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명숙 전 국무총리 공판서 시내버스 폭발 사고까지 2010년 10대 사건

슈퍼스타K
각종 언론사들이 선정한 '2010년의 핫 뉴스 탑 10'을 보니 과연 저 모든 사건들이 한 해에 다 일어난 것인지 의심스러울 정도다. 저렇게 엄청난 일들, 저렇게 감당하기 어려운 일들이 정말 2010년에 한꺼번에 일어났던 것일까.

'북한의 연평도 해안포 공격'과 '해군 초계함 천안함 침몰', 그리고 '북한의 김정은 3대 세습 현실화'. 이 세 사건은 거대한 삼각 편대를 이루어 전쟁의 공포를 한동안 잊고 있었던 한국인들의 집단무의식을 무자비하게 공격했다.

한국전쟁이 아직 끝난 것이 아니라 여전히 '휴전 중'임을 상기시키는 저 끔찍한 일련의 사건들은 2010년을 유독 힘겹게 보낸 한국인의 마음에 지울 수 없는 트라우마를 남겼다.

좋은 소식도 없지 않았다. '김연아 동계 올림픽 금메달'은 스포츠와 예술과 엔터테인먼트가 하나로 집약된 기적적인 스펙터클을 연출했고, '월드컵 사상 첫 원정 16강'은 사람들로 하여금 모든 걱정을 잊고 응원열기에 빠져 사랑하는 사람들과 시원한 맥주 원샷을 하기에 딱 좋은 뉴스였다.

그러나 2010년 한국사회의 분위기를 한 마디로 요약하라고 말한다면, 대한민국의 구조적 병폐가 빠짐없이 한꺼번에 다 드러난 부끄러운 한 해였다고 정리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천연가(CNG) 시내버스 폭발사고
'4대강 살리기 사업 논란'은 수많은 양심적 지식인과 저항세력들의 지난한 투쟁에도 불구하고 이미 그 끔찍한 파급효과를 초래하기 시작했고, '외교부 특채 파문 공정사회 논란'은 극심한 양극화 현상으로 인해 상대적 박탈감을 느낄 수밖에 없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치명상을 안겨주었다.

'대한민국 스마트폰 열풍'은 언뜻 멀리서 보면 흥미롭고 생산적인 뉴스다. 그러나 스마트폰으로 인해 생기는 정보 유출이나 엄청난 비용 증가는 무시할 수 없는 병폐였다. 여전히 우리는 '과잉 커뮤니케이션' 사회 속에서 지나치게 많은 정보를 흡수하고 소비하며 정보의 소화불량에 시달리는 것은 아닐까.

'G 20 서울 정상회의 개최'는 시작 전에는 엄청난 홍보로 정말 88올림픽이나 2002월드컵 못지 않은 국민적 열기를 조장했으나, 끝나고 나서는 도대체 한국이 '무엇'을 얻었다는 것인지 알 수 없는 희대의 미스테리(?)로 남게 되었다.

대한민국에는 휘황찬란한 전시행정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대한민국의 전시외교는 평소의 전시행정을 뛰어넘는 호화찬란한 퍼포먼스를 세계만방에 과시했다. 한국 언론이 주목한 10대 사건 중에 가장 기쁜 소식은 바로 '칠레 광부 33인 기적의 구조'였다.

올해 들어 가장 기쁜 사건이 한국에서 일어나지 않아 안타깝지만, 칠레 광부 33인이 69일 간의 기나긴 사투 끝에 한 명 한 명 구조되어 세상의 빛을 보는 장면은 지구라는 세계가 오롯이 다시 태어나는 듯한 원초적 감동을 주었다.

박칼린
어떤 역경에도 굴하지 않고 타인의 생명을 살린다는 것, 시시각각 생존 자체가 위협받는 상황 속에서도 죽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보다 더 큰 기적이 있을까. 한 사람 한 사람의 생명보다 '자본'이나 '권력'을 더욱 중시하는 세상에서, 칠레 광부 33인의 생환은 어떤 보석보다 찬란하게 빛나는 기적이었다.

33인의 평범한 광부들을 살리기 위해 대통령을 비롯한 온나라 사람들이 일사분란하게 자기 몫의 '어시스트'를 해내는 장면은 그 어떤 세기의 빅 매치보다도 감동적이었다.

언론사들이 정한 '올해 핫 뉴스 탑 10'을 바라보며, 우리도 저마다의 아주 개인적이고 사적인 탑 뉴스 리스트를 만들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들 저마다의 기억 속에 2010년 한국사회를 담아내는 핫 뉴스 앨범을 만들어보면 어떨까. 내 기억 속의 개인적인 앨범을 정리해본다면 다음과 같은 뉴스들이 차례로 떠오른다.

1. 한명숙 전 국무총리 공판에서 거짓 증언한 한만호 사장의 진술번복 2. 무상 급식 서울시 반대로 무산 3. 타블로 학력 논란 4. SK 계열사 최철원 사장 민간인 폭행 5. 구제역 확산 6. 안상수 대표 '보온병' 논란에 이어 '자연산' 언급 논란 7. 수퍼스타 K 열풍 8. 리더십 9. 봉은사 땅 밟기 파문 10. 시내버스 폭발 사고…….

사회의 치명적인 병폐를 보여준 대표적인 뉴스는 한명숙 전 국무총리 공판과 서울시 반대로 인한 무상급식 무산이었다. 누군가 협박을 했다고 해서 거짓 진술을 했다는 사람도 문제지만, 누군가를 협박해서라도 진실을 조작해야 하는 사람들의 본심은 무엇일까.

아무리 돈이 최고인 세상이라지만 아이들의 무상급식조차 가로막아 얻어야하는 자본의 이해관계라는 것이 과연 얼마나 대단한 것일까. 아이들의 끼니를 굶겨 얻어낼 수 있는 그 '이익'이라는 것이 얼마나 떳떳한 것일까.

SK 계열사 최철원 사장의 민간인 폭행은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서러움을 만천하게 폭로한 사건이었다. 과연 우리가 밟고 사는 이 땅에서는 약자가 숨 쉴 수 있는 공간이 한 평도 남아 있지 않은 것일까.

안상수 대표의 '보온병' 논란과 '자연산' 언급은 아주 부정적이고 우회적인 방식이긴 하지만 오랜만에 국민들에게 '큰 웃음'을 안겨주었다. 보온병과 자연산의 연타석 홈런(?)은 최근 10년간 정치인이 국민에게 선물해 준 가장 '유머러스한' 자기 풍자극이었다.

봉은사 땅 밟기 파문 또한 우리 사회의 심각한 편협성과 경직성을 폭로하는 사건이었다. 사상의 자유는 물론 종교의 자유조차 제대로 보장되지 못한 우리 사회의 삭막한 정신적 토양이 부끄러워졌다.

타블로 학력 논란은 인터넷이라는 거대한 언어의 전쟁터에서 한 개인이 자신의 정당한 인권을 찾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나아가 한 사람의 삶을 송두리째 뒤흔드는 고통의 가해자가 '불특정 다수의 네티즌'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 사건이었다.

사람들이 매일매일 타는 시내버스에 그토록 무서운 '위험요소'가 숨어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자, '우리, 보통 사람들'이 오고가는 모든 공공장소와 대중교통수단이 의심스럽게 보였다. 이 추운 날씨에 구제역과 사투를 벌이고 있는 축산 농가와 아무 죄도 없이 죽어나가는 소들의 안타까운 비명소리는 뉴스를 바라보는 우리들의 눈을 질끈 감기게 만들었다.

대중문화 부문에서는 두 가지 현상이 가장 기억에 남았다. 바로 수퍼스타 K 열풍과 리더십 신드롬. 수퍼스타 K라는 프로그램 자체는 물론 스타 시스템을 새롭게 양산하는 방식이겠지만, 사람들은 '허각'에게서 아무리 지금 이 순간이 힘들어도 꿈을 잃지 않고 앞으로 달려 나가는 자만이 누릴 수 있는 희망을 보았다.

허각의 우승은 국민들의 문자 투표 없이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국민들이 '그가 불러주었으면' 하는 곡을 선정했고, 국민들이 가장 힘든 역경을 건너온 그가 우승하기를 바랐던 것이다.

신민아, 이승기를 비롯한 희대의 톱스타 광고 모델들을 제치고 2010년 한국인들이 가장 신뢰하는 광고 모델로 거듭난 . 사람들이 그녀를 통해 기대하는 것은 누구에게도 쉽게 '믿음'과 '신뢰'를 바랄 수 없는 세상에서, 어떤 지도자를 완전히 믿고 그의 가르침을 묵묵히 따르는 일만으로도 보람찬 인생을 살 수 있는 보증수표가 되는 삶이 아닐까.

은 아름다운 공연을 연출하고 지휘할 수 있지만, 진정한 스승과 정신적 지주를 찾지 못한 한국인들은 각자의 쓸쓸하고 각박한 삶을 어떻게 연출하고 지휘해야 할까.



정여울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