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나 바우쉬의 댄싱 드림즈]청소년들이 통해 춤 배우는 과정 기록한 다큐멘터리 영화

현대인을 가장 괴롭히는 병은 암이나 에이즈, 혹은 신종 바이러스가 아니다. 우울증 또는 화병의 형태로 발현되는 '마음의 병'이다. 이 마음의 병은 성별과 연령, 계층을 구분하지 않는다. 수년 동안 서점에서 사라지지 않는 각종 심리학 책이 그것을 뒷받침하고 있다.

최근 여러 가지 심리치료 방법이 대중에게 알려지면서 그 중 하나인 춤 치료도 각광을 받고 있다. 춤 치료를 포함한 동작 치료의 핵심은 몸을 움직이면서 자신 안에 묵힌 것을 표출하는 것이다.

이 방법이 우울감 해소의 방법 중 하나인 '운동'과 다른 것은 분노와 좌절감 등 억눌린 감정이 표현과 함께 해소될 뿐만 아니라, 그것을 보는 이까지 그 감정의 변화를 고스란히 느끼게 한다는 것이다. 여기까지 오면 한낱 일반인의 작은 몸부림도 종종 예술의 경지가 되기도 한다.

최근 개봉한 <피나 바우쉬의 댄싱 드림즈>는 바로 이런 춤의 치유적 기능을 잔잔하게 담아낸 다큐멘터리다. 원제는 'TANZTRaUME'으로 한국어 제목과는 차이가 있다. 하지만 제목 때문에 언론과 대중의 관심은 피나 바우쉬에 쏠렸지만, 이 작품의 주인공은 바우쉬가 아니라 그의 작품에 출연하는 청소년들이다.

영화는 춤을 배워본 적이 없는 청소년들이 열 달 동안 바우쉬의 작품 <콘탁트호프(Kontakthof)>를 배우는 과정을 기록했다. '매음굴'이라는 의미를 가진 이 작품은 1978년에 초연된 것으로 바우쉬 특유의 탄츠테아터의 특성이 가장 잘 구현된 예로 꼽힌다.

그러나 영화에서 카메라의 시선이 꽂히는 것은 바우쉬가 아니라 <콘탁트호프>에 출연하는 배우들이다. 독일 부퍼탈 인근의 12개 학교에서 온 46명의 학생들은 한 번도 배워보지 못한 춤을 통해 서로를 알아가고 영화는 그 모습을 그대로 담는다.

그네들만의 상처와 아픔을 간직한 10대 청소년들이 그런 감정을 표출하고 스스로 그것을 치유해가게 되는 매개는 바로 <콘탁트호프>다. 이들은 남녀가 만나 처음으로 서로의 몸을 알아가며 친밀한 감정을 교류하게 되는 과정을 표현한 이 작품을 통해 사랑에 대한 고민과 장래에 대한 불안과 혼란을 극복해가기 시작한다.

대개 아마추어들의 어설픈 춤사위는 수준 높은 관객들을 불만스럽게 하지만, 그 움직임 속에서 심금을 울리는 감동을 끌어내는 것이 바우쉬라는 존재다.

영화 속에서도 전쟁의 참상을 경험한 트라우마나 사랑의 감정을 느껴본 적 없는 건조함 등 저마다의 부정적인 기억을 가진 청소년들이 이를 끄집어내 춤에 접목하는 장면은 새삼 피나 바우쉬라는 거장의 역량을 실감하게 한다.

바우쉬의 작품이 으레 그렇듯이 특별히 고난도의 동작이나 인상적인 무대장치의 도움 없이도 무대 위에 선 남녀들은 정면을 응시하는 것만으로 관객의 시선을 확 끈다. '무용수의 몸'이라는 선입견과는 애초에 멀리 떨어진 그들의 몸은 천차만별한 인간의 개성만큼 고유한 자신들의 춤을 춘다.

하지만 이 우스꽝스러운 동작들이 은은한 감동을 주는 것은 그 움직임의 뿌리와 그것을 극복해낸 이들의 이야기에 공감하기 때문이다. 암 투병 중임에도 줄담배를 피우며 학생들을 흐뭇하게 바라보는 바우쉬의 표정은 어느새 그대로 관객들의 얼굴에 고스란히 옮겨진다.



송준호 기자 trista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