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진 시대와 작품관에 끊임없이 현실 담으려는 노력

이번주 출간된 의 장편 <7번국도 Revisited>는 1997년에 발표한 자신의 장편 <7번국도>를 새롭게 쓴 작품이다. 소설가 씨가 웹진문지에 연재하는 <여우여자> 역시 10 년 전 쓴 중편을 장편으로 다시 쓰는 작품이다. 두 중견 작가가 나란히 신인 시절의 작품을 개작한다는 점만으로도 충분히 흥미를 끈다.

, 황순원, , 박범신 등 원로 작가들 역시 자신의 대표작을 수번에 걸쳐 개작한 이력을 갖고 있다. 쓸 것도 읽을 것도 많은 시대, 작가들은 왜 쓴 작품을 다시 쓰는 걸까? 독자들은 왜 읽은 작품을 다시 읽는 걸까?

의 새롭게 쓴 <7번 국도>

한 포털 사이트에 등록된 <7번국도 Revisited>의 책소개에 이렇게 쓰여있다.

'가 13년 만에 새롭게 선보이는 <7번국도 Revisited>는 이야기의 뼈대만 그대로 두고 처음부터 다시 쓴, 전혀 새로운 작품이다.'

하성란
출간 소식을 듣고 편집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문학동네 편집부 조연주 부장은 "교묘하게 바뀐 원고"라고 말했다.

"분명 다른 원고이지만, 어디가 집중적으로 바뀌었다고 말하기 애매해요. 작품의 개성은 그대로 갖고 있으면서도 이전 작품에 비해 전체적으로 잘 정리됐어요."

작가는 작품을 개작한 이유에 대해 "소설관이 바뀌었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이 소설을 처음 낼 당시에는 문학을 일종의 '포즈'로서 인식했는데, '문학은 현실'이란 생각을 하게 되면서 작품을 다시 보게 됐다는 설명이다. 그는 "(개작 전) 소설에서 남의 이야기를 마치 내 생각인 듯 말하는 부분도 있었다"고 덧붙였다. 정리하자면 작가가 목에 힘을 빼면서, 소설의 거품을 걷어냈다는 말이다.

개작 계기는 뭔가?

"이 장편을 책으로 출간하고 한번 더 찍었다. 그리고 나서 다시 낼 생각이 없었다. 그런데 출판사에서 책을 다시 내달라는 말을 들었다. 그게 2005년 무렵이다. 예전에 냈던 형태로 책을 낼 수는 없고, 낸다면 고쳐서 내겠다고 했다."

김연수
소설을 6년간 고쳤다는 말인가?

"물론 아니다. '해서 뭐하나' 이런 생각과 싸워야 하기 때문에(웃음). 다른 작품을 쓰다 올 한해 본격적으로 고쳤다."

편집자가 "교묘하게 고쳤다"고 했다. 뭘 어떻게 고친 건가?

"말 그대로 '포즈'에 해당되는 부분들이다. 어릴 때 '문학이란 이런 것'이라 생각했던 것 중 잘못된 부분에 대해 고치거나 뺐다. 다시 읽으니 등장인물들의 행동이나 말이 납득 안 되는 부분도 있었다. 그 부분도 당연히 다시 썼다. 이야기의 흐름은 거의 같다."

장편 <밤은 노래한다> 역시 문예지 '파라21'에 연재했을 당시와 단행본으로 출간됐을 때 작품이 판이하게 다르다. 요컨대 이 작품은 책으로 묶기 전 개작을 한 소설이다. 개작을 낸 작가에게 묻고 싶었다. 쓸 것도 많은데, 왜 발표한 작품을 다시 쓰는 건가?

김원일
"전적으로 작가의 개인적인 성향의 문제다. (작품을 쓸 때) 나의 원칙은 '고치면 고칠수록 좋아진다'는 것이다. 그러니 잘 고칠 수 있는 원고는 고칠 수밖에 없다. <7번국도>는 고쳐서 나아질 수 있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에 고친 것이다. (7번국도 이외에) 그 이전에 출간한 작품들은 그 이상 고치는 게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나아진다기보다는 다르게 쓴다는 느낌이 강하기 때문이다. 작업 방식이 예전 선배들과 다르기 때문이기도 하겠다. 육필원고를 썼다면 개작이 대단한 결심을 해야 하는 일이겠지만, 컴퓨터 환경이라 빈번하게 많이 고친다."

의 <여우여자> 중편을 장편으로

소설가 씨는 <여우 여자> 연재를 앞두고 문지웹진에 이렇게 썼다.

'10년 전 한 계간지에 중편 소설 <여우여자>를 발표했다. 소설의 주인공은 구미호였다. (…) 이 반인반수가 지난 5백 년을 어떻게 살았는지 중편소설 분량상 생략할 수밖에 없었다.'

때문에 작가는 발표 후 10년이 지나 이 작품을 다시 쓰고 있다. 분량도 대폭 늘어 250매 가량의 중편을 900내 내외의 장편으로 연재한다. 구성은 한층 복잡해지고 등장인물 수도 대폭 늘었다.

최인훈
작품을 다시 쓴 계기는?

"이 작품은 발표 후 장편으로 쓰려고 책으로 묶지 않았다. 10년 전 쓴 중편과 연재 중인 장편은 전혀 새로운 이야기다. 그때는 '중편 감'이라고 생각했는데, 발표 후에 '500년을 산 여자의 이야기라면 장편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10년이 지나 다시 쓰는 이유는 장편을 쓸 만큼의 여유가 생겼기 때문이다."

개작할 때 중점을 둔 부분은 어떤 것인가?

"중편소설 작업은 단편과 마찬가지로 어느 한 순간에 집중해서 인상적인 몇 장면으로 소설을 쓰는 것이다. 이번 장편은 500년에 걸친 이야기다. 따라서 소설 전체의 구성과 문장이 달라진다. 같은 점이라면 사건의 도입부, 끝부분, 중간에 몇몇 에피소드가 중편과 겹친다. 중편에서 인물들은 아주 단편적인 특징만 보여준다. 연재 중인 작품에서는 왜 이 사람이 그런 행동을 할 수밖에 없는지를 설명한다. 전형적인 인물이 아니라 인간의 여러 모습을 보여주게 됐다."

독자로서 선배 작가들의 개작 작품 읽은 적 있나? 읽을 때 어떤 기분인가?

"의 <광장>을 여러 번 읽었다. 작가가 개작을 왜 했는지 알 것 같다. 소설은 현실의 상황을 담아낸다. 동시에 좋은 소설은 어느 시대에 읽어도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어야 한다. 이 둘을 함께 해내는 것이 쉽지 않다. 때문에 끊임없이 현실의 상황을 담아내려고 개작을 하지 않았을까. 또 소설에서 미진했던 부분들이 시간이 지나면 보인다. 나도 장편 를 지난해 출간한 후, 뒷부분을 바꾸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여유가 된다면 다시 쓰고 싶다."

독자들이 다시 쓴 소설을 또 읽을 이유가 있을까?

"작가의 마니아라면 개작 소설을 통해 작가의 의식이나 현실을 직시하는 자세가 어떻게 변했는지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똑같은 <광장>이지만, 개작을 거치면서 마무리가 달라졌다. 작가가 살아있는 동안, 작품도 여전히 움직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전 작품을 다시 쓸 생각도 있나? 이를테면 <삿뽀로 여인숙>처럼 초기 장편소설.

"아쉬운 점이 많은 작품이지만, 그 작품은 다시 쓰지 않는 게 좋은 것 같다. 당시 인터넷 문화가 보급되기 시작하면서 하이텔에 연재했고, 연재에 맞게 가벼운 문체로 썼다. 다시 쓴다면 그런 감각이 제대로 나오지 않을 것이다."

작가와 시대 변화를 한 눈에

개작 소설을 내는 건 사실 소수 몇몇 작가들이 누리는 축복일지도 모르겠다. 우선 다시 쓴 소설책을 내주는 출판사가 있어야 하는데 짧게는 수년 전, 길게는 수십 년 전 소설을 다시 출간할 때 시장성이 있어야 가능하다.

작가처럼 연재하는 경우도 있지만, 흔히 장편을 다시 장편으로 내는 사례가 많기 때문에 개작은 전작을 기본으로 한다. 다시 말해, 작품을 고쳐 쓰는 기간 작가의 생계는 각자의 몫이다.

부터 홍성원, , 박범신, 이순원 등 문학적 성과와 시장성을 갖춘 작가들이 개작을 많이 한 이유일 것이다. (box 기사 참조)

이렇게 다시 쓴 작품들을 전문가들은 어떻게 볼까?

문학평론가 이수형 씨는 "정전과 초기본을 함께 본다"라고 말했다. '춘향전'처럼 다양한 버전의 작품 중 문학계에서 통용되는 오리지널 작품을 선택하는 것을 '정전 확정'이라 한다. 의 <광장>의 경우 전집의 마지막 판본에 실린 작품이 정전인 셈이다. 대중이 읽는 유명작가의 작품은 대다수 이 정전의 형태일 것이다.

평론가들은 정전만큼 초기본을 눈여겨 본다. 초기본은 신인시절 쓴 작품이 대부분이고, 따라서 작가의 삶과 앞으로의 지형도가 농축돼 있다. 이수형 평론가는 "<광장>과 <7번국도> 모두 작가의 무명시절 첫 출간된 작품들이다. 작가의 삶을 이해하고 연구하는 데 초기본이 더 의미가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개작한 작품을 버전 별로 각각의 독립된 작품으로 치기도 한다. 조연정 문학평론가는 "전문가들이 작가론을 쓸 때는 작가의 시기별 변화를 염두에 두는 경우가 많다. 개작 이전의 작품과 이후의 작품이 별개의 독립된 작품으로 취급되기도 한다"고 말했다.

한 번씩은 고쳤다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리나>, 의 <광장>의 공통점은? 끊임없는 개작을 거친 소설이란 점이다. 톨스토이는 1875년 '러시아 통보'지에 이 작품을 연재한 이래 12번 개작을 통해 소설을 완성했고, 제목도 세 차례나 바꿨다. 맨 처음 제목은 '견실한 여인', 두 번째 제목은 '두 결혼, 두 쌍의 부인', 마지막으로 바꾼 제목이 '안나 카레리나'다.

한국 문학사에서 개작의 대표적 사례로 소개되는 의 <광장>은 1960년 새벽 11월호에 발표한 이래 50년에 걸쳐 10번을 개작했다. <광장>은 발표 이듬해인 1961년 당초 원고지 600매였던 작품 분량을 800여 매로 늘려 정향사에서 첫 단행본을 냈다.

이어 1967년 신구문화사, 1973년 민음사에서 각각 재출간될 때마다 단어와 문맥을 수정했다. 대폭적인 개작은 1976년 출간된 ' 전집' 초판에서다. 지난해 여름 작가는 다시 10번 째 개작을 통해 14쪽 분량의 내용 4곳을 다시 쓰는 열의를 보였다. 그는 20년 만에 발표한 장편 <화두>역시 8년 만에 개작해 다시 출간했다. 한자어를 토박이 말로 바꾸고 장을 새롭게 구분하는 등 900여 곳을 손질했다.

이처럼 문학사에서 개작은 빈번히 있어온 사례다. 의 <불의 제전>과 홍성원의 <남과 북> 역시 개작의 대표적 사례. 1980년 문예지 문학사상에 연재를 시작해 1997년 문학과지성사에서 일곱 권으로 완간된 책은 2010년 대대적인 개작을 거쳐 5권으로 재출간됐다. 작가는 또 다른 장편 <늘 푸른 소나무> 역시 2002년 개작해 출간했다.

홍성원의 <남과북>은 1970년대 전반 세대지에 연재해 1977년 단행본으로 발간했다가 2000년 개작을 통해 6권짜리 종이책과 12권짜리 전자책으로 내놓은 바 있다. 의 <불의 제전>과 반대로 원고지 9000매 분량에 1200매를 덧붙인 형식이다.

소설가 박범신 씨는 1999년 쓴 장편 <침묵의 집>을 개작해 <주름>이란 제목으로 2006년 출간했고, 소설가 최인호 씨 역시 1994년 출간한 장편 <왕도의 비밀>을 10년 후인 2004년 개작해 <제왕의 문>이란 제목으로 다시 출간한 바 있다. 이순원의 <모델>은 전자책으로 먼저 발표한 소설을 4년 후 개작해 종이책으로 출간한 사례다.

대부분 작가들이 개작을 출간하는 이유로 "시대와 작품관이 변했기 때문"이라고 꼽았다.

'문장의 작성자에게 퇴고라는 작업 방식은 그의 직업상의 부활이요, 윤회다. 자기의 직업적 전생을 그때마다 다시 산다.'

2002년 다시 쓴 의 <화두> 서문에 적힌 말은 작가들의 생각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윤주 기자 miss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