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구 Emergency Exit'
빛이 토해낸 거리 위의 그림자. 발목에 매달린 채, 화려한 거리 위를 질질 끌려 다니지만 그 누구도 주목하지 않는 존재, 바로 도시의 노숙자와 걸인들이다.

도시가 쏘아대는 빛에 가격당해, 언제나 초라한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지만 그 누구도 이들에게 따뜻한 시선 한번 건네지 않는다. 이에 작가는 'Ecce Homo', 즉 '이 사람을 보라'라고 외친다.

'Ecce Homo'는 예수가 처형을 당하기 직전, 로마의 총독 빌라도가 그를 가리키며 한 말이기도 하다. 종교적인 의미를 떠나, 거대한 사회 시스템 안에 소외된 계층을 바라보자는 의미로 차용된 이 표현은 그들을 통해 애써 외면했던, 내면의 파괴된 자아를 들여다보는 계기를 마련한다.

이번 전시 역시 '플라나리아(planaria)'로 명명했던 소용돌이 형태의 마블링이 작품 속에 등장한다. 그러나 작품 전면에 등장하여 주체적인 역할을 수행했던 이전 작품들과 달리, 인물과 공간 사이의 대립각을 드러내는 데 보조적으로 쓰여 그 기능이 축소되었다.

또한 대형마트(Costco)와 은평 뉴타운으로 대표되는 풍요와 발전, 그에 대비되는 노숙자의 모습을 작품 전면에 부각시킴으로써 비극성을 극대화하고 있다.

11월 18일부터 12월 5일까지. 가나 컨템포러리. 02)720-1020



이인선 기자 kell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