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 국내외 수준 높은 희극 작품 7편 선정

민중극단의 '국물 있사옵니다'
'연극열전'으로 대표되는 인기 명작 공연과 개그맨들의 개그쇼로 양분돼 있는 대학로에 새로운 바람이 불 전망이다. 얼마 전 기존의 '대학로 희극연극제'가 '대학로 코미디 페스티벌'로 재출범한 것이다.

연극 활성화, 왜 코미디에 달려 있나

한국공연예술센터가 주최하며 탄생한 제1회 대학로 코미디 페스티벌은 현재 대학로 연극의 심각한 위기에 대처하려는 연극계의 고민의 결과다.

이번 행사에서 총감독을 맡은 정진수 연출가는 "관객의 발걸음이 줄어들고 있는 연극을 활성화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로 코미디를 육성할 필요가 있었다"고 이번 행사의 기획 배경을 설명했다.

그동안 대학로 희극연극제는 5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코미디의 확산과 페스티벌의 인지도 각인에 꾸준히 공을 들여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특정 장르의 축제라는 점은 형식 개발이나 관객층 확대 등의 측면에서 분발을 요구받았다.

극단 골목길의 '처음처럼'
특히 장르의 특성상 코미디는 공연만이 아니라 복합문화 콘텐츠의 원형으로서 다양한 산업과 연계하는 전략적 활용이 제기돼 왔다. 이번 대학로 코미디 페스티벌은 연극 활성화의 의미뿐만 아니라 이 같은 문화 콘텐츠로서의 기능까지 감안한 변화라고 할 수 있다.

코미디를 통한 연극 활성화의 가능성은 이미 이전부터 여러 가지 징후들로 나타나고 있었다. 그 단적인 예는 최근 우리 연극 무대에서 셰익스피어만큼이나 빈번히 공연되는 체호프 연극의 인기가 그것이다.

체호프 탄생 150주년이었던 2010년은 유난히 체호프의 작품들이 국내에서 자주 소개됐다. <바냐아저씨>, <벚꽃동산>, <쟈쟈바냐>, <숲귀신>, <갈매기> 등이 계속 이어지면서 관객들의 체호프에 대한 기대치는 점점 더 높아졌다.

김미도 연극평론가는 "우리 시대의 관객들이 그의 작품에 열광하는 이유는 체호프의 작품들이 지니고 있는 부조리한 일상 속의 희극성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상대방의 의사와 관계없이 자기 말만 열심히 지껄이는 체호프의 인물들은 관객에게 희극적으로 다가온다는 것이다.

최근 몇 년 동안 평단과 관객이 가장 주목하는 작가인 박근형 연출가의 작품도 이와 같은 부조리한 일상의 희극성에 기인하고 있다는 평가도 있다.

연희단 거리패의 '살아있는 이중생 각하'
김 평론가는 "최근 우리 연극에서 가장 희극성이 두드러지는 작가 중 하나는 박근형인데, 고단하고 비루한 일상을 세밀하게 포착하여 확대시키는 그 특유의 일상성은 너무나 사실적인 나머지 비사실적으로 보이는 아이러니를 낳곤 한다"고 설명한다.

마냥 유쾌한 웃음이 아닌 씁쓸한 실소와 냉소를 자아내는 연극의 호응은 현실에서 벌어지는 부조리한 일상의 모습과 무관하지 않다. 그래서 김미도 평론가는 현재 부조리 연극의 희극성이 주효한 이유가 관객들이 무대에서 벌어지는 부조리한 삶의 단면들에 자신의 모습을 대입시키며 느끼는 연민과 공포라고 분석한다.

이번 대학로 코미디 페스티벌에서는 이와 같은 부조리한 일상을 다룬 희극 작품을 포함해 다양한 소재와 높은 수준의 희극 작품 7편이 선정됐다.

지난해 말 선을 보인 <휘가로의 결혼>은 이번 행사의 공식초청작으로, 하인이 뛰어난 기지를 통해 주인을 상대로 결혼승낙을 받아내는 대규모 정통희극으로 좋은 반응을 얻은 바 있다.

극단 수레무대의 <스카팽의 간계>와 한국연출가협회의 <사랑의 헛수고> 등 6편의 공식참가작도 뒤를 이어 높은 작품성을 보여주고 있다.

구체적인 전략으로 페스티벌 키워야

하지만 이제까지의 페스티벌이 그랬듯이 단순히 좋은 작품을 들여와 보여주는 형태로는 연극 활성화라는 목표를 이루기에는 부족하다. 박용재 예술경영센터 대표는 이와 관련해 구체적인 페스티벌 발전 전략이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그가 가장 중요하게 내세우는 전략은 창작코미디의 활성화다. 매해 개최되는 페스티벌에서 양질의 작품을 꾸준히 선보이기 위해서는 새로운 소재와 형식의 신작 코미디 희곡의 수급이 전제된다.

박 대표는 "일종의 희곡 공모 형식으로 작가 발굴과 웃음의 신소재를 찾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관객 참여도 못지않게 중요하다. 특히 관객들의 즉각적인 반응이 무엇보다 중요한 코미디에서 관객을 감안하지 않은 코미디는 외면받기 십상이다. 박 대표는 관객들이 직접 뽑는 작품상이나 연기상 등을 신설하여 운용할 것을 제안하기도 한다.

또 지역과 연계해 공연하는 것도 코미디를 확산하는 방법이 될 수 있다. 특히 서울에서만 공연되고 끝나는 행사가 아니라 처음부터 서울과 지역을 묶어 기획하고 마케팅하면 지역의 문화 향수권도 확대할 수 있다.

이런 시스템은 일정한 콘텐츠가 쌓일 경우 페스티벌이 하나의 코미디 연극 콘텐츠 은행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는 기반이 되기도 한다.

극장 공연뿐만 아니라 야외 공연도 개발해 여름철 해변 축제에서 코미디 연극을 공연함으로써 페스티벌의 콘텐츠가 전국이나 해외 축제에도 수출될 수 있다.

박 대표는 또 마로니에공원의 공공성을 코미디로 확보하자고 제안한다. 130개의 극장 외 대학로의 상징인 마로니에 공원을 먼저 코미디의 공간으로 만들자는 것. "계절과 날씨에 따른 문제도 있지만 야외 코미디를 할 수 있는 시기를 조절한다면 시민들에게 웃음을 선사하는 공간으로서 마로니에공원이 코미디 연극 활성화에 이바지할 수 있지 않을까."

이 같은 페스티벌 발전 전략에는 결국 코미디뿐만 아니라 연극 전체 관객층을 넓히려는 의도가 다분히 묻어난다. 쉽게 공감할 수 있고 웃을 수 있는 장르를 통해 연극 자체에 흥미를 갖게 하려는 것이 이번 행사 출범의 취지이기 때문이다.

페스티벌 관계자는 "앞으로 민중극단의 <국물 있사옵니다>, 연희단거리패의 <살아있는 이중생 각하>, 공연제작센터의 <유쾌한 유령>, 극단 골목길 <처음처럼> 등 참가작들을 통해 한국 코미디 연극의 현 주소와 앞으로의 방향을 가늠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고 희망을 내비쳤다.



송준호 기자 trista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