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25, Acrylic on canvas, 97×130cm'
특유의 슬픈 눈망울을 가지고, 꿈 속 언저리를 유유히 거니는 사슴. 내면의 숲속을 헤매는 그들의 발길은 각기 다른 곳을 향하고, 시선조차 제각각이지만 왠지 모르게 모두 한 사람의 시선을 갈망하는 듯하다.

그 한 사람은 결국, 작가 자신을 포함한 우리 모두를 지칭하는 것으로, 사슴은 그들의 발길과 시선을 통해 우리 자신을 내면의 숲으로 안내한다.

작가의 작품 속에 등장하는 사슴은 이처럼 신비스러운 존재, 내면의 그 무엇과 연결되는 고귀하고 신성한 존재로 파악된다. 그도 그럴 것이, 사슴은 그 옛날 고대 신화에서부터 하늘과 땅을 이어주는 신성한 존재로 등장해왔다.

이러한 사슴의 이미지는 작가에게 '영원한 생명을 상징하는 원형적 심상으로 잠재된' 존재로 인식되어, 그의 작품 속 주요한 테마이자 모티프로 사용돼 왔다.

대체적으로 파스텔 톤의 색상을 사용하면서, 산뜻하면서도 몽환적인 분위기를 한층 고조시킨 이번 작품들은 그로 인해 무의식의 심연을 떠오르게 한다. 주목할 만한 것은, 사슴 이외에 작품 속에 상징처럼 등장하는 기호 문양들이다.

이는 단순히 장식적 요소가 아닌, 의식의 기표로 이해된다. 뚜렷한 언어로, 혹은 이미지로 표현될 수 없는 내면의 심상을 암호와도 같은 기호로 표현해 냄으로써, 모든 생명 속에 깃든 고귀함과 숭고함을 드러내고자 한 것이다.

2010년 12월 27일부터 1월 11일까지. 갤러리 더케이. 02)764-1389



이인선 기자 kell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