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9명의 작가 노골적 성적 코드와 개발 욕망의 공존기대 담아

"청량리역 4번 출구에서 이문동 방향으로 150m 오면 편의점이 나옵니다. 그 뒤에 있는 빨간 벽돌 건물 2층 만화방으로 오세요."

'지령'을 따라 찾아간 건물에 <청량리 동시상영전>을 알리는 붉은 현수막이 걸려 있다. 2층을 다 덮은 현수막 위에는 실제 동시상영관 간판이 붙어 있다. 상영 중인 영화는 <창공을 향해 싸라>, <원죄적 본능>, <에로 비디오 오디션 미공개 필름>. 어쩐지 남우세스러워 머뭇거리며 들어섰더니, 허름한 행색의 할아버지 한 명이 앞질러 계단을 오른다. 도색으로 도배된 통로를 지나, 그가 흘끗 쳐다보고 가버린 만화방 문을 연다. "여기... 미술 전시 열리는 곳 맞나요...?"

지난해 떠들썩하게 들어선 청량리 민자 역사도 아직 '588'의 기억을 전부 쇄신하지는 못했다. 멀끔한 새 역사와 백화점 옆 골목에는 홍등가와 재래시장, 가난한 이들이 떠돈 풍습, 여행의 추억, 세월의 풍상을 겪은 흔적이 고스란하다.

산지사방의 교통 노선만큼이나 다양한 시간대와 삶의 모습이 겹쳐있는 곳. '청량리'에서 퇴폐적 성문화를 떠올리는 관습적 각인의 기원도 교통의 요지인 지역성에서 찾을 수 있다.

산업화, 도시화의 시절 역 주변은 갓 상경한 이들의 임시 거처였고 스치는 인연이 남루한 만큼 불안과 고독으로 소란했을 것이다. 기차는 매일 혈혈단신의 욕망들을 부려 놓았고, 그들은 망각을 전제한 채 얽혔다 흩어졌을 것이다. <청량리 동시상영전>으로 가는 길은 이토록 아우성이다.

이병엽, 'low law low'
<청량리 동시상영전>이 열리고 있는 곳의 내력은 청량리가 재개발의 풍랑 속에서 지금도 표류 중임을 증언한다. 한때 미용실과 만화방이었던 이곳은 청량리 민자 역사 공사 중 '함바 식당'이 됐다.

그 이후 재개발 이야기가 들려오는 와중에 마땅한 쓰임을 찾지 못해 비어 있던 이곳을 김교령 큐레이터와 9명의 작가들이 찾아낸 것. 어쩐지, 간판은 만화방인데 문에는 식당이라고 적혀 있다. 미용실 타일 바닥이 남아 있는 가운데 각각 다른 날짜를 가리키는 달력들이 걸려 있다.

"다양한 것들이 공존하는 청량리의 풍경에서 '동시상영'이라는 말을 떠올렸어요. 그 점을 잘 드러낼 수 있는 작가들과 함께 작업했고요." 김교령 큐레이터의 설명대로 전시장에서는 청량리를 다양한 각도로 포위하는 작품들이 관객을 맞는다.

들어서자마자 발에 밟히는 것부터 작품이다. '전국 1% 수질 보장', '예약 필수 오피스걸', '여대생의 애인 서비스'를 알리는 퇴폐업소의 명함 크기 전단지들. 언뜻 뒷골목마다 흔한 전단지처럼 보이지만 여기에는 사실 엄청난 음모가 숨겨져 있다.

국가보안법의 각 조항이 깨알 같이 적혀 있는 것이다. '반국가단체나 그 구성원 또는 그 지령을 받은 자를 지원할 목적으로 제4조 제1항 각호에 규정된 행위를 한 자는 제4조 제1항의 예에 의하여 처벌한다' 따위의 무시무시한 규율이 선정적인 사진과 충돌한다.

김동준, 'Asclelius'
이병엽 작가의 'low law low'다. 사회의 급변은 언제나 가치관의 혼란과 인간 소외를 낳았고, 통제하려는 권력의 작동과 일탈하려는 개인의 욕망을 동력 삼았다. 이병엽 작가의 전단지들은 그 모순을 함축하고 있다. 가장 일상적이기에 가장 도발적인 문제 제기다. 그러니까 비틀린 권력과 비틀린 욕망이 얼마나 깊숙이, 발에 채일 만큼 파고들어 있단 말인가.

벽에는 보기에 따라 얼굴이고, 보기에 따라 성기인 회색 형상들이 조르륵 붙어 있다. 각각 설명이 붙어 있다. '음모에서 칼을 뽑아', '불쑥 안타까움에 올라서서', '공허에 붙들린 나머지', '비롯한 시간을 응시하는 듯', '존재론적이 충만에 끌려드는', '영원한 기억의 소리'. 알쏭달쏭한 시어와 어울려 형상들은 마치 고대 유물처럼 보인다. 쇠락해가는 청량리에 대한 작가의 역사적 단상일까. 철학자로 더 유명한 조광제 작가의 '아무리 봐도 본래 그러한'이다.

청량리역을 향한 유리창에는 심효선 작가의 작품이 설치됐다. 나무로 만들어진 반 입체의 체스판과 말 탄 이, 십자가 든 이, 연설하는 이 등의 모습을 한 체스말들이 새 단장한 청량리역과 겹쳐 보인다. 청량리 개발의 지형에 대한 의미심장하고 발랄한 은유다.

이이정은 작가의 그림 속에서는 토마토 상자들이 하늘을 찌를 듯 쌓아올려져 있다. 저 위풍당당한 상품의 건설은 청량리뿐 아니라 한국사회 곳곳을 점령한 익숙한 풍경이기도 하다.

<청량리 동시상영전>의 작품들은 청량리라는 지명을 구성하는 노골적인 성적 코드와 개발 욕망 사이 긴장의 지대에 놓여 있다. 이번 전시가 끝나면 언제 자취를 감출지 모를, 어떤 사람들의 기억 속에 어떻게 남을지 모를 전시장 자체의 운명, 그 뿌리 깊은 임시성을 빗대기도 한다.

조광재, '아무리 봐도 본래 그러한'
김동준 작가의 'Asclepius'에는 자명종 소리를 성가셔하다 못해 시계를 부수고 다시 잠에 빠지는 남자가 나온다. 그런데 사실 그 자명종 소리는 의식을 잃은 남자를 살리려는 전기 충격 처치였다는 이야기. 평온하게 영원히 잠든 남자의 얼굴을 비추며 작품은 묻는다. 이곳, 그리고 여기서 우리가 만난 일도 언젠가 그저 꿈처럼 남지 않을까.

계원디자인예술대학 이영준 교수는 <초조한 도시>에서 "모든 것이 빨리 사라지는 한국의 도시에서는 기억의 재난에 대한 사후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도시가 변화하면 사람들의 기억은 손상되며 빨리 변화할수록 빈 자리도 커진다. "사람들이 오랜 세월 살면서 쌓아온 삶의 직조와 기억과 습관을 한순간에 없애 버리는" 한국의 도시 변화 속에서는 "빈 자리의 공허를 메워 줄 의식"이 필요하다. <청량리 동시상영전>도 그런 의식 중 하나인지 모른다. 찾아가는 길과 전시장 자체에서 만나는 모순과 충격도 하나의 작품이다.

전시는 1월30일까지 열린다.


심효선, '동시상영을 위한 드로잉1'
이이정은, 'somebody else's MONUMENT-201005'
이미숙, '식물의 동물 되기1'
양혜진, '억울한 사람'
김영식, 'Phase Transition-Jong Lee'
정민선, 'Non interesting any comment! 왜 네가 신경쓰는데!'

박우진 기자 panorama@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