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의적 정원'
귓가를 넘어 온 몸에 소리의 지문을 새기는 것은, 오히려 절대적인 침묵이다. 고요함으로 고함을 치는 숱한 침묵은 붓으로 찍어낸 무수한 점들에 갇혀 입을 꾹 다물고 있다. 마치 비밀을 머금은 듯한 이 고요한 침묵은, 그러나 모든 것을 말해주고 있다.

1959년생으로 목원대학교 미술교육과와 동대학원 미술과를 졸업한 전형주 작가는 다수의 개인전과 단체전에 참여하며 대한민국 미술대전 심사위원을 역임했다. 현재 대전광역시미술대전 및 충남미술대전 초대작가로 활동 중인 작가는 이번 전시를 통해 그만의 독특한 미적 사의를 담아내고 있다.

그의 작품 속 석탑과 정원수들은 비현실적일 만큼 고요하다. 천년의 세월을 머금은 석탑은 군데군데 끼어있는 이끼를 통해 지독하리만큼 모진 고독을 토해내고 있다. 시간이 멈춘 듯한 절대 고요 속에도 세월은 흐르고, 세상과 동떨어진 듯한 정원의 고립감은 이끼처럼 걷잡을 수 없이 퍼져간다.

작가는 침묵으로 고함치는 법을 알고 있다. 극도의 현실감으로 비현실의 세계를 표상하듯, 소외와 외로움의 발버둥을 침묵으로 울부짖는 것이다.

추상미술이 보편화된 현대미술의 흐름 속에, 구상회화는 이미 진부한 어법이 되어가고 있지만 작가는 꾸준히 그만의 어법을 고수하고 있다. 80,90년대 그의 작품 속에 등장하는 인물이나 바다 속 풍경들을 포함하여 최근의 정원 풍경까지, 그만의 독특한 침묵 어법은 이미 상징화되었다.

이는 작가 나름의 예술적 소통법으로, 더 나아가 인간으로서 감내해야 할 숙명적 고독을 어루만지는 방식이기도 하다. 소란스러움에 말을 잃은 현대인들에게, 이번 전시는 더 없이 귀한 사의적 시간을 선사할 것이다. 2월 5일부터 2월 20일까지. 이공갤러리. 042)242-2020



이인선 기자 kell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