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아트프리즘/디지털 댄스] 신체 한계 벗어난 자유로운 공간표현… 시대에 역행

"너 전쟁 나면 뭐할 거임? 난 전쟁 나면 백화점 털러갈 꺼 ㅋㅋㅋ 빽이랑 구두랑 ㅋㅋㅋ"

"말로만 듣던 폭탄… 연평도 사람들 대박이겠다. 정말 꺄오~~~"

"오늘은 제 생일입니다. 오늘 연평도 폭격은 알고 보니 북에서 축하해주는 축포?"

"오늘도 스타벅스에서 연평도 사건을 아이폰으로 보는 중. 어차피 군인아찌들이 해결해주겠지. 난 상관없을 듯"

11월 23일, 북한의 연평도 폭격으로 군인 2명과 민간인 2명이 사망하고 20여 명이 부상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지만 일부 네티즌은 자신의 트위터나 페이스북에 이처럼 장난 섞인 글을 올려 사람들의 공분을 샀다.

윌리엄 포사이드, 솔로
문제는 이런 글을 올린 이들이 소위 '초딩'들이 아니라 대부분 성인들이었다는 점. 특히 망자에 대한 애도 대신 망언을 했다는 점에서 이들은 네티즌들의 뭇매를 피할 수 없었다.

둔감해지는 인터넷 예절, 가속되는 정보 캐기

이뿐만이 아니다. 디씨인사이드의 한 갤러리에는 '전쟁나면 살아남는 법'이라는 제목으로 북한군 코스프레를 한 사진이 판매가격과 함께 올라왔다.

북한군 의상을 구입해 전쟁 발발 시 북한군으로 위장하자는 유머다. 평소에도 온갖 종류의 아이템을 가지고 유머로 승화시키는 이곳이지만, 네티즌들은 인명 피해까지 일어난 이때 적절치 못한 장난이라며 눈살을 찌푸리고 있다.

사이버 폭력이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고 있는 요즘, 디지털 공간에서의 윤리의식은 이제 현실 못지않게 중요한 사안이 됐다. 어느 나라보다도 강력한 인터넷 문화를 가졌지만, 그 수준에 걸맞은 예절이나 도덕적 태도는 아직 갖추지 못했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빌 존스, 고스트캐칭
한동안 악플(악성 댓글)이 사회적인 골칫거리였다면, 최근의 문제는 '신상 털기'다. '신상 털기'란 특정 인물의 이메일이나 블로그, SNS를 통해 신상정보를 추적한 다음 이를 공개하며 정체를 밝히는 행동이다. 신상 털기가 처음에는 연예인이나 정치인 등 사회적으로 유명한 인사들을 대상으로 했다면, 지금은 불특정 다수의 일반인이 그 목표가 되기도 한다.

누군가 자신의 사연을 게시판에 올리며 억울함을 호소하면 '네티즌 수사대' 혹은 '코찰청(디씨인사이드 코미디 갤러리의 이용자들이 신상 털기를 잘한다는 데서 유래)'이 출동한다.

이들의 위력은 대단하다. 타블로 사건의 주요인물인 '왓비컴즈'의 정체를 밝혀내는가 하면, 군 기피 의혹에 휘말린 익명 연예인들의 신상까지 순식간에 알아낸다. 연평도 망언 이후 '축포녀'라는 닉네임이 붙여진 네티즌도 이미 실명과 나이 등 신상 정보가 공개돼 모든 온라인 서비스를 탈퇴한 상태다.

물론 신상 털기엔 순기능도 있다. 얼마 전 지하철 성추행 사건의 범인도 네티즌들의 '수사'에 심리적 부담을 이기지 못하고 경찰에 자진출두하기도 했다. 하지만 인터넷을 통해 한 개인의 정보가 아무런 대책 없이 노출되는 것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는 더 크다.

시비가 확실치 않은 사안의 경우 네티즌의 무분별한 신상 털기는 억울한 희생자를 낳을 수 있기 때문이다. 피해자는 있지만 가해자는 없는 상황은 신상 털기의 일방적인 폭력성을 방증해준다.

우리 모두 '인간'임을 잊지 마라

스마트폰의 보급과 SNS의 일상적인 사용으로 개인정보 노출의 문제는 더욱 커졌다. 당사자가 정보를 공개하지 않아도 그 사람과 연결된 친구의 정보를 추적하면 그 사람의 정보도 유추가 가능해진다.

이처럼 SNS를 통한 사이버 폭력이 커지고 있는 것은 기존의 '카페 문화'에 익숙해진 상태에서 'SNS 문화'로 갑자기 전환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출간된 <소셜노믹스>의 저자 에릭 퀼먼은 SNS 문화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로 '신중함'을 주문한다.

카페나 게시판에서는 익명성이 철저히 보장됐기에 악플을 마음껏 달 수 있었지만 그 영향력은 해당 커뮤니티 안에 한정됐고 파급 속도도 빠르지 않았다. 하지만 사용자의 정보가 노출되는 SNS에서는 투명성이 전제되어야 한다.

발언의 여파가 순식간에 전 네트워크로 퍼져나가는 SNS의 속성상 발언의 당사자나 대상자가 하루 아침에 매장될 수도 있게 됐다. 발언의 진위나 시의적절한 예절 등 디지털 윤리의 준수가 더욱 중요해진 시대가 된 것이다.

얼마 전 출간된 <행복은 전염된다>(김영사)에서 저자인 니콜라스 크리스태키스와 제임스 파울러는 소셜 네트워크의 연구를 통해 한 사람의 영향력이 아는 사람에게만 미치고 끝나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소셜 네트워크에서는 서로가 서로를 모방할 뿐 아니라 감정도 전염되면서 강한 영향을 주고받는다는 것이다. 그 영향력은 건강과 관련된 행동을 유행시키며, 부자를 더 큰 부자로 만들어 주는 등 인생을 바꿀 만큼의 강력한 힘을 가진다. 모든 개인이 왜 처신에 더욱 신중을 기해야 하는지 말해주는 대목이다.

하지만 기존의 인터넷 문화에서도 알 수 있듯이 디지털 윤리를 법률처럼 구체적인 항목을 정해 따르게 하는 것은 비효과적이다. 그렇다면 인터넷의 역기능을 최소화할 수 있는 기본적인 디지털 윤리의 정신이란 어떤 것일까.

미국 플로리다대학교의 버지니아 셰어 교수가 발표한 '네티켓의 핵심원칙'에서 가장 중시하는 것은 아날로그 윤리와 똑같은 마인드다. 즉 상대방도 나처럼 실제 인간임을 기억하고, 실제 생활과 같은 기준과 행동을 고수하라는 주문이다. 아무리 사이버 세상이 도래해도 찌르면 아픈 것은 변하지 않는다.

셰어 교수는 바로 이 인간성을 항상 느끼며 실제 생활의 규범과 똑같은 기준과 행동으로 사이버 공간에서의 윤리적 문제를 해결하라고 조언하고 있다.



박영욱 숙명여대 교양교육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