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달재 매화 그림전]호남 남종화 전통에 현대성 갖춘 '신남종화' 60여 점 선보여

직헌 허달재 화백이 서울의 중심 명동에 매화 봉우리를 틔웠다. 2월 24일 롯데갤러리와 매장 곳곳에 만개한 흰 매화와 붉은 매화를 수놓았다. 현대적인 건물과 조화를 이룬 매화는 화사한 봄이 왔음을 한눈에 알리며 보는 이를 즐겁게 하고, 은근한 향을 전한다.

가장 서양적이고 화려한 공간에 가장 동양적이고 고즈넉한 매화가 생기를 띠는 것은 오롯이 허 화백의 공력 덕이다. 근대 한국화단의 대가인 의재 허백련의 장손인 허화백은 여섯 살 때부터 그림을 사사했고, 그 바탕이 되는 책읽기와 학문 연마에도 충실했다.

한국 남종 문인화의 맥을 이어오던 허 화백은 성인이 되면서 자신만의 길을 찾기 시작해 '허달재식 한국화'를 개척했다. 이른바 '신남종화'로 남종화의 정통 화맥에다 일찍이 뉴욕화단을 직접 체험하면서 얻은 현대적 감각을 더해 전통의 격과 감각적인 현대성이 조화를 이룬 독자적인 세계를 형성한 것이다.

이는 전통과 현실, 동양과 서양정신이 서로 어우러지는 '정중동 고중신(靜中動 古中新)'의 세계로, 1990년대 중반 인간을 소재로 기호화한 작품, 문자를 추상화한 일련의 작업, 구름을 집중적으로 다룬 운무도 연작, 매(梅)자를 꽃잎으로 무수히 써놓은 매향(梅香) 등에 선보였다.

허 화백의 화풍에 대해 동양 산수화, 수묵화의 원류를 자임하는 중국 미술계는 "동양의 전통 수묵화와 서양화의 특성을 융합시키는 데 성공했다" 면서 "중국이 잊어버린 중국 남종화의 아치(우아한 품격)를 제대로 살려냈다"고 평가했다. 올 9월과 11월, 베이징 제백석(齊白石)기념관과 상하이미술관에서 허 화백 개인전이 열리는 것은 이런 평가에 따른 것이다.

'매화'
롯데백화점 명품관 에비뉴엘 전층과 갤러리에서 전시하는 허 화백의 매화 작품(60여 점)은 그의 독창적인 작품세계와 함께 현대와 어울리는 동양화의 매력을 전한다.

홍차물을 들여 고풍스런 한지 위에 흐드러진 홍매(紅梅)는 매화 고유의 멋은 물론, 한폭의 추상화를 보는 듯하고, 고졸하면서도 귀족적인 백매(白梅)는 화려함의 극치를 보여준다. 현대 주거공간과 잘 어울리도록 고려된 한지수묵화 2~8개를 연결한 병풍과 변형된 한지그림들도 눈길을 끈다.

허 화백은 정(靜)에서 동(動)으로, 옛 것에서 새로움을 추구하는 의지를 반영해 전시 주제를 '심조화 화조심(心造畵 畵造心)'으로 하였다. '마음이 그림을 닮고, 그림이 마음을 닮는다'는 뜻으로 이번 전시에서는 '마음이 붉으면 매화도 붉고, 마음이 희면 매화도 희다'는 의미로 해석했다.

"조부께서는 매화그림에서 매화의 품격과 느낌을 중시하셨는데, 제 매화그림도 사실적이기보다 정신을 담아낸 사의(寫意)적 표현의 작품입니다.'

온고지신(溫故知新)의 진의를 실감할 수 있는 이번 전시는 4월 25일까지 계속된다. 02-726-4428~9

'홍매'


박종진 기자 jjpar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