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의선 능곡역 앞 들녘, 지금은 뉴타운 개발의 요충지로 곳곳에 비닐하우스 몇 채가 불안하게 세워져 있다. 이곳에 작가의 '남겨진 장소'가 있다. 이는 그림의 실재 소재가 된 들판에 45일간 놓여져, 작업공간으로 사용됐다. 버려진 건축 자재물과 폐자재를 찾아내 만들어진 이 공간은 집도 아닌, 전시공간도 아닌 불안한 정체성을 지니고, 그렇게 아슬아슬 경계 위에 서 있었다. 이곳에서 작가는 주변 장소를 새롭게 탐색하고, 경험하고, 그려나가며 들판에 깃든 모든 기억을 곱씹어본다.

들녘은 작가의 유년시절 대부분의 기억을 차지할 만큼 정서적으로 많은 영향을 준 장소이다. 고요한 자연의 침묵을 머금고, 온기로 가득했던 유년시절의 기억은 이내 방황하는 이방인의 싸늘함으로 바뀐다.

개발논리에 의해 분할되어가는 이곳에 더 이상의 온기는 없었다. 그저 인공과 자연 그 경계에 선 불안한 휘청거림만이 존재할 뿐이다.

작가는 한 인간으로서, 예술인으로서, 그리고 한 자연으로서 들판 위에 뛰어든다. 그것은 '구멍'이 되어 들녘에 내재된 수많은 간극 사이를 비집고 존재하게 만든다.

그 구멍 속에서 작가는 그림을 그리고, 하늘의 색과 빛을 관찰하며, 매일의 온도와 날씨를 체크한다. 또한 들녘의 침묵에 괴로워하다가 새들의 울음소리에 위로를 받으며, 그렇게 들녘의 하루를 견뎌낸다.

그곳에서 채집한 수많은 아름다움과 질문들은 살아있는 경험이 되어, 작품을 감상하는 모든 이들에 의해 끊임없이 재탄생될 것이다.

12월 9일부터 12월 31일까지. UNC갤러리. 02)733-2798



이인선 기자 kell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