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띠크모나코미술관 37명 디자이너 편집매장 SHOP BMM 오픈

"앗, 레이디 가가가 입었던 옷이다!"

몸을 테이프로 칭칭 감은 듯 구조적인 형태의 드레스가 눈을 사로잡는다. 입을 때 단단한 거미줄 속으로 들어가는 기분이 들 것 같다. 언제나 지루한 패션과 전쟁을 벌이는 레이디 가가가 선택할 만하다.

그 자체로도 꿈같은 드레스지만 해몽은 더욱 근사하다. '최면'에서 영감을 받아 설계됐다. "과거의 행복한 기억으로 돌아가고 싶어 하는 사람들을 위한 옷이에요. 사람들이 최면에 걸리면 움직이지도 말하지도 못하잖아요. 그 점에서부터 출발했죠." 디자이너 아라 조의 작품인 이 옷의 제목은 'Hypnosis Boning Dress'. 번역하면 '최면 뼈대 드레스' 쯤 된다.

서울 강남역 근처에 위치한 부띠크모나코미술관에 37명 디자이너의 작품을 모은 편집 매장 샵비엠엠(Shop BMM)이 차려졌다. 이들의 공통점은 해외에서 더 유명한 한국 디자이너라는 것. 매장 오픈에 앞서 지난 1월25일부터 2주간 이들의 대표작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전시가 열렸다.

작년 레드닷 어워드를 수상한 디자인 스튜디오 캄캄(KamKam)의 부직포 소재 가구부터 영국 셀프리지 백화점의 브라이트 영 씽즈에 선정된 패션 디자이너 리 리(Li Lee)의 밧줄 드레스(Rope Dress)까지 한국 무대가 좁았던 앞선 감각의 디자인이 가득했다.

정재엽 디자이너의 'Roly-poly'
한국의 모마(MOMA)샵을 지향하는 샵비엠엠은 디자이너에게도 관객에게도 새로운 만남의 장이다. 한국 디자이너들이 해외 활동에 주력하는 이유 중 하나는 국내에 적당한 유통 구조가 없기 때문이다. 아직도 생활용품과 예술품의 간격이 넓은 국내에서는 디자인 제품의 위치가 모호하다.

상점과 갤러리 사이, 디자인 제품을 생활 속 문화로 공유하는 통로가 좁은 것이다. 샵비엠엠은 디자인 전시와 수익 기회를 동시에 넓히려는 기초 공사다. 장기적으로는 디자이너와 시장을 연결하는 에이전시로서의 역할도 고려하고 있다.

"디자인을 감상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디자인과 함께 노는 거예요. 그러니 오래오래 놀다 가세요." 부띠크모나코미술관 송현경 대리의 말처럼 샵비엠엠은 디자인 체험장이기도 하다.

제품마다 흥미진진한 사연이 있다. 조형석 디자이너는 한국의 기와와 산세를 닮은 벤치를 선보였고, 이삼웅 디자이너의 의자는 나무로 짠 별 모양 대형 바구니 같다. 디자인 그룹 WN카트의 닥스훈트 모양 조명은 턱 부분을 간질이면 몸통이 환해진다.

실제 사람과 강아지 간 스킨십 방식을 제품에 옮긴 것이다. 곽미나 디자이너는 제품에 사회적 메시지를 담았다. 안쪽에 지구를 상징하는 조형물을 세운 컵은 물을 마실 때마다 온난화로 인한 해수면 상승 현장을 목격하게 한다. 단추를 재활용해 만든 반지는 버려지는 것, 낡은 것의 의미를 다시 상기시킨다. 좋은 디자인은 결국 좋은 이야기임을 가르쳐주는 제품들이다.

KamKam의 'The Dress-up Furniture'
오는 4월25일까지 이어지는 '시즌#1'은 시작일 뿐이다. 계절마다 다른 컨셉트의 전시 및 판매가 진행된다. 해외 디자이너를 소개할 계획도 있다. 단 한 가지 원칙은 의식주와 관련된 디자인일 것. 디자인이 일상을 행복하게 하는 실용적 방법임을 잊지 않는 디자인을 선보이겠다는 뜻이다. www.bmmuseum.com/shop 02-3444-5042



손끝으로 툭, 밀어도 지나가다 부딪혀도 비틀비틀하더니 금방 바로 선다. 칠전팔기의 정신을 구현한 오뚝이 조명이다. 처음엔 장난 삼아 지분거리다가도, 나중엔 어쩐지 생명체처럼 느껴져서 조심스럽게 다루게 된다. "세상의 모든 것들은 어떤 형식으로든 반응한다"는 철학을 담은 디자인. 방 귀퉁이에 세워 놓으면, 내가 비틀비틀할 때마다 "힘 내, 나처럼 다시 일어나"라고 속삭여줄 것 같다.


이름대로 옷 입은 가구들이다. 겉면에 펠트 천을 덧댄 이 사랑스러운 가구들이 작년 레드닷 어워드의 주인공들. 초면에 덥석 안고 싶을 만큼 예쁜데다, 모서리에 찍힐 염려가 없다. 벨트를 끼우고 풀듯 열고 닫는다는 점도 매력적이다. 문을 열고 닫는 손길이 부드러워지니, 가구와 그 안에 수납된 물건도 나날이 소중해질 것 같다. 말랑말랑한 디자인이 마음까지 말랑말랑하게 만든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제품.


디자이너 Super W가 런던 시민에게 물었다. "당신의 소원은 무엇인가요?" 그리고 그 소원을 실현시켜줄 디자인을 궁리했다.

"더 좋은 날들을Wish for better years"이라고 대답한 할머니에게는 "나는 내일이 좋아요I like tomorrow"라고 적힌 베개를, "파란색 테디 베어"를 갖고 싶은 4살 소녀에게는 손발에 자석이 들어가 서로 사이 좋게 붙는 테디 베어들을 만들어 주었다.

Super W London
지하철역에서 신문을 팔던 할아버지는 안타깝게도 "소원이 없다I've got no wish"고 했지만, Super W는 굴하지 않았다. 시민 50명이 직접 쓴 소원들을 빼곡하게 담은 머그컵이 그의 몫이 됐다. 바로 그 배게와 테디 베어, 바로 그 머그컵을 샵비엠엠에서 만날 수 있다. 제품을 사면 그 사연들까지 따라 온다.


"몇 신가요?" 옆 사람이 묻기에 손목시계를 보려고 팔을 몸 쪽으로 구부리다가 어이쿠, 팔꿈치로 그를 치고 만다. 도와주려고 했는데 그만 머쓱해져 버렸다.

'Sharing Watch'는 이런 불상사를 막아준다. 언뜻 보기엔 평범한 손목시계지만, 자세히 보면 12가 손 쪽을 향해 있다. 시간을 보고 싶을 때는 팔을 구부리지 않고, 앞으로 뻗으면 된다. 옆 사람을 칠 염려가 없을 뿐더러, 옆 사람과 함께 시계를 볼 수 있다. 당신을 젠틀맨으로 변신시켜줄 마법의 디자인.


지구는 둥글고 할머니와 손녀, 강아지가 앞으로 나아간다. 서로 속도가 달라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한다. 때론 지구 반대편에 있더라도, 걱정할 필요는 없다. 지구는 둥그니까 자꾸자꾸 나아가기만 하면 언젠가 셋은 다시 만날 수 있다. 적어도 하루에 두 번, 정오와 자정에는 말이다.

이건 시계고 할머니는 시침, 손녀는 분침, 강아지는 초침이다. 시간이 궁금할 때마다 이들의 행방을 찾아야 한다. 추적하는 동안 오히려 시간 따위는 까맣게 잊어버릴지도 모른다.

MAEZM의 'Sharing Watch'
앞서 가는 손녀의 뒷통수를 바라보는 할머니가 좀 쓸쓸하지는 않을까, 뒤 따라오는 강아지의 잰 발소리에 손녀는 얼마나 기쁠까 한눈을 팔게 될 테니 말이다. 늘 시간과 경주하며 사는 우리의 마음을 늦춰주는 참 고마운 시계다.


참 옹골지게 여문 사과가 상자 가득 차있는 모양만 봐도 흐뭇하다. 사과품질대회에서 대상까지 수상한 알짜배기들이다. 하지만 흐뭇하긴 한데 이 사과들이 어째서 디자인이란 말인가, 라는 의문이 들 수도 있다.

경북 봉화의 한 농장에서 생산되는 사과 브랜드 ''는 이장섭 디자이너의 '작품'이다. 브랜딩부터 포장, 마케팅 방법까지 이장섭 디자이너가 고안해 낸 것. 지난해 가을 한 전시장에서 런칭한 후, 홈페이지(farmersparty.co.kr)를 통해 판매하고 있다.

좋은 사과가 디자인을 만나 보기에도 먹기에도 행복한 작품이 됐다. 사과를 키운 햇볕과 단비, 농부의 정성까지 고스란히 드러나는 것 같다. 농산물 직거래도 디자인이 될 수 있다는 사실!


변동진 디자이너의 'Daily life clock'
Farmers Party

박우진 기자 panorama@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