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 직접 쓴 가훈이 벽 한 편에 간신히 매달려 있다. 가장이라는 이유로 더 서글픈 자신의 신세처럼, 악필로 쓴 '가화만사성'은 거창해서 더 쓰리다.

가정이 화목하면 모든 일이 잘 풀린다는데, 그렇다면 아버지와 아들이 모두 실직 상태인 이 가정의 앞날은 어찌될 것인가. 안타깝게도 이는 불행한 먼 이웃의 이야기가 아닌, 중고령자 실직이 본격화된 우리 시대, 바로 우리의 이야기이다.

명예퇴직한 아버지와 청년 실업자 아들이 사는 대한민국의 평범한 가정. 명예퇴직한 '나삼남'은 집안에서 아내와 자식들 눈치를 보며 가사를 도맡아 하지만, 마치 죄지은 사람처럼 한없이 작아지기만 한다.

동네에서는 "남자가 오죽 못 났으면 낮에 집에서 빨래나 하고 있냐?"며 무시를 당하고, 30년 넘게 가족을 위해 뼈 빠지게 일한 자신의 처지가 억울하게만 느껴진다.

마침 이때 가스검침원으로 가장한 강도가 집에 들게 되고, 강도 역시 명예퇴직 후 자신과 똑같은 신세임을 알게 된 나삼남은 가장의 권위와 체면을 살리기 위해 강도와 어설픈 해프닝을 꾸미게 되는데….

비록 명예퇴직과 청년실업이라는 사회의 민감하고 아픈 부분을 드러내고 있지만, 이를 희화화하여 코미디로 풀어나가는 <명퇴와 노가리>는 웃음 뒤에 숨겨진 우리 사회의 진정한 가족애를 보여 준다.

12월 7일부터 12월 31일까지. 대학로 상상아트홀 블루. 02)3676-3676



송준호 기자 trista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