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키 드 생팔 & 야요이 쿠사마 기획전화려한 원색 사용하는 현대미술 대표 여성작가의 만남

니키 드 생팔의 'Chat'
내외부 구조가 뒤바뀐 듯 빨강, 파랑, 노랑의 배관이 노출된 파리의 퐁피두센터. 그 자체로 파리의 상징물이 된 현대미술관 앞마당에는 프랑스의 또 하나의 명물 '스트라빈스키 분수'가 있다.

이끼가 가득 찬 분수대 안을 유영하며 물을 뿜어내는 형형색색의 조각상들. 일부는 차가운 금속으로 만들어졌고, 일부는 비정형적 형태에 알록달록 천진난만한 색상이 입혀져 있다.

1913년 초연 당시 대단한 반향을 일으켰던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에서 영감을 받아 탄생한 작품이다.

이 분수는 파리 최초의 현대식 분수 중 하나이기도 하고 세계적인 여행서적 론리 플래닛에서 프랑스에서 가장 아름다운 야외 조각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이 분수가 주는 경험은 찌는 듯한 더위의 청량감을 훌쩍 넘어선다. '스트라빈스키 분수'를 조성한 이들은 키네틱 아티스트 장 탱글리와 조각가 니키 드 생팔 부부작가.

20대 초반 패션지 표지 모델로 발탁될 정도로 아름다웠지만 1961년, 니키의 데뷔작은 다소 살벌하다. 캔버스에 오브제와 물감 주머니를 달아놓고 총으로 쏴서 의도하지 않은 회화를 완성하는 '슈팅 페인팅' (shooting painting)을 고안했는데, 작품은 '나는 아버지를 쏘았다'라는 충격적인 선언으로 시작된다.

니키 드 생팔의 'Flowerbase'
어린 시절 아버지로부터 당한 성적 학대의 기억으로 인해 성년이 되어서까지 신경쇠약증을 앓던 그녀다. 니키의 마음을 치유한 것은 전복적인 미술적 시도들. 미술 교육을 제대로 받은 적은 없지만 그녀는 데뷔작을 통해 당시 프랑스 미술의 주류였던 누보 레알리즘(Nouveau Reaslisme) 작가 리스트에 당당히 자신의 이름을 올렸다.

그녀의 대표작은 <나나> 시리즈로, 풍만한 몸매와 화려한 원색의 장식을 한 여인 조각이다. 불어로 '계집아이'라는 뜻의 나나. 춤을 추고, 공놀이를 하거나 물구나무서기를 하는 등 기존 여성에게 강요되던 단정한 몸가짐과 거리가 있다. 가부장제와 교회 권력 등 기존의 공고한 권위에 반격의 총을 들이댔던 니키 드 생팔이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자유롭고 이상적인 여성상을 나나라고 볼 수 있다.

니키 드 생팔이 현대미술에서 프랑스를 대표하는 여성 작가라면, 일본에는 점박이 호박으로 유명한 야요이 쿠사마가 있다. 이들은 각각 1930년생, 1929년생으로 살아온 시대나 개인적인 인생의 굴곡이 겹치기도 한다. 오페라 갤러리에서 여성의 날(3월 8일) 즈음에 이 두 여성 작가 기획전을 여는 이유다.

"두 작가가 활동을 시작하던 1960년대는 누보 레알리즘과 더불어 전위예술과 퍼포먼스 등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순탄치 않았던 개인적 삶을 미술 활동을 통해 극복하는 모습 역시 이 둘은 닮아있다. 현대미술의 선구적인 두 작가는 모두 화려한 원색을 사용하고 있고, 작품을 설치하고 보니 조형적으로도 잘 매치됐다."(김영애 책임 큐레이터)

1993년 일본을 대표해 베니스 비엔날레에 참가하기도 했던 야요이 쿠사마는 1973년부터 자발적으로 일본의 정신병원에 머물며 작품활동을 하는 독특한 라이프 스타일을 고수하고 있다. 그곳에 머물면서도 퍼포먼스, 패션, 미술, 디자인 등등 다양한 분야를 아우르며 전 세계를 누빈다.

니키 드 생팔의 'Chauve Souris Bat'
야요이 쿠사마의 트레이드 마크가 된 동그란 점, 그물, 그리고 정자 등의 일정한 패턴은 알고 보면 그녀의 불우한 삶에서 비롯됐다. 애정 없는 부부 사이에서 원치 않는 아이로 태어난 야요이는 어머니로부터 심한 육체적 학대를 받으며 성장했다.

이후로 지금까지도 그녀를 괴롭히는 환각 증세가 생겨났는데, 그때부터 그녀는 일정한 패턴에 집착했다고 한다. 붉은 꽃무늬가 그려진 식탁보를 본 후 천장을 보니 꽃무늬가 온통 하늘에 도배된 듯한 경험을 하게 된 것이 그 시작이다. 일종의 잔상 효과였을 거다. 이후 이것은 그녀의 작품에 강한 모티프가 되었다.

어머니와 떨어져 살기 위해 택한 미국행은 그녀의 독특한 예술세계를 꽃피우기에 적합한 화분이었다. 퍼포먼스, 전위미술, 팝 아트의 서막이 오를 1960년대 초반, 뉴욕으로 건너간 그녀는 거침없는 행보를 보였다. 당시의 미국 언론은 앤디 워홀과 야요이 쿠사마를 가장 독특한 뉴욕의 팝아티스트로 주목하기도 했다.

그러나 동양의 작은 여자를 쉽사리 허락하지 않았던 미국의 주류 미술계의 벽을 느낀 그녀는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일본으로 돌아온다. 당시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은 남근 구조물을 만들어 남성 주도의 견고한 주류 미술세계를 조롱하는 것뿐이었다. 일본에 돌아와서도 작품 활동을 이어나갔던 그녀는 1986년 프랑스에서 열린 초대전을 통해 세계 미술계에 이름을 알린다.

이번 전시에서는 야오이 쿠사마의 작품 세계를 보여주는 작품 20점이 모였다. 작품 크기는 크지 않지만 이는 상대적으로 대형 조각이 전시되는 니키 드 생팔의 작품이 보완한다.

야요이 쿠사마의 'Pumpkin'
니키의 대표작으로 꼽히지만 서울에서는 좀처럼 전시된 적이 없던 <은둔자>(1988)와 <오벨리스크>(1987)를 비롯해 60cm에 이르는 대형 조각 작품이 전시된다. 각각 20작품 씩, 총 40점이 전시되는 <전설의 여인들 : 니키 드 생팔 & 야요이 쿠사마>는 청담동에 있는 오페라 갤러리에서 4월 10일까지 이어진다.


야요이 쿠사마의 'Ochiba The fallen leaves'
야요이 쿠사마의 'Flames'

이인선 기자 kell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