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정 개인전] 백화점, 패션지 의뢰 받은 상업 일러스트만 모아 전시

신세계백화점
유독 판매와 시장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입에 올리는 예술가들이 있다. 그들 대부분은 "당신은 상업적 요소를 배제하고 작품활동을 하겠지요?"라는 대중의 말 없는 추측에 할 말이 많은 사람들이다.

"내가 좋아하는 작품을 만들면 되는 거 아냐?"라고 말하는 후진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국내 패션 일러스트레이터 1세대인 이미정 작가가 상업 일러스트만을 모아 전시회를 열었다. 2002년부터 최근까지 , 보그 코리아, 신라호텔, 패션 브랜드 코치, 현대백화점 등 다양한 클라이언트들을 위해 그린 것으로, 작품인 동시에 상품이다.

그녀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 무엇일까? 예술가가 갖춰야 할 상업적 기질? 무지몽매한 클라이언트를 계몽하는 법? 작가의 외골수 기질을 다듬는 노하우?

먹의 번짐과 역동적인 실루엣, 이미정 작가의 일러스트는 따로 서명이 필요 없을 정도로 특징이 강하지만 자신을 필요로 하는 곳이 생길 때면 팔색조처럼 변신해 왔다.

의뢰주들의 요구를 유연하게 받아 들이는 한편 자신을 잃지 않으려는 노력이 그림의 여백을 꽉꽉 채우고 있다. 그녀는 "나를 이끌어준 곳은 보그 코리아, 나를 알린 곳은 이다"라고 말하는 것에 망설임이 없다. 찾는 이가 있고 구매하는 이가 있어야 예술이 존재할 수 있다는 것에 대해 당당하게 이야기한다.

"2002년도에 처음으로 에서 작품을 의뢰했을 때 그들이 요구한 것은 여성스러움, 럭셔리, 그리고 눈부신 화려함이었어요. 고객이 사치스러운 물건을 사지 않더라도 그저 벽에 걸린 그림을 보는 것만으로도 대리만족을 느낄 수 있도록 말이죠."

작가는 초록과 핫핑크를 대범하게 사용해 극도의 화려함을 완성했다. 최근 보그 코리아에서 꼼데가르송을 위한 일러스트를 의뢰했을 때는 반대로 모든 색을 죽이고 흑백으로만 작업했다. 레이 가와쿠보의 아방가르드함이 한 획에 내려긋는 작가의 날렵한 선과 만났다.

"클라이언트의 요구도 중요하지만 너무 거기에만 치중하다 보면 나를 잃게 돼요. 다행히 저를 잘 알고 존중해주는 사람들을 만나 최고의 역량을 발휘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이미정 작가의 개인전은 도산공원 뒤 '더 라인 갤러리'에서 올해 12월 30일까지 열린다. 전시 기간 중인 11월 25일부터 29일까지는 한국패션일러스트레이션 공모전 수상작 전시회도 병행될 예정이다.

신라호텔 면세점


황수현 기자 sooh@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