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 신선한 시각, 편안한 눈높이 눈길

김홍석의 '별'(2005)
봄을 맞아 미술관들이 친절하고 유익한 현대미술 전시를 마련했다.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미술관의 <추상하라!: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현대미술작품의 새로운 해석> 전과 경기도미술관의 <친절한 현대미술> 전은 신선한 시각과 편안한 눈높이로 관객들을 초대한다.

현대미술, 마음껏 해석하세요 <추상하라!> 전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추상하라!> 전에는 '명찰'이 없다. 전시작 근처 어디에서도 작가와 연도, 작품명을 찾을 수 없다. 이 오리무중 속에 마르셸 뒤샹과 이우환, 루이스 부르주아와 박서보의 작품이 섞여 있다.

현대미술사에 정통한 관객이라면 아는 만큼 발견하는 기쁨을 누릴 수 있겠지만, 그건 덤일 뿐이다. 작품들이 명찰을 뗀 것은 작가와 연도, 작품명에 얽매이지 말란 뜻이다. 이 전시장 안에서만큼은 관객들이 거장의 이름과 과거의 무게에 짓눌리지 않고 작품들과 평등하게 눈 맞추기를 바라는 기획자의 의도다.

오리무중의 상황을 강화하는 구성도 관객의 '오독'을 돕는다. 작품이 전시된 순서는 연대기와 전혀 상관이 없다. 그보다는 색과 구도, 분위기와 감정 등 작품 자체의 모티프에 따라 흘러간다.

구본창의 '시간의 그림'(1998-2001)
예를 들면 벌거벗은 사람들이 숲 속을 헤매는 풍경인 민정기의 '숲에서'의 모호함은 언뜻 번개처럼, 혹은 지진 난 땅처럼 보이는 구본창의 사진 '시간의 그림'으로 이어지고, 시야를 가리는 나무 그림자 너머 황량한 벌판을 찍은 황성구의 '051127 Beyond' 까지 닿았다가 대추리 미군기지의 군사시설 레이돔을 정체 모르게 담은 노순택의 '얄읏한 공'에 다다른다. 이 일련의 모호함, 작품들 간 관계를 읽어내는 것은 관객의 몫이다. 창조적으로 방황할수록 더 많은 해석을 얻을 수 있다.

국립현대미술관 수장고에 고이 모셔져 있던 93점의 컬렉션을 이끌어낸 단서는 '추상'이다. 전시를 기획한 유진상 계원예대 교수는 "진부하게 여겨지는 추상이라는 개념을 재활용하고자 했다"고 말했다.

"20세기 초, 추상미술은 이전의 사실적이고 구체적인 미술에 대한 반동으로 등장해 이후의 예술을 풍요롭게 하는 밑거름이 되었다. 이번 전시에서 관객의 지적이고 감정적인 상상력을 자극하는 추상미술의 기본을 되살리고자 했다"는 것이다.

추상과 구상의 경계를 허무는 시도도 눈에 띈다. 구상회화의 전형으로 여겨졌던 '꽃 그림'들의 추상성이 재조명된다. 꽃의 형태를 다양한 색의 점들로 분해해 재구성한 고낙범의 '셀 수 있는 셀 수 없는'과 이동훈의 탐스러운 '동백꽃'이 나란히 전시되어 있다. 사실 사람들이 꽃을 보는 이유 자체가 추상적이다.

사람들이 꽃에서 보는 것은 꽃잎의 개수나 결이 아니라 생명력, 아름다움, 자연 등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생각할 때 멀게 느껴졌던 추상미술은 관객의 삶 속으로 성큼 다가온다.

민정기의 '숲에서 3'(1986)
전시는 '모호함과 비-가시성', '일상 속의 추상', '추상의 기술', '추상적인 면 혹은 바깥'이라는 네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다. "추상이 발명됨과 동시에 자연과 세계는 예술로 완벽하게 대체되었다"는 안토니오 네그리의 근사한 말도 관객의 걸음을 이끈다.

<추상하라!> 전은 5월10일까지 열린다. 한국 현대미술의 추상성에 대해 논의하는 세미나와 작가와의 대화, 강좌 등도 마련된다.

현대미술 첫걸음, <친절한 현대미술> 전으로부터

경기도미술관은 4월2일부터 <친절한 현대미술> 전을 열고 있다. 작년 한해 취득한 소장품 30점을 나침반 삼아 관객들을 현대미술의 세계로 안내한다. 그야말로 친절한 전시 구성을 통해 어려운 현대미술의 개념을 알기 쉽게 풀어준다. '사실에서 표현Expression으로', '제작에서 선택Selection으로', '완성에서 과정Process으로', '영속에서 순간Moment으로' 등 네 개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다.

'사실에서 표현으로'는 오래 전 미술의 꿈이 자연을 그대로 묘사하는 것이었던 데 비해 현대미술에서는 작가의 내면을 표현하는 것이 더 중요해졌음을 보여준다. 나체 사진을 인화한 종이를 바느질로 엮어 만든 구본창의 '태초에 #41' 같은 작품은 작가의 감정을 강렬하게 전달한다.

고낙범의 '셀 수 있는 셀 수 없는 5'(2007)
'제작에서 선택으로'는 현대미술 작가들은 과거와 달리 원하는 작품을 제작하는 기술보다 원하는 효과를 내기 위해 주변 재료들을 선택하고 이용하는 눈을 더 중요하게 여긴다는 점을 알려준다.

'완성에서 과정으로'와 '영속에서 순간으로'에서는 완성되고 고정된 작품뿐 아니라 창작의 과정과 맥락도 현대미술의 일부임을 가르쳐준다. 더 이상 미술관에 가두어지지 않는 현대미술은 일상과 소통하고 특정한 시공간의 의미까지 포함한다.

장소 특정적인 설치미술이나 한번 행해지고 사라지는 퍼포먼스 등이 그 예다. 이번 전시에서는 임민욱의 '포터블 키퍼', 양아치의 '미들 코리아_황금폭포' 등이 선보인다.

<친절한 현대미술>은 6월6일까지 이어지며 가족 관객을 대상으로 한 교육체험프로그램 '반짝반짝 빛나는 현대미술'이 주말마다 마련된다.


임민욱의 '포터블 피커'(2009-2010)
양아치의 '미들 코리아 황금폭포'(2008-2009)
구본창의 '태초에 #41'(1995)

박우진 기자 panorama@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