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너를 찌르고 싶다'
헤아릴 수 없는 수만 가지 감정이 무표정 속에 공포로 다가온다. 짐작할 수 없는 슬픔, 혹은 원망. 그렇기에 더욱 텅 빈 시선은 갈피를 잡지 못한다. 작가의 두상, 혹은 흉상 조각들은 엄밀히 따져 도예에 가깝다.

직접 손으로 어루만지고 달래 빚은 슬픈 표정의 주인공은 세상의 폭력으로 가엽게 죽거나 희생된 이들이다. 그리고 그 위로 작가 자신의 얼굴을 밀어 넣어 슬픔과 애도를 함께 실었다.

젊은 남녀의 두상이 대부분인 이번 작품들은 부분적으로 꽃, 해골, 짐승, 날개 등의 상징적인 도상들과 함께 함으로써 자신의 사연을 조심스레 드러낸다.

머리를 장식한 꽃은 안타깝게 스러진 젊은 청춘을 애도하는 뜻에서 작가가 선사하는 일종의 선물이다. 한편, 날카로운 눈빛으로 허공을 찌르고 있지만 정작 자신의 내면은 이미 상처로 범벅돼 한없이 무력해진 존재도 있다.

이들의 상처는 모두 뜨거운 불 속에서 더욱 단호하게 응고됐다. 이들의 표정은 작가 김나리의 자소상인 동시에 우리 사회 모든 약자들의 얼굴이다.

이번 전시는 김나리의 제3회 개인전이자, 1976년 대구에서 처음 문을 연 이목화랑이 종로구 가회동에서 다시 새로운 시작을 여는 전시이기도 하다. 가회동에서의 첫 전시인 김나리의 개인전은 작가 자신과 우리 모두에게 바치는 따뜻한 헌사와도 같은 것이다.

12월 1일부터 12월 31일까지. 이목화랑. 02)514-8888



이인선 기자 kell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