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욱진 20주기 회고전]향토적이며 동화적 그림에… 대표작과 미공개작 70여 점 선보여

가로수 Roadside Tree 1978 캔버스에 유채 Oil on canvas 30×40
"나는 내 몸과 마음을 죽을 때까지 그림을 그려, 다 써버릴 작정이다.
옛말이지만 '고생을 사서 한다'는 모던한 말이 있다. 이 말이 꼭 들어맞는다.
그림과 술로 고생하는 나나 그런 나의 뒤치다꺼리를 하는 내 처나 모두 고생을 사서 하는 것이리라. 그래도 좋은데 어떡하나. 난 절대로 몸에 좋다는 일은 안 한다. 평생 자기 몸 돌보다간 아무 일도 못한다."
- 고 장욱진 화백


일흔셋, 소신대로 몸과 마음을 소진하며 타계 두 달 전까지 그림을 그렸던 장욱진 화백(1917-1990). 가족, 나무, 어린아이, 달, 산, 개 등 소박하고 정감 어린 일상의 대상을 화폭에 담아온 그는 한국 근현대미술사의 대표 작가 중 한 명이다.

단순한 삶을 추구한 그의 그림에는 꾸밈없는 자신의 모습이 순수하게 투영되었다. 어떤 작가와도 닮지 않은, 독창적인 회화세계를 구축한 장욱진 화백의 타계 20주기를 맞아 대규모 회고전이 열린다. 대표작과 미공개작 등 70여 점이 전시된다.

대중에게 친근한 작가지만 미술사적으로도 그는 각별한 존재다. 숙명처럼 혹은 천형처럼 화가의 삶을 받아들인 그는 '동/서에 대한 강박관념을 없애고 양 진영의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으면서 우리의 전통을 현대에 접목시킨 작가'로 평가받는다(정영목 서울대 교수). 장욱진은 김환기, 이중섭, 박수근 등 동시대 작가들과 더불어 한국 근현대미술사에 무거운 발자국을 남겼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그림에 두각을 나타냈던 그는 일제 강점기, 동경의 제국미술학교에서 서양화를 공부했다. 해방 직후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근무한 경력도 있다. 6년간 서울대 미술대학 교수(1954-1960)로도 재직했던 그는 이후 줄곧 도시를 떠나 그림에만 전념했다.

자화상 Self-portrait 1951 종이에 유채 Oil on paper 14.8×10.8
도시의 번잡함을 견디기 어려워하던 그는 덕소, 수안보, 신갈 등지로 떠돌았다. 수도시설도 되어 있지 않은 열악하기 짝이 없는 화실. 가족도, 직장도 떠나 찾아간 한적한 시골 마을에서 그는 구도자처럼 그림을 좇았다.

향토적이면서 동화적인 그림, 장욱진 화백의 그림은 한 가지 인상을 풍긴다. 그러나 알고 보면 작풍은 다섯 차례나 변화를 겪었다. 1940년대까지 형태와 색채에 짙은 향토성이 배어있었지만 1950년대부터는 기하학적으로 단순화된 형태로 변했다. 이때부터 경쾌한 색채를 사용한다.

1962년까지를 장욱진의 초기시대로 본다. 이후 덕소에 화실을 마련한 덕소시대(1963-1975)에는 좀처럼 볼 수 없는 다양한 시도를 하며 정체성을 모색하던 시기다. 덕분에 슬럼프를 겪기도 했던 화백은 1972년 이후 구축한 독자적인 스타일을 흔들림 없이 밀고 나갔다.

수묵화 기법과 도가와 민화에서 소재를 찾은 화백은 동양화적 경향을 띤 명륜동시대(1975-1979)를 거쳐 수묵화적 유화가 절정에 달한 수안보시대(1980-1985)에 접어들었다.

이후 생의 마지막까지 이어진 구성(신갈)시대(1986-1990)는 종합화의 시기로 불린다. 구도와 표현의 파격성과 자유로움이 최고조에 달한 시기다. 타계 두 달 전에 그린 <밤과 노인>은 이 시기 작품. 흰 도포를 입은 노인이 하늘에 떠 있고, 오른편에 하얀 빈집이 그려져 있는데, 자신의 죽음을 예견한 것으로 보인다.

이번 전시는 1940년대부터 1990년 생의 마지막 작품까지 장욱진의 시대별 작품이 망라된다. <자화상 (1951년)>, <가로수 (1978년)>, <나무와 새 (1957년)>, <모기장 (1956년)>, 여기에 그동안 개인 소장되어 공개되지 못했던 <소 (1953년)>, <반월 (1988년)>, <나무 (1988년)>등도 선보일 예정이다.

그림뿐 아니라 다큐멘터리 영상도 공개된다. 특히, 지하 전시장에는 화백이 사용하던 화구 및 가구 등을 그대로 옮겨, 장욱진 화백의 생전 작업실인 경기도 용인의 아뜰리에를 고스란히 재현한다.

장욱진 화백의 장녀인 장경수 씨가 이끄는 '장욱진 미술문화재단'이 공동주최하는 이번 전시는 2월 27일까지 갤러리현대에서 이어진다. 오는 1월 21일 오후 2시에는 장경수 씨의 특별강의도 열린다.

한편 장욱진 화백 20주기와 관련해 출판사 마로니에 북스에서는 장욱진의 영문판 화집을 출간한다. 장욱진 화백을 해외에 적극적으로 알리기 위한 작업으로, 영문판 화집에는 작품 101점과 정영목 서울대 교수를 비롯한 평론가들의 평론과 장욱진을 기억하는 이들의 에세이와 사진 등이 담긴다.


나무와 새 Tree and Bird 1957 캔버스에 유채 Oil on Canvas 34×24
반월 The Half Moon 1988 캔버스에유채 Oil on canvas 45.7×35.5
가족 Family 1973 캔버스에 유채 Oil canvas 17.5×20

이인선 기자 kell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