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연칠 전전통 초상화 맥 이어 40여 명의 정신 표출된 그림 선봬

임권택 영화감독
담배를 쥔 의 얼굴에선 꿋꿋한 집념과 열정, 그리고 관조의 여유가 읽힌다.

긴 목도리에 모자를 쓴 에게선 시대를 호령하는 듯한 카리스마가, 동국대 총장을 지낸 미술사학자 황수영 선생의 모습에는 학자의 고고함이, 춤꾼 의 얼굴에는 한바탕 춤사위가 펼쳐질 듯한 생동감이 묻어난다.

서울 인사동 동산방화랑에서 열리고 있는 의 <이 시대의 초상>전에서 마주하게 되는 인상이다. 얼굴표현과 작품의 아우라가 여느 초상화와는 사뭇 다르다. 사진 작품 이상의 핍진성을 보여줄 뿐 아니라 그림 속 인물의 삶과 심성까지 가늠하게 한다.

이는 의 40년에 이르는 화업과 독특하면서도 일관된 수행에서 우러나온 것이다.

손 작가는 동국대 불교미술학과 교수로 우리 동양화단에서 몇 안 되는 초상화가 중 한 명이다. 그의 초상화 인연은 오래 됐고 깊다. 그는 인간문화재 석정 스님의 문하로서, 단청과 탱화 등 전통불교미술을 연구, 연마하는 데서 나아가 불교미술의 현대화에 선구적 업적을 보여줬다. 감로화, 팔상도 같은 전통 불교미술을 현대적 사유와 새로운 조형언어로 표현해 현대불교 미술에 새로운 방향을 제시했다.

손연칠 작가
손 작가는 불화를 잘 그리려면 인물 표현이 중요하다는 생각에 1980년대 초부터 일랑 이종상 화백에게서 인물화를 배웠다. 초상화에 천착한 후엔 허난설헌, 성삼문, 의상대사, 이익, 양만춘 장군 등 역사인물의 국가표준영정을 제작할 정도로 실력을 인정받았다.

그는 2000년대 들어 현대 인물의 초상화를 그리는 작업을 시작했다. 여기에 18세기 화원인 이명기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육리문법(肉理文法)'의 기법을 응용했다. 얼굴을 그릴 때 사용하는 세필인 면상필로 일일이 붓질을 해 얼굴 표면의 피부 질감을 땀구멍까지 표현한 것이다.

"겉으로 드러난 빛의 명암으로 인물화를 그리는 서양과 달리 전통 초상화는 담채로 처리한 얼굴에 무수한 붓질로 내면의 감성까지 되살립니다. 그리고자 하는 대상 인물의 정신 세계를 표출하는 '전신사조(傳神寫照)'가 중요한 역할을 하지요."

이는 중국 인물화의 최고봉으로 꼽히는 고개지(345-406)가 "쉬운 건 귀신을 그리는 것이고, 어려운 건 인물화다"고 한 것과 같은 맥락으로 인물의 정신을 담은 초상화 작업의 지난함을 함축한다.

손 작가는 이러한 초상화를 육리문법의 기법과 전신사조의 정신으로 지난 5년간 집중 제작해 이번 전시에 40여 점을 내놨다. 작품 당 제작기간이 6개월~1년일 정도로 정성을 들였다.

초상화 시리즈의 첫 대상은 10년여 인연을 맺어온 이다. "차(茶)로 유명한 지허 스님을 통해 한국전통자생차보존회(회장 임권택)에서 임 감독님과 일을 하면서 그 분의 인품도 알게 돼 먼저 그리게 됐다"고 설명했다.

은사인 황수영 미술사학자와 이종상 화백, 문화계의 숨은 일꾼인 김종규 삼성출판박물관장, 윤범모 미술평론가, 정영호 단국대박물관장, 황수로 궁중채화 복원가, 김근중ㆍ김선두 작가, 산악인 박인식, 방글라데시 노동자 등 오랜 문화예술계 지인들과 이 시대를 살아가는 다양한 인물들이 전시에 초대됐다.

손 작가는 "초상화를 통해 개인 인생사와 더불어 우리 시대의 정신적인 좌표를 짚어보고 싶다"고 말했다. 덧붙여 "인물화를 좌우하는 것은 정신과 통하는 눈과 손의 표정"이라며 관람 포인트도 설명했다. 이 시대를 마주할 수 있는 전시는 12월 17일까지. 02)733-5877


고은 시인
이애주 교수

박종진 기자 jjpar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