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어느 피자 배달부의 죽음업주의 과욕, 업체의 상술, 소비자 조바심의 콤비네이션

"어휴, 저게 죽으려고 작정을 했나"

도심 속 아크로바틱을 펼치며 대형 버스와 택시 사이를 질주하는 배달 오토바이. 헬멧 속 젖비린내 날 것이 틀림 없는 얼굴과 청바지에 감싸인 마른 다리는 30분 신속 배달을 위해 오늘도 꽉 막힌 도로 위를 밟고 또 밟는다.

지난 2월 13일 오후 6시 30분경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 사거리의 신호가 파란 불에서 노란 불로 바뀌었다. 영등포 역에서 신도림 역으로 향하던 버스 운전기사 박모 씨는 시속 60km를 유지하며 그대로 달렸고, 이때 반대 방향에서 파란 불이 켜지자마자 좌회전을 튼 배달 오토바이와 정면으로 충돌했다. 피자 업체 아르바이트생인 18세 김모 군은 그 자리에서 숨졌고 버스 승객 11명이 부상했다.

작년 12월, 마찬가지로 피자 배달 중이던 최모 씨가 택시와 충돌해 사망했다. 당시 청년유니온과 노동환경건강연구소, 민주노총서비스연맹은 도미노 피자 본사 앞에서 '30분 배달제' 폐지와 배달 노동자들의 안전지침 마련을 요구하는 회견을 열었으나 사측으로부터 "검토는 하겠으나 지금으로서는 할 말이 없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뿐이다.

그러나 이번 김 군 사건까지 터지자 상황은 달라졌다. 도미노 피자는 1990년 국내에 진출한 이후 처음으로 30분 배달 보증제를 공식 폐지했고 피자헛은 관련 업무 지침을 삭제했다. 5대 피자 업체 중 나머지, 미스터 피자와 파파존스, 피자에땅의 머릿속이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알랭 드로름의 '토템'
"우린 30분 넘게 기다릴 수 있어요"

30분 배달제는 미국발 피자 프랜차이즈 회사로부터 시작됐지만 정작 미국에서는 1990년대 초 이미 폐지된 제도다. 마찬가지로 배달 노동자의 사망이 폐지의 원인이었다. 현재 미국의 피자 배달은 오토바이가 아닌 소형차로 이루어지고 있으며 30분 내에 배달되지 않는다고 해서 고객에게 여타의 보상은 해주지 않고 있다.

지난해 프랑스 사진작가 알랭 들로름은 파리의 한 전시장에서 '토템'이라는 제목으로 전시회를 열었다. 그가 주목한 피사체는 중국 거리를 다니는 '배달의 달인'들로, 사진 속 그들은 자전거와 손수레 위에 1톤 트럭 분량의 어마어마한 짐들을 올리고 유유히 이동한다.

족히 100개는 넘을 듯한 자동차 타이어, 전시장 하나를 넉넉히 장식할 만큼의 화환, 심지어 한 가구의 이삿짐 일체가 가느다란 바퀴 두 개에 의지해서 위태롭게 흔들리며 거리를 활보한다. 작가는 이 짐덩어리들을 현재 중국이 숭배하는 거대한 신, '토템'이라고 명명했다.

눈부신 경제성장 속에서 빨리 돈을 모으고 싶어하는 중국인들의 욕망이 무리하게 쌓아 올린 짐으로 드러났으며 이는 '새로운 엘도라도' 또는 '세계의 공장'으로 급격히 변모하는 중국의 한 단면이라는 것이다.

그럼 한국의 도로를 질주하는 피자 오토바이는 무엇의 단면일까? 한 판이라도 더 팔고 싶지만 한 명이라도 덜 고용하고 싶은 업주의 과욕, 딱 30분까지가 인내심의 한계인 인터넷 강국의 시민들, 이에 장단을 맞춰 초 단위로 배달 시간을 알려주는 업체의 상술. 이 모든 것들이 콤비네이션 피자처럼 어우러져 배달 오토바이에 실린다.

2009년 이륜차를 모는 배달노동자 관련 사고 건수는 1395건이었다. 30분 배달제가 표면상으로 사라지는 분위기지만 "우린 정말로 30분 넘게 기다릴 수 있어요"라는 고객들의 메시지를 업체에서 수긍하기까지는 얼마 정도의 시간이 필요할까?



황수현 기자 sooh@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