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리 굽은 바람'
언어로 담아낼 수 없는 요란한 색의 울림은, 반대로 무언의 흑백 속에서 제 빛을 뿜는다. 푸른빛을 잃은 바다는 그래서인지 더욱 깊이감을 드러내고, 내면의 작은 떨림조차 파도가 되는 듯하다.

바다를 찍는 작가 원덕희에게 바다란, 멀찍이 떨어져 자기 자신을 관망할 수 있는 드넓은 거울이다. '삶의 여정에서 침전된 일종의 감정의 잔여물' 혹은 '삶의 회환과 아쉬움이 투영된 삶의 잔영'과도 같은 바다의 풍경은 흑백사진 속 바래진 추억을 상기시킨다.

그의 사진 속에는 주목할 만한 피사체, 독특한 구도 등 사람들의 시선을 끌 만한 그 어떤 기교도 찾아볼 수 없다. 지극히 평범한 바다와 구름, 아무렇게나 핀 하찮은 풀과 나무들이 듬성듬성 자리할 뿐이다. 심지어 사람조차 찾아볼 수 없는 황량한 풍경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멈칫하게 만드는 고유의 분위기는 바로 '쓸쓸하고 장엄한' 바다의 울림 때문이리라. 특별하고 특이한 것이 오히려 평범해진 이 시대에, 이처럼 평범한 바다의 풍경은 우리의 내면을 요동치게 만든다. 나아가 충격을 가한다.

작가는 말한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이 땅이 아니면 담을 수 없는 풍경들, 이곳이 아니면 다가오지 않을 바다 내음, 이 모든 것들을 내 방식대로 정리하는 기쁨. 그래서 암실에서 인화된 사진을 볼 때 나는 진정 행복을 느낀다.

비록 가난하지만 나만의 것을 가지고 있으니 얼마나 좋은지 모르겠다. 행복을 서랍 속에 놔두고 불행만 느끼며 사는 이가 얼마나 많을까?" 그에게 바다는 진정한 위로, 그리고 행복이다.

1월 5일부터 1월 29일까지. 갤러리 덕. 02)6053-3616



이인선 기자 kell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