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대 초대전] 고향, 어머니, 민족의 정서 담은 보리의 다양한 변주

박영대 작가와 작품 '律(율)' 145×136cm 한지 위에 먹과 채색, 2011
4월, 보리가 한창 여물 때다. 이 즈음에 50년 화업을 보리와 함께한 '보리 화가' 박영대 화백이 한결 완숙한 보리 그림을 선보이고 있다.

서울 경운동 장은선갤러리에서 3월 30일부터 열고 있는 전시에는 보리의 변주가 다양하고 깊다. 구상과 추상, 또는 두 양식이 혼합되거나 전통과 현대가 자유롭게 넘나들고, 한지와 캔버스, 꼴라쥬 등 붓이 춤추고 손 끝이 머문 자리에 핀 보리는 눈보다 마음으로 먼저 다가온다.

박 화백의 보리 작품은 그의 삶 자체이다. 어린 시절부터 봐온, 그리고 곤궁을 견디기 위해 청주 교외 미호천변에 직잡 심고 거뒀던 보리는 화업과 동행하면서 그의 몸이 되고 정신이 됐다.

박 화백은 보리를 내면화해 자신만의 예술로 승화시킨 가장 이른 작가다. 1973년 보리를 작업의 소재로 취한 박 화백은 1975년 국전에서 '맥파(麥波)'라는 작품을 출품해 입선을 하면서 '보리 작가'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78년 백양 공모전에서 '맥파'로 최고상을 수상(국립현대미술관)하면서 입지를 굳혔다.

박 화백은 1980년대 미국 등 해외 전시와 여행을 통해 작업에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현대미술의 추상성을 주목하고 이를 수용해 채색에서 수묵으로라는 재료의 변화와 더불어 조형관의 근간을 바꾼 것이다.

보라-생명 136×73cm 한지 위에 먹과 채색, 2011
1990년부터 2000년 즈음 구상적 경향의 채색화 대신 추상과 구상의 경지를 넘나들면서 수묵담채를 주로 그렸다. 관심 대상도 보리 중심에서 논밭과 산야로 옮겨 갔다.

이 때의 보리는 완전한 추상의 형태로 진입해 '태소(泰素)' 시리즈에 이어 '율(律)-생명' 시리즈와 '생명'류의 작업들은 보리라는 소재를 끈질기게 유지하면서 다양한 변형을 보였다.

이렇게 구상과 심상, 기하학적 변형을 비롯해 수 차례 변화를 거친 보리 작품은 국내외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1991년 일본 국제미술의 제전 동경전 대상을 수상(동경도 미술관)하고, 96년 영국에서 열린 전시회를 통해 '보리' 작품이 대영박물관에 소장돼 국제적인 명성을 얻기도 했다.

박 화백은 30회에 가까운 개인전과 ICA국제현대미술 조명전(2010년), 현대미술 한일전(2010년), 그랑팔레전(2009년) 등 일본, 중국, 프랑스, 이태리 등 해외에서 다수의 국제전 및 단체전에 참가했으며, 사롱·드·바란 대상을 수상(2007년)했고, 현재 ICA 국제 현대미술 조명 위원회, 세계미술협회에서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50년이란 장구한 기간 보리와 함께해온 박 화백은 여전히 보리에 심취해 있다. 이번 전시에 선보이는 보리 작품은 그의 손길이 깊이 배어있으면서도 여유와 자유로움이 뚝뚝 묻어난다.

보라-생명 95×65cm 한지 위에 먹과 채색, 2011
박 화백은 "보리에는 '고향', '어머니', '민족의 역사(정서)'가 담겨 있다"고 말한다.

한겨울에 차갑게 얼어붙은 땅을 뚫고 자라나는 보리의 강인한 생명력은 모질고 혹독한 삶을 살았던 이 땅의 역사와 민족을 떠올리며 특별한 감성과 정서로 다가온다고 한다. 또한 보리는 가난의 추억이 남아있지만 풍요로운 어머니의 품을 의미한다. 박 화백의 보리 작품에 등장하는 여인은 순수의 상징이자 꿋꿋한 어머니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 모든 감성과 조형 언어, 작품의 완성은 '고향'에 뿌리를 두고 있다.

박 화백의 보리 그림이 여느 유사한 소재의 작품과 구별되고 무게를 갖는 것은 그의 삶의 내력이 온전히 녹아있기 때문이다. 보리다운 보리 그림을 감상할 수 있는 박 화백의 전시는 4월 9일까지 이어진다. 02)730-3533

탄생 100주년 남관 인물화전
올해로 탄생 100주년이 한국 추상미술의 대가 남관(1911∼1990)의 첫 전시가 서울 인사동 남경화랑에서 4월 1일부터 15일까지 열린다.

남관은 1955년 프랑스로 건너가 추상미술에 몰입했으며, 1958년 한국인 화가로는 처음으로 살롱 드메전에 초대되기도 했다. 1966년 망퉁 국제비엔날레에서는 피카소, 뷔페, 타피에스 등 세계적 거장들을 물리치고 대상을 수상, 확고한 작가적 위치를 다졌다.

'인물' Oil on canvas, 1975(좌), '드로잉 소품'(우)
남관은 인간의 희로애락을 정제되고 세련된 색채와 독특한 형태에 담았는데, 특히 인간형상을 상형문자 같은 기호로 표현한 작품이 주류를 이뤘다. 또한 작품이 수묵화의 발묵처럼 번지는 해체적 형태와 청색조가 주조를 이뤄 맑고 환상적인 아우라를 자아낸다.

이번 전시에는 평소 인간에 대해 지대한 관심을 갖고 이를 표현해온 남관의 열정이 투영된 1960∼1980년대 인물화 16점과 다양한 드로잉 30여 점이 선보인다. 남관의 트레이드 마크가 된 청색조의 수묵화처럼 번진 독특한 인물화도 전시 중이다.

남관은 자신의 인물화에 대해 "한국전쟁으로 인해 상처받은 인간의 상흔을 위로해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인물화를 상형문자 같은 기호적 요소로 형상화한 것은 인간 내면의 정신을 드러내기 위해 형상의 한계를 넘어서 추상화 기법을 택한 것이다.

박창훈 남경화랑 대표는 "2005년 개관 20주년 기념으로 박수근 40주기 특별전을 열었고 작년에는 문신 타계 15주년 기념전을 연데 이어 올해 장욱진 타계 20주기 기념전을 개최하려다 다른 화랑에서 먼저 여는 바람에 대신 남관전을 열게 됐다"면서 "관객과 함께하는 전시에 주안점을 뒀다"고 말했다.

박 대표는 남관의 인물화는 기존 거래가보다 10% 이상 낮은 가격에 판매하고, 드로잉도 120만 원의 저렴한 가격으로 내놓는다고 설명했다. 02)733-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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