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ry in the Kitchen] (12) 케이크 소설 속에선 욕망과 허영, 문화적 쾌감으로 은유되기도

올해는 원빈이다. 언제부턴가 크리스마스만 되면 꽃미남 배우가 케이크를 들고 백만불짜리 웃음을 지으며 눈 오는 밤길에 서 있다. "네가 더 이뻐"라고 말하면서.

그러니 한 조각 먹을 수밖에 없다. 크리스마스니까. 원빈이니까.

나를 끌어올려줘요

고로 여기, 케이크 가게를 차린 남자가 있다. '앤티크'의 주인 진혁(주지훈 분)이다. 그는 케이크를 싫어하지만, 케이크를 좋아하는 사람 대부분이 여자라는 이유로 케이크 가게를 차린다.

앤틱 접시에 케이크를 담아내는 별난 케이크 가게 앤티크. 이 가게에 천재 파티쉐 선우(김재욱 분), 진혁을 도련님으로 모시는 수영(최지호 분), 복서 출신의 일꾼 기범(유아인 분)이 찾아온다. 네 남자는 케이크를 만들며 자신들의 성장과정을 펼쳐놓는다. 케이크는 각자의 과거를 연결하는 고리다.

'케이크를 먹으면서 불행한 사람이 있을까요? 사람들은 보통 행복의 정점에서 꼭 케이크를 먹고 싶어 하는 것을 많이 보셨을 겁니다. 본능처럼 말이죠, 왜 그럴까요?'

영화 <서양골동양과자점 앤티크> 속 이 대사는 케이크가 가진 세간의 고정관념을 집약해 드러낸다. 행복의 정점에서 꼭 먹고 싶은 음식. 우리가 생일과 기념일마다 케이크부터 찾는 것은 아마 이 때문일 게다. 각종 영화와 드라마를 비롯해 일상에서도, 케이크는 '사랑과 행복'의 메타포처럼 쓰인다.

또 다른 영화 <사랑의 레시피>는 제목처럼 요리를 소재로 한 작품이다.

뉴욕 맨해튼의 고급 레스토랑 쉐프인 케이트(캐서린 제타 존스 분)는 깐깐하면서도 불같은 성격의 요리사다. 매사 진지한 그녀의 하수에 부주방장 닉(아론 애크하트 분)이 들어온다.

음악을 틀고 춤추며 식재료에 말을 거는 닉. 요리를 놀이처럼 대하는 닉이 케이트는 못마땅하다. 하지만 로맨스 영화가 늘 그렇듯, 둘은 티격태격하다 가까워진다.

케이트의 집에 초대된 닉이 그녀를 위해 만든 음식이 티라미수다. '나를(mi) 위로(su) 끌어 올린다(tirare)'는 이 케이크의 뜻처럼, 둘은 티라미수 가장자리를 야금야금 뜯어먹으며 급속도로 발전한다.

몇 편의 작품을 유추해 '여자는 케이크를 좋아한다'는 어설픈 결론을 내려선 곤란하다. 하성란은 단편 <곰팡이꽃>을 통해, 남자들이 여자에게 버림받는 진짜 이유는 스펙이 아니라 센스라고 말한다.

'어쩌면 그들의 결별은 생크림케이크로부터 연유한 것인지도 모른다(…) 여자는 남자가 좋아하는 생크림케이크를 억지로 먹어주는 데 지쳤고 남자는 여전히 여자가 생크림케이크를 좋아한다고 믿어버린 데서 생긴 오해가 그들 사이에 틈을 만들었다 (…) 쓰레기봉투 맨 밑바닥에는 손도 대지 않은 생크림케이크가 문드러져있다.'

남자는 여자가 생크림케이크를 좋아할 거라 생각해 매일 같이 사다 바치지만, 다이어트 중인 여자는 입도 대지 않고, 케이크를 쓰레기통에 넣는다.

맛과 취향의 상관관계

하성란처럼, 우리네 작가들은 바라보기만 해도 달콤하고 포근하고, 그래서 행복한 느낌을 마구마구 내뿜는 케이크를 비꼬아 쓰길 좋아했다. 크리스마스 저녁 초대를 거절하는 노랭이 영감 스크루지마냥 케이크 먹는 것을 "바보 같은 짓"이라고 톡 쏘아 바라본다. "그딴 케이크, 안 먹으면 어때?"라고 비웃기라도 하듯이.

함정임의 중편 <아주 사소한 중독>에서 주인공 그녀는 서른 여섯 살의 케이크 디자이너다. 호텔에서 케이크 맛을 감별하는 그녀는 감각을 마비시킬 정도의 단맛에, 혀로 대표되는 몸의 온 오감을 집중시켜야 한다.

그녀는 유학 갔던 파리의 몽파르나스 묘지에서 한 남자를 만난다. 유부남인 그는 '너무 많은 책을 읽은' 지식인이지만, 사회에 자리를 잡지 못한 대학강사다. 그녀는 케이크를 정신 없이 먹는 남자의 모습에서 성적 흥분을 느낀다.

여자는 케이크로 대표되는 혀를 무기로, 남자는 책으로 대표되는 지성을 무기로 서로를 소유하려 한다. 이들의 관계는 뒤틀리고, 실연의 고통은 여자에게 실성증(失聲症)와 이명증(耳鳴症)을 남긴다. 작가는 식욕과 지식욕, 성욕을 코드로 여성의 욕망을 그린다.

함정임의 케이크가 욕망의 상징이라면, 김사과의 케이크는 허영심의 상징이다.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어라'는 앙투와네트의 멍청한 대답처럼, 케이크는 상류층의 계급문화를 드러내는 메타포다.

상류층은 다만 경제력으로 판가름 나지 않는다. '토대가 상부를 구성하고 나면' 남은 것은 취향이다. 김사과의 장편 <미나> 속 케이크는 경제력에서는 중하층이지만, 문화권력에서 상류층이라 자부하는 386지식인들의 허영심을 상징한다.

'그것은 확실히 돈의 문제가 아니었다. 미나 아버지의 동료 번역가 겸 시인 겸 사진작가 겸 에세이스트 겸 일러스트레이터인 백한철 씨의 가족은 넉넉하지 않은 생활을 하고 있지만 정통 프랑스 궁정식 디저트케이크를 식탁에 가득 쌓아두는 라이프 스타일을 추구했다. 어쩌면 그들은 없는 돈에 쪼들려가며 기어코 값 비싼 디저트케이크를 가득 사서 대문에 걸어놓는 것으로 자신들의 하층계급의 삶을 감추고 기만하는 것처럼 보였다. 물론 케이크는 천사의 날개같이 달콤하여 황홀하게 혀끝에서 녹으나 그 발가락 만한 케이크만 빼면 아무것도 없다.'

별것 아니지만 도움이 되는

작가의 말처럼, 이제 케이크는 생일이나 크리스마스 같은 특별한 날에만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아니다. 날로 발전하는 디저트 카페와 그 만큼 다양해지는 케이크는 우리 경제력이 서양만큼 넉넉해졌음을, 우리의 취향이 서양처럼 변했음을 보여주는 것 같다.

우리가 수시로 그 발가락 만한 케이크를 찾을 때, 우리가 원하는 건 달디 단 혀끝의 감각보다 케이크 한 조각으로나마 캐리처럼 비춰지길 원하는 욕망이 아닐까.

크리스마스다. 눈처럼 하얀 케이크를 들고 원빈이 서있다. 저 멀리 닉쿤은 "메리 아이스마스"라며 웃고 있다. 그러니까 5살 꼬마든 50대 아줌마든, 이제 크리스마스 케이크를 안 사고 배길 수가 없는 것이다.

'별것 아니지만 도움이 되는'. 제과점 앞에 산처럼 쌓인 케이크를 바라보며, 레이먼드 카버가 생각나는 건 나 혼자가 아닌 듯싶다.

'케이크를 포크로 쿡 찔러 먹었다. 갑자기 내가 몹시 올라가는 것 같다. 김치를 젓가락으로 먹는 것보다 한층 더 문화적인 쾌감을 느낀다.' (이선희, '다당여인' <별건곤> 1934년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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