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공 의 연옥에 밀어 넣는 새로운 연극 실험

<푸르가토리움>의 한 장면
<고골 3부작>, <한국문학 3부작>, <죄와 벌 - 죄를 고백함> 등 무게감 있는 작품들로 매회 좋은 반응을 얻고 있는 명품극단이 이번에는 이색적인 실험에 도전한다.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의 주인공들을 단테의 <신곡>에 나오는 연옥에 밀어넣는 것. 이 새로운 실험의 이름은 신작 레퍼토리 <푸르가토리움_하늘이 보이는 감옥>이다.

제목인 '푸르가토리움'은 연옥을 가리키는 라틴어로, 연극은 현실의 삶이 존재하는 이곳을 연옥에 비유한다. <죄와 벌>에 나오는 인물들이 살아가는 이 세상이 <신곡>에서의 연옥의 이미지라고 설명하는 것.

연옥은 보통 천국과 지옥의 중간 단계로 알려진 곳이지만, 단테의 <신곡>에서는 지옥(인페르노)이 절망의 장소인데 반해 연옥은 인간의 영혼이 씻겨 하늘로 오르게 하는 곳으로 묘사된다.

연극에서도 푸르가토리움은 죄 많은 인간들에게 실낱 같은 희망의 불빛을 보여주는 장소이다. 즉 추위와 어둠과 공포가 지배하는 감옥 같은 세상을 동시에 하늘이 보이는 구원의 가능성이 있는 공간으로 그리고 있는 것이다.

가난한 집안의 가장인 마르멜라도프가 실직하자, 큰 딸인 쏘냐는 창녀가 되어 가난한 가족들을 부양하기 시작한다. 얼마 뒤 마르멜라도프는 다시 직장을 구하게 되지만, 상사인 이반은 쏘냐를 자신에게 바칠 것을 요구해온다.

마르멜라도프는 어쩔 수 없이 쏘냐에게 이반을 찾아가게 하지만, 우연한 사고로 인해 쏘냐와 이반은 만나지 못한다. 분노한 이반은 마르멜라도프를 내쫓고, 술에 취해 거리를 걷던 마르멜라도프는 마차에 치여 죽고 만다.

<푸르가토리움>이 주목하고 있는 것은 선과 악의 이중성에 관한 것이다. 마르멜라도프의 악행은 쏘냐의 희생을 초래하고, 걸인을 도와주는 소냐의 선행은 마르멜라도프의 죽음과 가정의의 파멸을 야기한다. 이런 아이러니한 상황들은 선과 악에 대한 이분법적 판단보다는 상황의 측면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정의의 속성을 고민하게 한다.

'죄와 벌'의 문제도 이때 부각된다.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선일까에 대한 기준이 명확하지 않은 시대, 마르멜라도프의 처신을 과연 '죄'라고 단정할 수 있을까. 가족을 위해 창녀의 길을 선택한 쏘냐 역시 '죄인'인가. 이들의 비참한 결말이 '벌'이라면 우리는 도대체 어떻게 살아야 한다는 것일까.

오늘날 우리 주변의 각박한 삶과 결코 다르지 않은 인물들의 모습을 통해 <푸르가토리움>은 관객에게 '진정한 선과 악은 무엇인가'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을 던진다.

삶과 가치 판단에 대한 철학과 사유가 빛나는 연극의 주제는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활동한 김원석 연출가의 시각에 기인한다. 김 연출가는 "사고 파는 '상품'이 되어버린 오늘날 예술의 모습 대신 <푸르가토리움>은 관객에게 고민하고 사색하는 기쁨을 선사하며 연극의 본래적 기능을 수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극작가 모임인 '예가형제'가 대본을 쓰고 명품극단의 젊은 배우들이 에너지 넘치는 신체언어로 현대사회의 이면을 새롭게 풀어낼 <푸르가토리움>은 2일부터 17일까지 국립극장 별오름극장에서 공연된다.



송준호 기자 trista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