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와 작품 2 카메라와 인권]영화 , 디지털 사회의 역기능 경고

이제 숨을 곳은 없다. 우리는 언제나 누군가가 지켜보는 세상에 살고 있다. 파도에 수영복이 벗겨지거나 시상식에서 어깨끈이 풀어진 여배우만 피곤한 세상이 아니다. 찰나의 빈틈을 놓치지 않고 하이에나처럼 달려드는 카메라는 언제든 우리를 향할 수 있다.

파파라치의 카메라 이야기가 아니다. 건물 안팎, 교통 표지판 아래에서부터 화장실 안쪽까지, 카메라는 도처에 있다. 그것들이 찍는 것은 무엇일까. 그 카메라 저편에는 누가 있을까.

최근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의 '민간인 불법사찰'의 청와대 관여설이 제기되면서 소문으로만 돌던 '빅 브라더 재림'이 현실화되고 있다.

CCTV의 감시와 폭력은 국가기관과 민간을 가리지 않는다. 국가인권위원회의 조사 결과 주택가, 상가, 지하보도, 대학, 도로, 시장 등 광범위한 영역에 걸쳐 설치되어 있는 CCTV는 하루 평균 83회 정도 시민들을 '감시'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영화 <이글 아이>는 이 CCTV의 시선을 포함한 디지털 사회의 역기능을 경고하고 있다. 높은 곳에서 멀리까지 바라보는 독수리의 눈은 '빅 브라더'의 은유로, 영화 자체는 온갖 빅 브라더에 대한 담론을 가장 재미없게 전개시켰다는 혹평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나 런던에만 4000대의 감시 카메라가 있다는 영국과 한 사람이 하루 동안 접하는 CCTV가 200대에 이르는 미국의 상황은 남일이 아니다. 영화의 경고가 그럴 듯한 것은 이런 현실의 흐름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리즈를 거듭하고 있는 영화 <쏘우>는 이런 카메라의 주도권을 쥔 자와 그 건너편의 약자의 관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영화에서 강자와 약자의 관계는 CCTV를 매개로 손쉽게 갈린다.

<트루먼 쇼>에서 주인공은 카메라 저편의 PD가 만든 세상에서 살아가는 인형에 불과하다. 그에게 자신의 삶을 선택하고 개척할 방법이란 없다. 자신을 둘러싼 폭압적인 시스템을 눈치채고 저항하는 주인공과 이를 막으려는 PD의 싸움은 그대로 현대사회의 보이지 않는 시선에 대한 메타포다.

CCTV뿐만이 아니다. 무심코 침실 창문을 연 당신은 건너편 건물에서 카메라를 든 채 당황하고 있는 사람과 눈이 마주칠 수도 있다. '1인 1카메라' 시대를 사는 현대인은 익명의 누군가에게 언제라도 찍힐 수 있는 위험에 처해 있다.

물론 최근 '지하철 반말녀', '지하철 성추행남', '지하철 폭행남' 등 파렴치한들을 잡아내는 순기능도 있지만, 이들의 경우도 '몰래 카메라'라는 인권침해적 수단이 사용됐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아메리칸 파이>에서는 전교 학생들에게 성관계 장면이 생중계되는 장면이 코믹하게 다뤄진다. 비록 영화에서는 이런 치욕스러운 상황이 코미디로 표현됐지만, 실제로는 이런 개인의 은밀한 부분이 노출됐을 때 가장 불행한 결말을 초래할 수 있다. 실제로 지난해 미국에서는 친구의 몰래 카메라로 자신의 동성 애인과 관계를 맺던 한 대학생이 투신 자살한 일도 발생했다.

정보기술(IT)의 발전과 함께 현대사회는 이미 소설 <1984>의 세계를 닮고 있다. 우리는 이제 사회 곳곳에 설치된 빅 브라더의 흔적과 내 옆, 바로 등 뒤의 새로운 적 '스몰 브라더'들에 대한 경계도 늦추지 말아야 한다. 이래저래 피곤한 세상이다.



송준호 기자 trista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