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네틱 아트]전과학적 요소 미술과 접목, 새 장르로 자리잡아

김기훈 '모나리자', 자동차 엔진, 철, 베크라이트, 감속모터, 조명, 액자
예술은 과학과 함께 발전했으며, 과학 또한 예술에서 영감을 얻기도 한다. 오늘날 전통적 시각예술인 회화, 조각, 사진 등이 세분화되어 경계가 모호해지고 장르의 혼성을 가져온 데는 과학의 발달에 따른 다양한 기술들을 예술가들이 하나의 도구의 발전으로 받아들여 예술에 접목한 측면이 적잖다.

20세기에 들어 과학의 발달과 함께 예술가들이 기계나 동력을 이용한 조형 미학을 창조해 내며, 하나의 스타일과 조형 언어로 된 양식이 정착됐다. 움직임을 중시하거나 움직임을 주요 조형 요소로 하는 '키네틱 아트(kinetic art)'이다.

이는 나움 가보(1890~1977)가 과학적 원리와 시각예술을 결합한 움직이는 조각으로 키네틱 아트를 처음 선보인 이래, 모빌의 창시자 알렉산더 칼더(1898~1976), 현대미술의 상징인 마르셀 뒤샹(1887~1968)이 과학적 이론을 토대로 한 '움직임'에 대한 관심을 가져왔고, 키네틱 아트가 장르화되는 기초를 제공했다.

키네틱 아트는 시각적으로만 움직이는 '옵아트(optical art)'와 지각적 추상(perception abstract)까지도 폭넓게 포괄하는 보편적인 용어로 쓰이며, 기계를 이용하여 직접적인 움직임을 보여주는 작품, 자연의 바람과 열 등으로 자연스러운 움직임을 보여주는 모빌(mobile)작품, 그리고 관람자의 직접적인 참여를 통해 재구성되는 인터랙티브(interactive) 작품 등을 포함한다.

일찍이 과학의 테크놀로지를 수용한 백남준의 비디오아트나 2008 광주비엔날레에서 가장 주목받은 독일 작가 한스 하케의 물결치듯 움직이는 하얀 천의 작품 'Wide White Flow(넓고 하얀 흐름)'도 광의의 키네틱 아트에 속한다.

왕지원 'Kwanon_Z', urethane, metallic material, machinery, elec-tronic device (CPU board, motor)
오늘날 런던을 중심으로 키네틱 아트는 미디어아트와 라이트 아트, 그리고 홀로그램까지 수용하면서 미래의 시각예술의 역사를 새로 쓸 미술을 장르화하기 위해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반면 국내에서의 키네틱 아트는 장르로서 위상을 차지하기에 아직 인식이 부족하고 작가들의 활동범위 또한 넓지 않다. 하지만 현대미술의 흐름이나 국내 미술의 다양성 측면에서 키네틱 아트는 중요한 부분이다. 지난 3월 30일부터 서울 인사동 공아트스페이스에서 모처럼 열린 <키네틱 아트>전이 주목받는 이유다.

이번 전시에는 각기 다른 의미와 방법론을 통해 키네틱 아트로서 활동하고 있는 5명의 작가를 선보인다.

움직이는 형상 속에서 숨은 인간의 내면세계를 보여주는 김기훈 작가는 움직이는 '초상화' 시리즈'와 두 개의 물체에 의해 움직이는 'sunev'를 통해 일반 표상 아래 숨겨진 내면세계를 보여준다.

시시각각 다른 표정으로 변하는 모나리자 초상은 인간 내면에 숨겨진 불편한 세계를 말해주고, 'sunev'를 다시 읽으면 'venus'가 되는 작품은 정제되지 않은 두 개의 덩어리 사이의 공간을 통해서만 비너스의 형상을 확인할 수 있게 해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에 관한 우리 인식의 역설적 충돌을 일으켜 심연의 진실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한다.

노해을 'Moveless-white field', 철, 풍선, LED조명
작품 '허공의 둘레'는 우리의 뇌 속에 깊숙이 자리잡은 선입견과 잣대들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듯하고, 엘리자베스 여왕, 마오쩌둥 등 화폐 속 인물을 형상화한 '움직이는 초상화'는 물신숭배 사상이 팽배한 현대인을 꼬집는다.

에너지의 시각화를 보여주는 노해율 작가는 100여 개의 발광(發光)하는 풍선으로 전시 공간을 가득 메워 관람자의 움직임에 따라 풍성이 움직이도록 했다. 관람자의 행동에 따라 풍선이 반응하는 것을 통해 관객과 작품의 상호 소통하는 방식으로 눈에 보이지 않는 에너지를 시각화하고 있는 것이다.

유한한 육체의 초탈을 바라는 왕지원 작가는 '육체로서의 몸'이 아닌 초탈의 의미로서의 몸에 중심을 둔다. 첨단기술인 사이보그 기술을 통해 우리의 몸 상태를 바꾼다면 현재의 유한한 육체를 초월한 그 무언가로 바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작가는 해탈의 대명제인 부다(buddha)를 차용한다. 이는 단순히 육체적 해탈뿐 아니라 영혼과 정신적인 해탈과 초월까지 함의하는 듯 보인다.

인간군상의 단면을 통해 현대인과 사회를 반추하는 최문석 작가는 세계를 움직이는 보이지 않는 존재와 그 안의 개인을 바라보게 한다. 현대사회에서 인간은 개인이 아닌 군중으로 분류한다. 이는 개인의 개성보다는 협력과 융화를 원하는 사회에서 인간은 커다란 기계의 또 다른 장치로서의 구성원이 되는 것이다.

고요한 긴장을 시각화하고 있는 최종운 작가는 고요함과 상반하는 움직임이라는 현상이 공존할 때 고조된 긴장감을 통해 미시적 현상에 대한 순간적인 주목과 찰나의 각성을 표현하고 있다. 작품 'Vertical Sea(수직의 바다)'에 일정한 진동이 가해지면 그 진동은 좌우로 전파되어가며, 상하운동으로 전이된다.

최종운 'Vertical sea', 실 커튼, 사우드시스템, 스프링, 스테인리스스틸, 모터, 센서
이는 마치 물결치는 파도의 수면을 연상하게 하면서 관객에게 긴장감을 조성한다. 동시에 관객은 긴장감 너머의 그 무엇에 대해 사색하게 된다. 작품 'Island'도 다가서면 '떨림'으로 대상을 의인화된 하나의 객체로 바라보게 하는 인식의 전환을 가져온다.

찻잔 속에 회오리 물결이 이는 작품 'storm in the black'는 정지된 것과 움직이는 것, 자연적인 것과 인공적인 것 등 상이한 성질의 대비를 극명하게 들어냄으로써 긴장감을 고조시킨다. 이러한 긴장감들은 인간을 둘러싼 환경에 대한 간접적인 메시지를 함축하고 있다.

오늘날 키네틱 아트는 형광등의 빛을 다룬 댄 플래빈을 비롯해 빈 공간과 차원의 뒤틀린 틈새를 보여주는 애니쉬 카푸어, 물질 상태의 순환을 다룬 한스 하케, 최근 과학자적인 시선으로 시간과 빛, 자연 현상을 다루며 급속도로 이름을 알린 올라퍼 엘리아슨 등이 현대 미술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면서 더욱 주목받고 있다.

국내 키네틱 아트의 현재와 미래를 볼 수 있는 이번 전시는 4월 12일까지 계속된다. 02)730-1144


최문석 '노 젓는 사람들', 스테인리스스틸, 모터

박종진 기자 jjpar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