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산갤러리 황달성 대표호텔 아트페어 붐 일으키고 KIAF 탄생 등 전방위 활동

객실의 벽과 화장대 위, 심지어 침대와 욕실에까지 작품들이 올려졌다. 집안 거실에 걸어두면 좋을 아시아 작가들의 화사한 그림들. 갤러리 방문이 부담스러워 좀처럼 전시를 보지 않던 이들도 호텔에서의 관람은 편안해 보였다.

추상적이고 어려운 그림보다는 친근한 구상화가 대부분이어서 현학적인 설명도 곁들일 필요가 없었다. 덕분에 그동안 갤러리나 아트페어에서 만날 수 없던 새로운 층의 컬렉터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한국에서 호텔 아트페어 붐을 일으킨 '아시아 탑 갤러리 호텔 아트페어(AHAF)'로 가능했던 일이다.

AHAF는 2008년 아시아 미술계 통합과 교류를 위해 기획된 아트페어다. 아시아의 대표 갤러리들이 비용을 절감하면서 아시아 작가의 작품을 여러 도시에서 순회 전시하는 형식으로 기획됐다. 동경의 뉴오타니 호텔이 스타트를 끊었고, 이듬해 서울 그랜드 하얏트 호텔이 바통을 이어받았다.

한국에서 의외의 성과를 거둔 덕에 AHAF는 서울에서 매년 여름 계속된다. 2010년 홍콩 그랜드 하얏트와 서울 신라호텔에서, 올해는 홍콩 만다린 오리엔탈 호텔과 서울 그랜드 하얏트에서 아시아 작가 작품이 관람객들과 만난다.

AHAF는 낮에는 아트페어를, 밤에는 아시아 주요 갤러리 대표들이 파티를 열며 자연스럽게 친목 도모를 하는 자리가 됐다. 몇 년 사이 한국 문화예술계에는 한·중·일을 중심으로 아시아 연합을 구상하는 오피니언 리더들이 많아졌다. 정부 주도의 경제 공동체를 모체로 결성된 유럽 연합(EU)과 주체와 형식은 달라도 일종의 예술을 중심으로 한 아시아 연합(Asian Union)이 점차 형상화되어가고 있다.

이우환 '선으로부터'(1974)
서구 문화의 유입과 해외로 진출하는 동양 예술가와 기획자들이 늘어나면서 아시아 예술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 그 이유로 보인다. 특히 미술계는 서구의 시선이 중국을 중심으로 한 아시아로 모이는 흐름이 큰 몫을 했다. 덕분에 독립적인 문화가 강조되었던 아시아 국가 간에 협력과 공동의 정체성 구축에 대한 의지가 모이고 있다. 역사는 짧지만 AHAF가 이런 흐름 속에서 아시아 갤러리들 간의 중요한 구심점이 되고 있다.

이를 주도한 이는 한국인 갤러리스트다. AHAF의 운영위원장인 금산갤러리의 황달성 대표. 아시아 연합의 중요성을 설파하는 그가 이를 준비하기 시작한 건 제법 오래 전이다. 한국 현대미술은 물론 일본 현대미술도 꿰고 있던 그는 '아시아 시대를 열며'라는 제목의 전시를 2001년부터 3년간 일본에서 열었다.

"일본의 평론가들과 이제 중국을 거점으로 아시아가 예술의 중심이 될 거라는 데 의견을 모았습니다. 아시아 국가가 힘을 합해서 아시아 시장을 아시아인들이 지키기 위해서 어떤 준비를 해야 할까 고민했죠. '아시아 시대를 열며'가 그 일환이었습니다." 협력 이전에 아시아 국가가 서로의 문화예술을 이해하는 과정이 선행돼야 했다.

일본에서 열린 전시였지만 매년 일본, 한국, 중국의 현대미술을 차례로 소개했다. 전시는 일본의 기업가가 해안가에 버려진 물류 창고를 전시공간으로 개조한 CASO라는 갤러리에서 열렸다.

지금은 도쿄 아트페어로 바뀐 일본국제현대미술제(NICAF)에 황 대표는 매년 참가해왔다. 그가 화랑협회에 제안해 2002년 한국국제아트페어(KIAF)를 탄생시켰고, 이후 아트페어를 개최를 원한 중국에도 노하우를 전수했다. 그가 2002년부터 2005년까지 북경국제화랑 박람회의 집행위원과 상하이국제 아트페어 해외고문 및 한국, 일본 커미셔너로 활동한 이유다.

"일본 미술 시장이 우리보다 10배 정도로 탄탄하지만 활용을 못 해서 아트페어에 외국 화랑이 7~8곳 정도밖에 안 옵니다. 그 중 절반 이상이 한국 갤러리죠. 반면 KIAF는 외국 화랑이 100여 곳이 참가하거든요. 일본이 현재로선 퀄리티나 거래량이 많긴 하지만 흥미가 떨어지죠. 사실상 그 기능을 상실했다고 봅니다. 지금은 우리보다 늦게 시작했던 홍콩이 강세입니다. 현재 아시아에서는 일본 외에 한국, 홍콩, 상하이, 베이징, 싱가포르, 타이베이 등에서 국제 아트페어가 열리는데, 홍콩이 1위고, 2위가 KIAF죠. 세계적으로 볼 때 홍콩과 격차가 너무 벌어져서 이를 줄일 방안을 구상 중입니다."

아시아 국가의 미술이 고루 발전하면서도, 한국이 흐름을 선도하기 위해 황 대표는 지금도 여러 가지 아이디어를 내고 있다. 화랑협회에 기획자를 양성하는 아카데미를 개원하자는 제안을 하고 있다. 아시아에 영어를 비롯해 중국어와 일본어 등에 고루 능한 기획자가 드물다는 데 착안했다.

"영향력 때문에 세계 여러 나라에서 열리는 비엔날레나 트리엔날레에서 중국인 기획자에게 많이 맡기지만 그들이 영어가 서툴거든요. 우리나라 기획자들이 언어에 탁월한 능력과 기획력까지 갖춘다면 기회는 올 거라고 봅니다."

각 아시아 국가에서 열리는 비엔날레와 트리엔날레 난립에 대한 논의도 중국과 일본에 제안한 상태다. 이 같은 논의를 위해 2001년 아시아 아트네트를 발족해 위원장으로 활동 중이다.

"같은 시기에 여러 행사가 열리는 것도 국력 소모지요. 각국의 정책 담당 공무원, 기금 담당자, 기획자와 평론가, 저널리스트 등이 참여해 아시아에서 열리는 비엔날레와 트리엔날레의 정체성과 방향성을 논의하려고 합니다. 화상(畵商)인 제가 전면에 나서지는 않지만 판을 만들어 보고자 합니다."

그는 아시아 연합 외에 한국 미술을 세계에 알리느라 또한 분주하다. 뉴욕에서 한국 현대미술가를 소개하는 프로젝트인 '코리안 아트 쇼'에서 올해 전시감독을 맡았고, 아트에디션(구 서울 국제판화사진 아트페어)의 대표자로서, 국내의 대표적인 사진작가를 선정해 내년 '한국의 해'를 맞는 파리 포토에도 참가할 예정이다.

금산갤러리 서울관 개관전

1992년, 서초동과 소격동을 거쳐 2005년 헤이리에 둥지를 튼 금산갤러리. 헤이리와 함께 도쿄에도 전시관을 마련한 금산갤러리가 최근에는 중구 회현동에 서울관을 열었다. 기업이 밀집한 중구의 특성에 맞춰 전시 시간을 오전 10시부터 저녁 9시까지 연장했으며, 주말에도 6시까지 갤러리를 오픈한다. 서울관 개관을 기념해 현재 헤이리와 서울관에서 동시에 이 3월 18일까지 열린다.

일본의 저명한 컬렉터, 시모다 씨의 컬렉션 중 60~80년대 추상회화를 대표하는 작가들의 작품을 선별했다. 시모다 씨는 이우환 작가의 작품을 가장 많이 소장한 것은 물론 사진, 토기, 회화를 아우르는 방대한 장르의 컬렉터로 유명하다.

이번 전시에서는 이우환 작품과 더불어 한국에서 좀처럼 접하기 어려운 일본의 대표 추상회화 거장들과 동시대에 활동한 서양 추상작품들이 조화롭게 전시 중이다.

금산갤러리는 앞으로 중구에서, 낮에는 조각으로 보이고 밤에는 미디어 아트가 되는 (이진준 작가를 중심으로 한 프로젝트 작가 그룹) 도시 조형물도 적극적으로 소개할 예정이라고 했다. 또 작가지원을 목적으로 올해 사진 전문 갤러리도 오픈할 예정이다. T. 070-8735-6468



이인선 기자 kell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