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ry in the Kitchen (17) 고등어시, 소설, 영화, 대중가요에서 약방의 감초처럼 등장

4월의 물고기. 4월 1일 만우절 거짓말에 속아 멍청한 짓을 하는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사방 지천에 널려 있는 것, 가만히 있어도 저절로 경험하게 되는 것, 귀찮지만 그렇다고 특별한 손해를 주지도 않는 것을 일컫는 '4월의 물고기'는 종종 문학이나 영화의 모티프로 등장하기도 한다.

이를테면 프랑스 문학을 전공한 작가 권지예가 동명의 제목으로 장편을 발표한 것처럼. (물론, 이 소설은 물고기와는 전혀 상관없는 연애소설이다.)

이 4월의 물고기는 고등어다. 16세기 프랑스에서는 봄 고등어가 가장 흔했고, 그래서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아왔다고 한다.

고등어로 사바사바?

'길이 두 자 정도로 몸이 둥글고 비늘이 매우 잘다. 등이 푸르고 무늬가 있다. 맛은 달콤하며 탁하다. 국을 끓이거나 젓을 만들기도 하지만 어포는 만들지 못한다.'

손암 정약전의 <자산어보>에 실린 고등어의 정의다. 당시 고등어의 명칭은 벽문어(碧紋魚). 배에 반점이 없는 고등어를 일컫는 말이다. 배에 반점이 있는 고등어는 배학어(排學魚)라고 부른다. 수표면 가까이 난류를 따라 이동하는 고등어는 4월과 10월 우리나라 남해에서 많이 잡힌다.

제주도를 중심으로 북태평양 해역을 서식지로 하는데, 정종목의 시 '생선'의 한 구절처럼('한때 넉넉한 바다를 익명으로 떠돌 적에 아직은 그것은 등이 푸른 자유였다.') 넉넉한 바다, 태평양과 대서양, 인도양을 떠도는 물고기다. 국민생선이라는 별명처럼 고등어를 굽고 조리고 먹는 장면은 우리 시와 소설, 영화와 대중가요에서 약방의 감초처럼 등장한다.

'고등어를 굽다보면 제일 먼저 고등어의 입이 벌어진다 아......하고 벌어진다 주룩주룩 입에서 검은 허구들이 흘러나온다 찬 총알하나가 불 속에서 울고 있듯이 몸 안의 해저를 천천히 쏟아낸다 등뼈가 불을 부풀리다가 녹아내린다' (김경주 '고등어 울음소리를 듣다')

현학적이면서도 아름다운 김경주의 시 중 가장 편하게 읽히는 작품 중 하나다. 김경주 만큼 '시적 허용'을 남발(?)하는 작가도 드문데, 모호하면서도 중의적인 비문 때문에 사실 일반 독자가 그의 시를 한번에 이해하기는 어렵다. 그의 비문들은 어감을 바꾸고, 의미를 더할 때 효과적으로 쓰인다.

때문에 시에 쓰인 말들의 어원을 찾다 보면 그 의미가 풍부해질 때가 있는데 이 시를 읽으며 고등어의 어원을 찾으면 더 풍부한 느낌을 갖게 된다. 고등어는 '등이 둥글게 부풀어 오른 고기'(皐登魚)에서 온 말이다.

내친김에 고등어의 어원을 더 찾기로 했다. 일본어로 고등어는 고기 어에 푸를 청이 합쳐진 글자로 등푸른 고기라는 뜻의 '사바'다. 뒷구멍으로 일처리를 한다는 말인 '사바사바하다'의 어원을 따질 때 이 생선을 들먹이는 이유다. 사람들이 관청에 뒷돈을 줄 때 고등어(사바)를 이용했다는데서 '사바사바'가 됐다는 주장이다. 물론 설(設)일 뿐이지만.

어업 기술이 발전했기 때문인지, 아니면 우리나라 바다 환경이 변했기 때문인지, 시장이 개방된 탓인지 모르겠지만, 일제시대 '사바'는 해방 후 국민생선이 됐다. 하근찬의 등단작이자 대표작인 '수난이대'에서 아버지 박만도는 대합실로 가는 길에 고등어 한 손을 산다. 전쟁 갔다 돌아오는 아들을 몸보신 시킬 음식이 다름 아닌 고등어다.

삼삼오오 모여 고등어 먹던 기억은 누구에게나 향수를 일으킨다. 필자의 머릿속에 고등어구이는 꼭 콩나물국과 세트 메뉴를 이루는데, 이 세트 메뉴는 계절을 가리지 않고 저녁밥상 단골 메뉴로 등장했다.

누군가에게 이 말을 했더니, 자신에게 고등어구이와 단짝을 이루는 반찬은 상추쌈이라고 했다. 제육볶음도 귀했던 시절, 고등어를 고기 대신 상추에 싸먹었다고. 김창완의 '어머니와 고등어'를 들을 때 느끼는 아득함은 그 시절에 대한 향수에서 비롯될 터다.

수고 했어요 오늘 하루도

예전 르포 작가 작업을 돕다가 90년대 있었던 한진중공업 박창수 씨 의문사 관련자들을 만났을 때 일이다. 박 씨의 주변 노동운동가들은 당시를 진술하며 연신 '고갈비 골목'을 반복했다.

"저기 저 용두산 공원 밑에 고갈비 집에서 자주 만났지."

"고갈비 골목이요?"

"지금은 없어졌는데 용두산 공원 밑에 고등어구이 집이 많아 골목을 이뤘어. 없는 사람들이 말이라도 갈비 실컷 먹어보자고 고등어를 고갈비라고 불렀지요. 돈 없어서 새우깡에 소주만 먹다가 돈이라도 생기면 다들 고갈비집으로 갔어. 2층 올라가면 조용하고 눈에 띄지 않아서 술도 많이 먹고 그랬어요."

이들이 80년대 노동운동 장면을 회상하며 떠올린 먹을거리는 소주와 새우깡과 자장면과 고갈비였는데, 모두 싼 값에 칼로리가 높고, 함께 먹는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그들이 부대낀 공장은 부산에 있었지만 이 당시 노동자의 애환은 서울과 부산, 대구와 광주 간의 차이가 없어 보인다. 황석영의 장편 <오래된 정원>은 80년대 광주사태를 회상한 소설로 주인공이 '운동'을 하며 사람들을 만나는 장면에서 그 예의 고갈비 집이 등장한다.

'아줌마, 나 매일 먹는 그거 주세요./ 알았어/ 내가 궁금해져서 박에게 물었다./ 매일 먹는 게 뭐요?/ 순서가 있어요. 먼저 소주 한 병하구 고갈비 한 마리, 그러구나서 데친 두부 한 모루 끝나는데 오늘은 저녁을 안 먹었으니까 나중 입가심으로 라면 하나 추가요./ 그거 아주 실속 있겠는데./ 칼집을 내어 소금 뿌려 구운 고등어 한 마리가 아직도 지글거리며 탁자에 올라왔고 소주 한 병이 따라왔다. 그는 술병을 집으려는 나를 손끝으로 가볍게 뿌리치며 내 잔에 먼저 술을 따라 주고 나서 내게 병을 양보했다.'

최근 고등어 기사를 읽으며 마음이 착잡해진다. 어획량이 준 데다 구제역 때문에 수요는 늘어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았다는 보도는 지난해 배추파동을 겪으며 김치가 '금치'로 등극했던 때를 떠올리게 한다.

시장에서 가격은 수요와 공급 곡선이 맞물리는 지점에서 정해지겠지만, 고등어 값이 갈치 값을 넘어섰다는 기사는 우리 마음을 심란하게 한다. 특별한 날 아버지 밥상에 올라갔던 갈치와 형제끼리 평등하게 나눠먹던 고등어의 '계급 서열'이 바뀌었다는 건 마음으로 받아들이기란, 아무래도 어색하다.

입맛은 길들이기 나름이므로 김치는 양배추로 담그면 되고 고등어조림은 참치찌개로 바꾸면 될 일이지만, 만만한 찬거리가 귀한 음식이 되는 순간, 우리는 그 아득함의 정서를 잃어버리고 만다. 귀하신 몸이 된 고등어를 보며 우리가 느끼는 착잡함은 이런 아쉬움에서 비롯된다.

봄이다. 어깨에는 곰 세 마리가 얹힌 듯 피곤하고, 잠은 자도 자도 쏟아진다. 고소한 봄동에 고갈비를 얹어 먹으며 위로받고 싶은 날이다.

마트에 들러 고등어를 구경하다 바다 건너 사는 신자유주의 예찬론자의 선언을 체감한다. 세계화 시대, 경제는 국가 단위를 벗어나고, 세계는 평평해진다고 했던가? 국내산 자반고등어부터 노르웨이산 큰 손, 캐나다산 중손, 일본산 생물까지 나란히 얼음 위에 누워 있다.

'어디로든 갈 수 있는 튼튼한 지느러미로 나는 원하는 곳으로 헤엄치네/ 돈이 없는 사람들도 배불리 먹을 수 있게 나는 또 다시 바다를 가르네/ 몇 만원이 넘는다는 서울의 꽃등심보다 맛도 없고 비린지는 몰라도/ 그래도 나는 안다네 그동안 내가 지켜온 수많은 가족들의 저녁밥상/ 나를 고를 때면 내 눈을 바라봐줘요 난 눈을 감는 법도 몰라요/ 가난한 그대 날 골라줘서 고마워요 수고했어요 오늘 이 하루도' (루시드 폴, '고등어')



이윤주 기자 miss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