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와 작품] (10) 일본대지진하루키의 속 주인공들처럼 침착한 일본인들

영화 '일본침몰'
"인간이 자연 앞에서는 얼마나 보잘것없는 존재인가를 새삼 절감한다."(소설가 이외수)
"자연재해 앞에 인간이 얼마나 연약한 존재인지, 자연 앞에 얼마나 겸허해야 하는지···"(소설가 공지영)
문인들이 한 마디씩 던졌다. 어찌 가만히 있을 수 있으랴.

3월 11일 오후 2시 46분. 그야말로 대참사가 일어났다. 일본 동북부 지역이 한 순간에 초토화된 규모 9.0 강진의 대규모 지진이었다. 높이 10m의 쓰나미까지 발생했다.

평화롭던 미야기현 어촌 마을은 순식간에 물 속에 잠겼고, 참사 하루 만에 시신 2000여 구가 물살에 흘러 들어왔다. 이와테현도 사정은 마찬가지. 행방불명된 사람만 2만여 명에 달한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손을 써야 할지 모르는 참혹한 순간이었다.

그러나 그 이후에도 일본에는 강도 6.0 이상의 여진이 계속 일어났다. 여기에 후쿠시마의 제1원자력발전소에 폭발사고까지 발생해 대량의 방사성 물질이 누출되는 위험까지 벌어졌다. 안전을 위해, 휘발유와 물, 생필품을 구하기 위해 주민들은 고향을 버리고 피난길에 올랐다. 일본 대지진 여파가 끝을 모를 상황을 초래하고 있다.

이런 상황은 5년 전 한 영화에도 나온다. 영화 <일본침몰>은 현재 일본의 상황과 유사하다. 영화에서는 일본 스루가만에 강도 10을 넘는 엄청난 파괴력의 대지진이 발생한다.

도쿄와 큐슈 등 전역을 강타한 지진은 해일과 화산폭발 등을 유발하며 결국 일본을 바다 속으로 침몰시킨다. 영화 속 대지진 발생 이유와 현 상황은 너무도 비슷하다.

실제로 이번 지진은 해양판인 태평양판이 대륙판인 북미판 밑으로 파고들면서 발생했다는 분석이다. 그런데 이 영화도 태평양판의 움직임으로 인한 이상현상이라고 가정했다. 영화라고 하기엔 끔찍할 만큼 현실과 유사하다.

일본이 침몰할지도 모른다는 무서운 내용이 예삿말처럼 들리지 않는 건 현 상황이 너무도 참혹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쿠사나기 츠요기(한국명 초난강)가 외치던 "기적은 일어납니다. 일으켜 보이겠습니다!"라는 대사는 머릿속을 되뇐다.

인류의 멸망이 얼마 남지 않았다며 경고했던 영화 <2012>. 고대인들의 예언대로 전 세계에서 지진과 화산폭발, 거대한 해일 등 각종 자연재해들이 발생한다.

어떤 그 누구도 이 상황을 막지는 못한다. 최후의 순간을 기다리는 수밖에. 결국 성경 속에나 존재하던 '노아의 방주'가 인류를 구원한다는 결말에 미소를 짓기도 했지만, 이젠 그저 마냥 웃을 수만은 없는 일이다. 일본 대지진이 세계에 어떤 영향을 줄지 아직 모른다. 일본의 대지진이 세계를 위협하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인들은 아수라장 같은 현장에서 차분하다. 아니 침착하기까지 하다. 차분하게 현 상황을 받아들이고 있다. 질서를 지키며 생필품을 사는 사람들, 5시간 이상 짜증 한 번 없이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품 <신의 아이들은 모두 춤춘다> 속 주인공들처럼 말이다.

1995년 발생한 고베 지진을 배경으로 한 이 단편소설은 너무도 조용하다. 하루키는 6편으로 이뤄진 이 작품에서 지진의 직접 피해자들을 언급하진 않는다. 다만 5일간 지진 피해 뉴스를 보며 이혼을 선언한 아내와 지진으로 성난 지렁이에 맞서는 개구리 등이 있을 뿐이다. 지진을 바라보는 하루키는 3인칭으로 냉소적이지만 그 메시지는 희망적이다.

"우리의 마음은 돌이 아닙니다. 돌은 언젠가 무너져 내릴지도 모릅니다. 모습과 형태를 잃어버릴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마음은 무너지지 않습니다. 우리들은 그 형태가 없는 마음을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어디까지나 서로 전할 수 있습니다. 신의 아이들은 모두 춤을 춥니다."



강은영 기자 kiss@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