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린스키 발레단] 한ㆍ러 수교 20주년 맞아 '지젤', '백조의 호수', '발레 갈라' 선보여

발레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발레단은 어느 곳일까. 볼쇼이 발레단이나 파리 오페라 발레단을 떠올릴 수도 있지만 답은 마린스키 발레단이다.

<라 실피드>와 <지젤>로 대표되는 낭만발레가 프랑스에서 서서히 사그라졌을 때, 러시아라는 수용자가 없었다면 발레는 그대로 그 역사를 마감했을지도 모른다. 당시 마린스키 발레단의 전신인 황실발레단은 프랑스에서 자라난 발레의 정수를 그대로 받아들여 오늘날 러시아 발레의 기반을 닦았다.

훗날 유럽으로 역수입돼 파리 시민들을 충격에 빠트렸던 발레 뤼스도 마린스키 발레단에서 파생한 것이다. 뿐만 아니라 오늘날까지 전 세계를 주름잡는 발레 댄서와 교육자들은 대부분 마린스키 발레단의 바가노바 아카데미를 거친 사람들이다.

국내에서 잘 알려진 볼쇼이 발레도 1960년대 이후에서야 두각을 나타낸 것에 비하면, 마린스키 발레는 그야말로 발레의 역사라고 할 만하다.

한·러 수교 20주년을 맞아 지난주 내한한 마린스키 발레단은 <지젤>과 <백조의 호수>라는 익숙한 레퍼토리로 관객들과 만났다. 마린스키 발레단이 이 두 작품을 선택한 것은 단지 한국 관객이 가장 좋아하는 작품이기 때문이 아니다.

유리 파테예프 예술감독은 "<지젤>은 마린스키 역사에서 유럽에서 가져와 러시아 스타일로 완성한 첫 작품이고, <백조의 호수>는 러시아 작곡가와 안무가로 마린스키 발레를 세계 최고의 위치로 올려놓은 작품"이라는 이유로 이번 공연에 선정한 이유를 설명한다.

캐스팅도 역대 마린스키 내한 역사상 가장 화려했다. 현재 세계 최고라고 평가받는 발레리나 울리아나 로파트키나와 현재 마린스키의 간판스타인 알리나 소모바를 비롯해 김주원과 함께 브누아 드 라 당스 그랑프리를 수상한 예카테리나 콘다우로바까지 마린스키를 대표하는 스타들이 모두 내한했다.

두 작품 못지않게 의미 있었던 작품이 세 번째 공연인 <발레 갈라>다. 두 메인 공연과는 달리 이번 갈라에서는 국내에서는 낯선 작품들이 선정됐다.

황실 발레의 찬란한 유산을 보여주는 <파키타>와 마린스키 발레단 출신으로 발레 뤼스를 거쳐 미국에서 뉴욕 시티 발레단을 창단했던 조지 발란신의 <스코틀랜드 심포니>, 발란신의 계승자이자 뮤지컬 안무가로 더 명성이 높은 제롬 로빈스의 <인 더 나잇>, 그리고 2~3분 남짓한 짧은 작품이지만 발레리나에게는 가장 어려운 작품으로 꼽히는 <빈사의 백조>가 갈라 공연 무대를 채웠다.

이중 국내 관객들이 가장 주목한 작품은 단연 <빈사의 백조>다. 그동안 국내 갈라 공연에서도 몇 차례 공개된 적이 있지만, 이번 공연에는 마린스키 유일의 외국인 단원이자 한국인 단원인 발레리나 유지연이 <빈사의 백조>로 홀로 무대에 올랐기 때문. 이번 공연을 끝으로 발레단에서 은퇴하는 유지연은 "올해로 러시아에 머문 지 20년이 됐다"고 말하며 "은퇴 이후에는 제가 도움이 될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라도 달려가서 나누고 싶다"고 말했다.

유리 파테예프 예술감독은 "유지연이 마린스키 발레단에 입단한 지 벌써 15년이 된 것처럼, 한국과 러시아도 수교 20주년을 맞아 더욱 따뜻한 문화를 나누었으면 한다"며 발레를 통한 양국의 적극적인 교류를 희망했다.



송준호 기자 trista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