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174×222cm 천배점에 아크릴과 먹 2010'
온 몸으로 시간을 보듬고, 세월 속에서 묵묵히 부서져가는 작은 우주, 산, 자연이 건네는 근원적 숨을 불어넣으며 오랜 시간 인간의 곁을 지켜왔지만, 정작 그 심오함을 알아차리기엔 인간은 너무 작았다.

더군다나 예술가들에게 자연은, 보이지만 보이지 않고 닿을 듯하면서도 이내 주저앉게 만드는 험난한 길이었다. 작가 전래식에게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마치 구도자처럼, 무위(無爲)로써 자연에 다가갔다. 전통적인 산수화의 화법에서 벗어나 생략과 함축, 투박한 붓질과 담백한 색감을 담아냄으로써 그동안 눈으로만 감상할 수 있던 산이 아닌, 그 너머의 보이지 않는 세계를 비추는 산을 완성해냈다.

동양의 전통산수화를 근본으로 삼되, 우주의 생명력과 질서를 함축하는 산의 모습을 담기 위해선 서양의 비구상을 받아들여야 했다. 이는 시각을 넘어 마음의 울림으로 산을 바라보기 위함이었으며, 장엄한 생명력과 평온한 고요함을 동시에 담아내기 위한 최선의 방법이었다.

이에 작가는 구상과 추상이 함께 어우러지는 이른바 조형산수화라는 새로운 영역을 개척함으로써 정신적인 언어로 승화된 자연을 완성해 냈다. 이 과정 속에서 먹은 아크릴과 함께 융화되고, 화선지는 천으로 대체되며 구상과 비구상이 혼재된 양상을 보였다.

그럼에도 작가는 동양화의 본령을 벗어나지 않는다. 그저 시대의 변화를 받아들이며, 그 속에 '우리'의 것을 담아내는 것이다. 그렇기에 작품은 더욱 정신적인 존재로 우리 가슴 속에 새겨진다.

이처럼 통상적인 산의 이미지를 벗어나, 우주만물의 근원을 내보이는 전래식 작가의 '산'은 총 40여 점의 작품으로 그 숭고한 미를 뽐낸다. 12월 15일부터 12월 31일까지. 선화랑. 02)734-0458



이인선 기자 kell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