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 성매매 여성과 건달, 트랜스젠더 삶 조명

연극 <켈리포니아>
최근 사회의 소수자들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이와 관련한 문화 담론도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이런 문화적 조명도 일부 계층에는 비켜가고 있다.

가령 성매매 여성이나 트랜스젠더, 건달과 같은 계층이 그렇다. 사실상 사회의 최하층인 이들의 희망과 이상을 실험적인 형식을 통해 풀어낸 연극들이 있다. 어려운 현실 속에서 이들이 꿈꾸는 것은 뭘까.

전쟁 같은 삶의 탈출구, 캘리포니아

극의 시작과 함께 한 무리의 남자들이 치열하게 싸움을 벌인다. 뒤를 이어 관능적인 옷을 입은 여자들이 나타나 기둥을 잡고 춤을 추기 시작한다.

이 작품이 공연되는 무대는 국립극장. '국립극장에서 이런 작품을?'하고 불안해지려는 찰라, 무대 위 여자들은 급기야 "오빠 놀다가~ 싸게 해줄게"라는 파격적인 대사마저 거침없이 날린다.

연극 <나비빤스>
지난해 12월 31일까지 국립극장 별오름극장에서 공연된 현존 퍼포먼스의 연극 <캘리포니아>는 이처럼 가장 밑바닥 삶을 살고 있는 성매매 여성과 건달을 소재로 한 작품이다. 작품의 제목인 '캘리포니아'는 극 중 성매매 여성이 이상향으로 품고 있는 도시로, 극적 배경이 되는 사창가와 대비되어 그려진다.

조직의 일원인 남주인공은 조직을 배신한 형님을 처단하지 못하고 그냥 돌려보낼 정도로 인간적인 건달이다. 그는 창녀지만 순수한 여주인공에게 사랑을 느끼며 동료의 눈을 피해 도주할 계획을 세우지만 일은 잘 풀리지 않는다.

'창녀와 포주'의 관계는 영화와 뮤지컬 등에서 종종 다뤄지는 소재지만, 연극에서 이들의 관계를 조명한 사례는 흔치 않다. 또 이들의 이야기를 사창가에서 피어나는 순수한 사랑과 이상향 좇기로 다룬 것도 이례적이다.

최교익 작가의 원작을 기반으로 한 <캘리포니아>는 밑바닥 인생들이 어려운 현실 속에서 미래에 대한 희망을 꿈꾸는 내용으로 이루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은 폭력적인 조직의 세계와 성 상품화 시대의 상징인 섹스를 다루며 파격적인 현실을 다룬다.

때문에 이 같은 작품이 보수적인 국립극장의 대관심의를 통과한 것도 뜻밖이다. 그러나 국립극장 대관심의위원들은 "실제 현실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건들은 예술적 상상을 뛰어넘는 충격적인 일들이 더 많다"며 이번 작품에 힘을 실어줬다고 전한다.

연말 분위기와는 일견 어울리지 않는 소재 같지만, <캘리포니아>는 소외된 인간 군상을 비추며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놓지 말아야 할 희망을 이야기한다.

사창가를 통해 인간의 배설욕을 상징적 기호로 그려낸 박명규 연출가는 이 작품을 통해 '무엇을 위해 오늘을 살아가는가'의 문제를 고민해볼 것을 권유하고 있다.

성 관념이 충돌하는 곳, 샌프란시스코

한편 13일부터 대학로 아트씨어터 문에서 공연되는 는 트랜스젠더 바에서 벌어지는 성전환자들의 애환을 생생하게 그려내 관심을 모은다.

연극이 전개되는 배경은 지방 소도시에 있는 트렌스젠더 바 '샌프란시스코'. 연극은 전직 다방 업주이자 이성애자인 탁명구의 시선을 통해 우리 사회의 성 관념이 충돌하고 갈등하는 과정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실제 LGBT 퍼레이드로 유명한 도시 샌프란시스코처럼 트랜스젠더 바 '샌프란시스코'는 일반 이성애자와 트랜스젠더가 공존하는 공간이다.

전직 다방업자인 탁명구는 구인 광고를 통해 트랜스젠더인 미자와 용녀, 배마담과 탁명구의 사촌동생 등을 합류시켜 공연연습을 시작한다. 그러던 중 탁명구는 예상치 않게 미자를 조금씩 마음에 담게 되지만, 혼자만의 오해로 미자에게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저지르고 만다. 미자는 성전환 수술을 받기 위해 서울로 떠나고 탁명구는 그런 미자를 기다린다.

직접 극본을 쓰고 연출을 맡은 최무성 연출가는 "전체적인 극에서 멜로 부분은 남자주인공 탁명구의 이성관과 성 정체성에 맞춰 그리고 있다"고 설명하며 "트랜스젠더 바 특유의 극적 장치를 활용하며 직업인으로서의 애환과 갈등을 부각시키려고 했다"고 연출 의도를 밝혔다.

'나비빤스'로 대표되는 트랜스젠더들의 이야기는 시종일관 성적 해방감과 생동감을 주는 원동력으로 작용한다. 이는 뮤지컬 <록키호러쇼>처럼 적당한 외설과 이국적 요소들이 맞물려 극적인 흥미를 자아내는 장치로 쓰이고 있다.

트랜스젠더들의 성 정체성을 상징하는 '나비빤스'는 인간관계의 유대가 성 정체성의 획일적인 기준에 따라 결정되는 것은 아닌지 다시금 생각해보게 한다. 이런 재고의 기회는 1일부터 31일까지 대학로 갤러리카페 '포토텔링'에서 진행되는 사진전 <나비빤스>를 통해서도 제공될 예정이다.



송준호 기자 trista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