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작의 평면적 이미지, 배우의 몸짓 통해 입체적으로 살아나

배우들의 표정이 왠지 우스꽝스럽다. 하나 같이 과장된 표정으로 입을 크게 벌린 이들은 마임공작소 판의 배우들. 피카소의 <게르니카>에 나오는 그림 조각들을 손에 든 이들은 그 조각들처럼 인상적이지만 이해할 수 없는 표정과 행동으로 객석에 어필하고 있다.

오는 2월 8일부터 공연되는 <게르니카>는 마임 공작소 판이 피카소의 동명 작품을 소재로 만든 이미지극으로 눈길을 모은다. 최근 연극계의 화두가 된 이미지극이라는 점과 피카소가 아닌 '피카소의 그림'이라는 키워드에서 눈여겨볼 만하다.

대사, 언어보다 이미지에 주목하라

요즘 연극 전단지에서 '실험적인'이라는 말과 가장 잘 결합되는 용어가 '이미지극'이다. 신체 이미지극, 활동 이미지극, 움직임의 건축적 이미지극 등 그 안에서도 종류가 다양하지만, 이미지극은 대개 대사나 줄거리보다 이미지를 주된 무대 언어로 사용하는 연극을 가리킨다.

전통적인 극 전개 방식 때문에 관객들은 공연이 시작되면 '이 연극이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에 모든 신경을 집중한다. 여기서 주목되는 것은 특히 대사다. 주요 인물의 대사 한 마디 한 마디에는 극의 주제를 응축시킨 작가의 생각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미지극에서는 대사보다 이미지로 무대를 채우는 새로운 형식이다. 그래서 이런 낯선 형식에 익숙하지 않은 관객들은 극장 문을 나설 때까지도 연극이 무엇을 말하려고 했는지 모를 수도 있다. 하지만 무겁고 정형적인 다른 연극에 비해 신선하고 감각적인 메시지를 전달한다는 점에서 이미지극은 최근 대중적으로도 지분을 얻는 중이다.

이중 대표적인 이미지극 전문 극단으로 자리매김한 극단 여행자는 배우들의 역동적인 신체의 이미지로 깊은 인상을 남기고 있다. 여행자가 관객에게 이미지극으로써 꾸준히 강렬한 인상을 줄 수 있는 것은 배우들의 몸을 활용한 육체적 물질성 덕분이다.

최근 주목받고 있는 서재형 연출가의 이미지극은 보다 실험적이다. 그의 작품에서 지나치게 나누어지는 내러티브의 반복은 그 자체로 이미지처럼 기능한다. 이렇게 짧게 잘린 내러티브마다 들어간 배우의 동작이나 조명, 음향이 마치 이미지의 콜라주처럼 보여 더욱 색다른 느낌을 자아낸다.

한편 극단 사다리움직임연구소는 가장 적극적인 이미지극 형태를 보여준다. 이들은 작품 안에 있는 동기를 끄집어내 구체적인 형태로 표현한다. 이 과정에서 소리나 조형물, 가면, 의상과 같은 무대장치들의 결합이 새로운 이미지를 보여준다.

마임으로 되살아난 '게르니카'

이번 <게르니카> 역시 이런 이미지극들의 특징과 대동소이하다. 원작이 주는 평면적 이미지는 배우의 몸짓을 통해 입체적으로 그려진다. 배우들은 게르니카 그림을 천에 찍어내 몸에 두르거나 그림 조각들을 모방함으로써 스스로가 게르니카 속 캐릭터가 된다. 관객들은 원래의 작품과 그것을 해석하는 눈앞의 공연을 비교하며 상상력을 자극하게 된다.

피카소의 생애가 다루어진 연극은 이전에도 있었지만, 피카소의 그림들이 이처럼 무대 전면에 등장하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다. 특히 <게르니카>는 등장하는 인물 하나 하나가 모두 다중적인 의미를 띠고 있어 그 상징과 은유를 풀어내는 일이 만만치 않다. 때문에 이번 작업은 그림 속 의미를 어떻게 무대 위에 의미를 담아 움직임으로 만들어내느냐가 관건이다.

이는 오히려 지난해 공연됐던 <이중섭 그림 속 이야기>와 비슷한 형식이다. 화가 이중섭이 가진 가족과 아이에 대한 사랑을 바탕으로 한 이 작품은 <황소>, <달과 까마귀>, <봄의 어린이> 등 이중섭의 대표작 약 15편을 인형과 애니메이션으로 구현했다.

두 작품을 모두 연출한 1세대 마임이스트 유홍영은 풍부한 형태와 회전하는 조각의 이미지들을 살려내기 위하여 배우들에게 직접 그림을 그리게 하며 등장인물들을 몸으로 표현하도록 했다. 또 스페인 내전의 참담함을 접하고 반전의 구호를 담아냈던 원작과 달리 이번 <게르니카>에서는 특정 전쟁을 지목하지는 않는다.

유 연출가는 "원작 그림에 등장하는 구체적인 이미지들은 움직임을 통하여 보편적인 이미지로 표현될 것"이라고 연출 방향을 설명했다.

전쟁으로 인해 희생된 사람들의 죽음 자체보다는 인간의 폭력성과 그로 인한 공포를 극대화해 폭력 앞에 선 인간의 나약함에 집중한다는 생각이다. 그는 "이번 작품은 인간에 대한 위로가 될 것이고, 치유는 물론 반전과 평화의 메시지까지도 전달하려 한다"고 밝히고 있다.

한편 일종의 연극과 미술 작업의 교류로서 이번 공연에서는 피카소의 그림을 즐기는 자리도 마련돼 있다. 공연장 로비에서는 '게르니카'의 이미지를 이용해 만든 유리 공예 전시도 함께 만날 수 있다.



송준호 기자 trista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