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부수전]12년 만의 전시… 꽃, 산, 바다, 사람의 '울림' 그대로 작품 속으로

조부수 화백은 그림만큼이나 밝고, 쾌활하고 힘이 넘쳤다. 마치 말문이 트인 아이처럼 얘기는 그칠 줄 몰랐다. 3월 16일 개인전을 앞두고 10일에 만난 만난 조 화백은 12년 만의 서울 전시에 꽤 들떠 있었다. 작품 속 흐드러지게 핀 꽃들과 마주하니 그럴 만도 했다.

"10년 가까이 돼 응어리가 터졌어요. 보이는 그림, 만지고, 냄새나는 그림을 그리기까지요."

조 화백은 오랜 기간 '추상'이라는 관념의 늪에 있었다. 그 '느낌'이 영글고 변주해서 작품으로 화(化)하는 것이 언제부터인가 답답했다. 자연스런 창의가 아닌 고정된 관념에 머물고, 집착하는 자신에게 회의가 일었다. 1999년 아트 파리(Art Paris)에서 절실하게 자화상을 바라보고, 깨기로 했다. 그리고 서울을 떠나 충남 부여의 한갓진 산중턱에 둥지를 틀었다.

오래 묵은 관념이 서서히 빠져나가면서 자연이 찾아왔다. 꽃이 보이고 향이 전해지고, 우주의 소리가 들려왔다. 2007년 응어리가 터지면서 그것은 더 분명해졌다. 추상과 구상이 사라지고, 미술의 시대적 관념, 경계가 무의미해졌다. 눈에 보이고, 만져지고 마음이 가는 대로 붓은 자유롭게 춤추고 작품이 완성됐다.

10여 년간 조 화백을 위로하고, 대화하고, 함께 뒹군 주변의 꽃, 산, 강, 바다, 사람이 그대로 그림으로 옮겨졌다. 그래서 그의 그림에는 자연의 청량함과 신선함, 상쾌함이 전해진다. 작품이 노랑, 빨강, 하얀, 초록의 몇 가지 원색으로 한정된 것은 삶의 불필요한 군더더기를 버려나간 결과로 보인다. '잡신을 쫓아내는' 색이라는 조 화백의 설명도 그럴 듯하다.

'수련'
작품에 병존하는 구상과 추상은 이제 외견상 이미지일 뿐 상보적 조화로 완성도를 높인다.

대표적인 '꽃밭' 시리즈를 비롯해 최근의 시리즈는 추상성이 강화됐음에도 거리감이 있거나 난해하지 않다. 작가가 수련이 되고, 수련 잎은 바람에 일렁이고, 여기서 생성된 소리-생명의 리듬-는 관객에게 온전히 전달된다.

조 화백 그림의 가장 큰 매력은 관객과의 '일체감', '소통'이다. 그림과 관객 사이의 거리, 경계를 무력화하는 것이다. 작가가 자연을 느낀 그대로, 관객에게 전이되는 경험이다. 그래서 조 화백의 그림을 대하면 상쾌하고, 순수해지고, 행복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는 조 화백이 10년 가까운 고행 끝에 얻은 깨달음 덕분이다. 인사동 선화랑에서 3월 16일부터 31일까지 열리는 조 화백의 전시가 기대되는 이유다. 02-734-0458


'꽃과 바다'

박종진 기자 jjpar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