이야기라고 눈 감아 버리고 싶은 경험이다.

무용 공연 <삼일밤 삼일낮>
그렇게 죽음은 외로워졌다. 장례식장부터 장지로 가는 길조차 상조산업의 몫이 됐다. 그 길에서 무슨 소리를 들을 것인가.

예전에 상여를 옮기는 것은 마을 전체의 몫이었다. 집집마다 추려진 장정들로 구성된 상두꾼들이 상여를 멨다. 누구의 죽음이든 공평했다. 고되지만 마을의 일이었다. 상두꾼이 부르는 상엿소리는 일종의 노동요였다. 메기는 소리와 받는 소리가 있었고, 가락이 반복되었으며, 상여 행렬의 발걸음을 돋우기 위한 흥도 배어 있었다.

강원도 양양군 수동골 상엿소리를 발굴한 최종덕 양양예총회장이 그 과정을 들려주었다.

“수동골에는 화상천이라는 내가 흐르고 그 주변에 5개 마을이 있어요. 마을을 통틀어 상두꾼은 21명이었지요. 장례 절차마다 소리가 있었어요. 어떤 소리는 망자를 위로했고, 어떤 소리는 상주의 슬픔을 덜어주었고, 어떤 소리는 달구질을 도왔지요.”

장지로 향하는 길에는 이런 상엿소리를 불렀다. “망령제서 흐르는 물은 화상천으로 흘러들어 굽이굽이 동해로 간다.”

상여 행렬이 보이는 것 같다. 젊은이들이 망자를 받들어 지나간다. 물이 무심하게 흐른다. 죽음은 산 자들의 과제다. 망자는 과제를 내준 대가로 호위를 받는다. 죽음은 고립되지 않았고, 존중받았다. 죽음은 자연에, 삶은 무덤에 뿌리 내렸다.

죽음과 삶을 잇는 풍요로운 소리

오늘날에도 가끔은 죽음과 삶을 잇는 소리들이 들린다. 상징적 죽음을 애도하는 소리가 거리로 퍼져 나가 사회의 변화를 끌어내기도 한다.

1987년 6월 민주항쟁의 도화선이 된 이한열 열사의 죽음은 안치환의 노래 ‘마른 잎 다시 살아나’ 등의 추모곡에 실려 사람들의 가슴을 두드렸다. “서럽다 뉘 말 하는가 흐르는 강물을/ 꿈이라 뉘 말하는가 되살아오는 세월을/ 가슴에 맺힌 한들이 일어나 하늘을 보네.” 이곡은 작년 노무현 전 대통령 국민장 때 다시 불려졌다.

2008년 화재로 불탄 숭례문 현장에는 김덕수 사물놀이패의 ‘진혼 비나리’가 울려 퍼졌다. 원래 ‘비나리’는 안녕과 복을 비는 소리지만, 이 자리에서는 숭례문의 넋을 기리는 뜻이 담겼다.

그 소리에 눈물을 흘렸던 군중은 서울 한복판 잿더미에서 무엇을 보았던 것일까. 그들은 혹시 자연과 공동체에서 단절된 채 점점 외롭고 부박해지는 자기 자신, 세속적 삶을 애도했던 것은 아닐까.

10월 27일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에서는 의 공연 <역(驛)>이 열렸다. 왜 역인가. 그는 무대를 가득 채우는 우렁찬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 인생이 다 역입니다. 누군가는 머물고 누군가는 떠나고 누군가는 지나가지요.” 그리고 흐드러지게 불렀다. “잎사귀 하나가 가지를 놓는다/ 한 세월 그냥 버티다 보면/ 덩달아 뿌리 내려 나무될 줄 알았다/ 기적이 운다/ 꿈속까지 찾아와 서성댄다/ 세상은 모두 역일 뿐이다.”

공연을 앞두고 부고가 있었다. 지난 6월 피아니스트 최장현이 돌아갔다. 장사익과 5년간 공연한 사이다.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다고 말하리라”는 ‘귀천’도 그의 반주로 불려졌다. 지난 8월에는 ‘귀천’의 시인 천상병의 부인 문순옥도 떠났다. 그 잎사귀들이 장사익의 품에 묻힌 것 같았다. 소리는 정성스러웠으나 미련 없었고, 절절하면서도 담대했다. 관객들은 혼이 빠졌다간 온 힘을 다해 박수를 쳤다.

그러니 망자를 기리는 일이란 얼마나 풍요로운가. 저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핀 소리꽃이란.

참고서적 <상장례, 삶과 죽음의 방정식>, <소리, 말할 수 없는 마음을 듣다>, <옹헤야 어절씨구 옹헤야>, <전통상례>



박우진 기자 panorama@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