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이디푸스 왕 vs 코러스:오이디푸스]배우 예술의 극치와 연극 연출의 음악적 실험에 방점

박근형 연출가(극단 골목길)의 '오이디푸스 왕'
"인간은 운명의 수레바퀴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신화와 철학의 탄생 시기와 멀지 않은 이 오래된 질문은 누구에게도 명쾌한 답을 허용하지 않는다.

<요범사훈 : 운명을 뛰어넘는 길>을 남긴 명나라 학자 원황은 예견된 자신의 불행한 인생을 노력으로 뒤집었지만, 경사진 산에서 끊임없이 바위를 밀어 올려야 했던 시지프스는 그 운명을 담담하게 받아들였다.

정답은 없다. 어디에서 어떤 모습으로 태어날지를 선택할 수는 없어도, 살아가면서 운명에 맞설지, 받아들일지는 개인의 선택에 달렸다. 인류를 사로잡은, 그러나 풀리지 않는 이 질문은 그래서 여전히 식지 않는 감자다.

2500여 년 전에서 살던 그리스 시인 소포클레스의 비극 <오이디푸스>가 2011년 한국의 무대에서도 유효한 이유다. 아버지를 죽인다는 신탁 때문에, 발뒤꿈치에 구멍이 뚫린 채 버려진 아이. 그래서 '퉁퉁 부은 발'이란 뜻의 오이디푸스란 이름을 갖게 된 아이는 그러나 신탁대로 아버지를 죽이고 왕이 된다. 어머니를 아내로 맞아들이는 비극의 주인공은 가혹한 자신의 운명을 깨닫는 순간 스스로 눈을 찌르고 다시 길을 떠난다.

올해 1월, 국립극단에서 올린 <오이디푸스>(한태숙 연출)는 이미 관객의 극찬을 받으며 막을 내렸다. 한 연출가는 오이디푸스를 영웅이나 초인이 아닌, 현대를 살아가는 평범한 보통 남자로 설정했다. 한 치 앞도 내다보지 못하는 운명 앞의 장님, 오이디푸스는 곧 우리들의 모습이라는 것이 작품을 전개해가는 주된 테마다.

세재형 연출가 '극단 죽도록 달린다'의 '코러스:오이디푸스'
3월에는 박근형 연출가가 <오이디푸스 왕>(3.18~4.10, 정보소극장)을, 4월에는 서재형 연출가가 <코러스:오이디푸스>(4.26~5.1, LG아트센터)를 연달아 꺼내든다.

덕분에 국내의 손꼽히는 연출가들, 그러나 전혀 다른 연출 스타일을 가진 이들이 각기 다른 시선으로 풀어낸 <오이디푸스>를 연이어 만날 수 있게 됐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박근형 연출가가 오이디푸스와 운명에 초점을 맞췄고, 서재형 연출가는 기존과는 사뭇 다른 형식을 위해 공을 들이는 중이다. 같은 원작을 전혀 다른 무대로 형상화하고 있어 연극 관객들의 기대를 모은다.

<오이디푸스 왕>은 지난해 봄에 이미 초연되었다. 박근형 연출가 특유의 미니멀한 무대 구성과 배우들의 연기에 무게를 둔 공연은 관객의 뜨거운 호응을 얻었다. <오이디푸스 왕>은 운명 속에서 한치도 벗어날 수 없는 인간과 운명을 향한 시야를 확장했다. 인간의 운명을 미리 지어놓고 이것을 거부할 때 가차없이 공격하는 신으로 눈길을 돌린 것. '도대체 신은 인간에게 어떤 존재인가.'

태어날 때부터 낙인처럼 찍힌 원죄로 평생을 회개하며 살아가야 하는 기독교적 세계관. 이를 향해 가차없이 칼질을 가한 라스 폰 테리에 감독의 <안티 크라이스트>만큼은 아니지만 박근형 연출가는 다소 전복적인 반종교적 메시지를 오이디푸스를 통해 담아냈다.

인간은 어째서 신탁을 맹신하게 되었으며, 그로 인해 결국 파멸을 맞는 것에 대해 다소 비판적인 시각으로 바라본다. "지금을 살고 있는 우리에게 오이디푸스가 어떤 이야기로 비춰질까를 질문하고 싶었다"는 그는 초연과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배우의 힘으로 작품을 끌어간다고 밝혔다.

"초연과 달라진 점이 있다면, 무대가 넓어졌다. 또 의자와 같은 소품을 완전히 없앴다. 희랍비극이 코러스와 연기자에 집중했던 것처럼, 온전히 배우들의 에너지에만 의존해 원작의 분위기를 살려보려고 한다." 초연 당시 눈길을 끌었던 하얀 막은 이번에는 스크린처럼 펼쳐져 시각적인 효과를 살려낸다.

<오이디푸스 왕>이 배우 예술의 극치를 선보인다면, <코러스:오이디푸스>는 연극적 연출의 확장을 실험한다.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서재형 연출가는 특히 음악적 실험을 위해 오이디푸스를 작정하고 꺼내 들었다. <왕세자 실종사건>을 뮤지컬로도 올리며 연극에서의 음악적 확장 가능성에 관심을 보였던 그가 희랍비극에 새삼 주목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희랍비극은 본래 14~15명이 주도하던 작품이다. 배우는 3명이고, 나머지가 코러스를 맡았는데, 여기에서 착안했다. 희랍비극이 연극의 시원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동안 내가 해보고 싶었던 형식도 이 같은 음악극에 가깝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이를 위해 그는 현대음악 앙상블 TIMF의 음악감독 최우정 작곡가와 손을 잡았다. 피아노 4대와 신디사이저 1대로 주조하는 음악은 연출 못지않게 독특한 무대를 짐작하게 한다.

서재형 연출가는 안무와 영상도 들여왔다. 발뒤꿈치가 성치 않았던 오이디푸스의 몸짓을 안무로 재현하고 지금으로선 완벽하게 해독할 수 없는 당시의 언어를 타이포그래피로 보여주려고 영상을 삽입했다.

물론 형식에만 초점을 맞춘 것은 아니다. 원작을 거의 손보지 않고 무대화한다는 그는 "원작에서 오이디푸스는 눈을 찌르고 먼 길을 떠난다. 그리고 그것은 속편인 <콜로노이의 오이디푸스>로 연결이 된다. 결국 자신의 운명을 감당하고 그것을 극복하는 것은 인간 본연의 모습이자 원초적 희망"이라며 작품이 내재한 메시지를 설명했다.

프로이트가 정신분석학으로 해석한 이후, 오이디푸스는 줄곧 우리 사회에서 비정상적인 인간의 전형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최근 연출가들이 바라본 오이디푸스는 우리와도 똑 닮은, 보편적 인간으로서의 모습을 재발견해내고 있다.



이인선 기자 kell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