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국립극단 봄마당' 축제중견연극인 위한 백성희장민호극장, 젊은 피 위한 소극장 판

'3월의 눈'에서 또 다시 호흡을 맞추는 배우 백성희와 장민호
6.25 전쟁 등 한국현대사의 질곡을 헤쳐온 국립극단이 서계동에서 한국 현대연극의 새로운 역사를 쓰기 시작했다. 얼마 전 명동예술극장을 빌려 이전 후 첫 작품 <오이디푸스>를 선보였던 국립극단이 3월 11일부터는 자신만의 극장에서 '2011 국립극단 봄마당' 축제를 열었다.

극단 부지 내에 새롭게 마련된 백성희장민호극장과 소극장 판에서 열리는 이번 축제는 국립극단이 이전의 장충동 국립극장이나 잠깐 대관했던 명동예술극장을 떠나 독립된 자체 공간에서 여는 첫 번째 행사다.

1970년대 초반까지 명동의 시공관이 주무대였던 국립극단은 1973년 10월 장충동 국립극장으로 보금자리를 옮기며 30여 년 동안 활발한 활동을 이어왔다.

국립극장의 설립과 함께 전속단체로 출발한 국립극단은 1950년 서울 중구 태평로에 위치한 부민관(현 서울시의회 의사당 건물)에서 탄생을 알렸고, 한국전쟁으로 인해 잠시 대구로 피난했다가 명동으로 돌아왔다. 이후 국립극장에서 독립해 용산의 옛 기무사 수송대 부지에 터를 잡은 것으로 다섯 번째 이사를 한 셈이다.

한국연극의 진수가 흐르는 공간 '백성희장민호극장'

백성희장민호극장에서 공연되는 '주인이 오셨다'
국립극단은 200회가 넘는 정기공연을 비롯해 많은 특별공연과 해외공연을 이어오며 김동원, 백성희, 장민호 등 내로라하는 배우들의 산실 역할을 해왔다. 특히 2006년 타계한 김동원을 제외하고 배우 백성희와 장민호는 국립극단의 살아있는 역사가 됐다.

그래서 극단 측은 서계동 시대를 맞아 새로운 국립극단을 상징하는 극장에 이들의 이름을 붙였다. 이번 첫 번째 행사에서 백성희장민호극장은 배삼식 작, 손진책 연출의 <3월의 눈>과 고연옥 작, 김광보 연출의 <주인이 오셨다> 등 창작극 두 편을 올리며 국립극단의 새로운 출발을 알린다.

이중 백성희장민호극장의 개관작 <삼월의 눈>은 단순한 개관작을 넘어 백성희, 장민호 두 배우에 대한 후배 연극인들의 헌정 공연의 의미를 지닌다. 또 50년 넘게 부부 연기를 하며 호흡을 맞춰온 86, 87살의 두 노배우가 자신들의 이름을 딴 극장 무대에 올라 후배들과 공연하는 모습은 그 자체로 하나의 감동을 자아내고 있다.

또 세계가 주목하는 연극계의 이단아인 일본의 토시키 오카다 연출의 <핫페퍼, 에이컨 그리고 고별사>도 이번 무대에 올라 관객들과 만난다. 2004년 초연되었던 <에어컨>의 확장작인 이번 작품은 평단으로부터 '무용과 연극을 통합할 뿐만 아니라 두 장르의 잠재적 방법을 고루 사용하여 종국에는 그 둘을 모두 뛰어넘었다'는 극찬을 받은 작품.

두 작품에 이어 세 번째로 무대에 오르는 <주인이 오셨다>는 <인류 최초의 키스>의 고연옥 작가와 김광보 연출가 콤비가 그렸던 비인간적이고 부조리한 사회와 거기에서 만들어지는 왜곡된 희극성을 표현한 작품이다.

소극장 판에서 열리는 단막극 연작 중 '흰둥이의 방문'
새 판 짜는 공간 '소극장 판'

한편 소극장 판에서는 단막극 연작의 첫 번째 시리즈로 '새 판에서 다시 놀다'가 진행된다. 이번 시리즈에서는 한국연극의 거장인 이강백, 박조열, 신명순 작가의 작품을 현재 가장 주목받는 젊은 연출가 김승철, 윤한솔, 김한내 3인이 그려낸 <파수꾼>, <흰둥이의 방문>, <전하>가 연속으로 공연된다.

1960~80년대의 시대정신이 담겼던 이 작품들은 우화적 표현과 은유를 통해 시대에 물었던 작가들의 치열함이 발견됐던 단막극들. 이번 공연에 참여하는 젊은 연출가들은 이를 2011년의 현실로 풀어내며 자신만의 재치와 유머, 삶의 페이소스를 녹여냈다.

이와 함께 소극장 판에서는 차세대 신진 작가와 연출가를 만날 수 있는 이철 작, 박해성 연출의 <황혼의 시>도 예정되어 있어 한국연극의 현재를 확인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전망이다. 공연 관계자는 "이번 단막극 연작 '새 판에서 다시 놀다'는 이런 과거와 현재의 충돌과 신예들의 조명을 통해 한국연극의 또 다른 얼굴을 만나게 하려는 시도"라고 설명했다.

이번 축제는 이전 후 첫 번째 행사라는 의미 외에도 레퍼토리 개발이라는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손진책 예술감독은 국립극단의 재단법인 독립 때부터 "국립극단의 미션에 맞는 새로운 작품들을 지속적으로 개발하겠다"라는 의지와 함께 "우수한 작품들을 선별해 이를 레퍼토리화하여 국립극단만의 우수한 콘텐츠를 확보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소극장 판에서 공연되는 '황혼의 시'
이번 두 극장의 차별화된 공연 형태는 이 같은 계획을 실행하는 첫걸음이라고 할 수 있다. 백성희장민호극장에서는 앞으로 베테랑인 중견 연극인들의 농익은 작품을 공연하고, 소극장 판은 젊은 연극인들이 실험적이고 감각적인 작품을 선보이는 장이 된다.

관계자는 "두 공간의 운영을 통해 국립극단은 레퍼토리 극단으로서 작품의 개발과 발굴, 1차 공연화, 2차 레퍼토리화라는 순차적인 제작, 프로그래밍 시스템을 마련할 것"이라고 말했다.



송준호 기자 trista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