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창홍 전실제 인물 모델로 사실적이고 노골적인 누드 작품 40여 점 선보여

안창홍 작가와 '무례한 복돌이'
무심코 전시장에 들어서면 순간 발길이 멈칫한다. 대작에 드러낸 그로테스크한 알몸과 그 주인의 매서운 눈매에 움찔하기 십상이다. 한눈에 안창홍 작가다.

서울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서 마주한 작품은 여전히 당당하고 눈과 귀를 열게 한다. 삶의 흔적이 깊게 배인 몸의 굴곡과 표정을 봐야하고, 그림이 전하는 작가의 외침, 또는 침묵에 귀기울여야 하기 때문이다.

'불편한 진실'이라는 타이틀을 한 전시는 작가 주변인들의 신체에 집중한 누드 작품 40여 점을 선보인다. 과거 의도적으로 인물의 개별적 특성을 지워버리고 익명성을 부각시키던 <49인의 명상>, <봄날은 간다> 시리즈와 같은 작업들과 달리 이번 전시에서는 농부, 문신 전문가, 이웃 부부, 백화점 직원 등 실제 인물들을 모델로 삼은 사실적이고 노골적인 누드작품들이다.

"건강하게 살아가는 소시민의 가식 없는 몸을 통해 현실을 얘기 하고 싶었어요."

가공되지 않은 '몸'을 통해 인간의 상처와 고독을 전하고, 개인의 삶의 체취뿐 아니라, 그 사회의 시대정신까지 발견하게 하는 작가 특유의 소통 방식은 여전하다.

작품 속 문신을 한 사내를 바라보는 눈이 어느새 금기와 부정이라는 교양화된 의식으로 옮아가려는 것을 후려치는 것이 그답다. 그렇게 그는 시대의 부조리와 억압, 허위의식으로 미화된 교양을 폭로하고 냉소해 스스로를, 시대를 돌아보게 한다.

대형 누드 작업인 베드 카우치 시리즈는 도발적인 노출에도 불구하고, 관능적 아름다움보다는 엄숙함과 존재의 경이로움으로 다가온다. 제도권의 억압과 소외로 상징되는 베드 카우치 위에 불편하지만 보라는 듯 자세를 취하고 있는 인물들의 모습에 진솔한 삶의 흔적이 묻어나기 때문이다.

작품 '부부' '걸터 앉은 남자'의 주인공은 또 얼마나 당당한가. 전시 타이틀 '불편한 진실'을 함축한 듯하다. '불편한'엔 이중적 의미가 느껴진다. 그림을 감상하는 관람객의 불편함, 작품 속 주인공을 옥죄게 한 시대의 불편함이. 작품의 주인공은 그 불편함으로 진실을 말할 수 있기에 당당한 것이 아닐까. 더구나 작품의 인물은 관객이 바라보는 객체가 아니라 그들에게 진실을 전하는 주체이다.

"…개별적 삶의 역사가 묻어나는 건강하고 따듯한 육체의 정직성과 존재감에 대한 경의, 가공되지 않은 몸을 통해 아름다움의 본질과 존재의 꿋꿋함을 그려보기로 한 것이다. 관객들에게 보여지기를 기다리는 수동적 형태가 아니라 관객과 시선을 마주하는 주체로서의 당당함을 그리기로 한 것이다."(작가노트)

전시에는 또 다른 '진실'이 있다. 작품 속 소시민들이 옷을 벗기는 쉽지 않았다고 한다. 의 농사를 짓는 노인은 10년 가까운 시간이 걸렸다.

'개를 안고 있는 여자'
"전문 직업인이 아닌 일반인이 알몸을 드러내기란 쉽지 않죠. 진실이 통해서 가능했습니다. 작품의 의도, 열정을 이해해 주신거죠."

관람객은 복돌이라는 강아지가 여성모델의 치마속 허벅지를 핥고 있는 '무례한 복돌이'에서 자신의 은폐된 욕망을 들킨 듯한 불편함을 경험할지 모른다. 그래도 여성의 벗은 몸에 붙은 파리에서 삶이 유한하다는 것의 무게를 발견하고, '죽음을 기억하라'는 '메멘토 모리'를 연상시키는 '사랑'에서 '열심히 사는 것'의 의미를 되새겨 보는 것은 값진 일이다.

안 작가는 "예술은 시대를 떠날 수 없다"고 말한다. 앞으로도 몸 연작으로 시대에 비껴 있는 진실을 정면으로 끊임없이 찾아가겠다고 한다.

고승의 죽비를 대하는 듯한 불편함 속에 문득 '진실'이라는 것을 생각해보게 하는 전시는 3월 6일까지 이어진다. 02-3217-1093


'베드 카우치'

박종진 기자 jjpar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