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기이한 뭔가를 완성하게 될 겁니다." 연극 <갈매기>의 원작가 안톤 체홉은 갈매기의 극본을 쓰며 A.S수보린에게 이렇게 전했다.

알렉산드린스끼 극장에서의 초연 실패로 <갈매기>는 사장될 위험에 처하지만, 스타니슬라브스키의 연출로 현대 연극사에 남을 역작으로 재탄생된다.

평론가 김명화는 "연극하는 사람들에게 체홉은 성지와도 같다"고 극찬했다. 그러나 이런 연극적인 배경에도 체홉의 극본이 연극계에 자주 등장하지 않는 이유는, 내면의 빛을 담담한 어조로 드러내는 특유의 어투가 자칫 단조로워지기 쉽기 때문이다.

따라서 관객몰이가 쉽지 않은 연극계에서 체홉의 극본을 채택하여 무대에 올리는 일은 어렵다. '세계고전연극탐험 시리즈'를 이어왔던 명동예술극장의 역량이 이를 가능하게 한 셈.

등장인물들의 내적 흐름에 주목하고, 극적인 사건들은 관객들이 미루어 짐작하도록 둔 체홉의 극본은 첫 눈에 주목을 끌지는 않지만, 특유의 구성으로 일상의 단면을 제대로 응시하게 한다.

연극 <갈매기>는 열 명의 등장인물들이 만드는 다섯 개의 삼각관계를 주요 갈등으로 내세우고 있는데, 이들의 갈등은 통사적인 플롯이나 사건을 통해 보여지지 않고, 등장인물들의 대사나 작은 에피소드 등의 디테일에서 표현된다. 이들은 '갈망하는 것과 소유할 수 없는 것', '이론과 실제', '관습적인 것과 창조적인 것' 사이에서 끊임없이 갈등한다.

지촌 이진순 선생에 대한 헌정 공연인 연극 <갈매기>는 고전과 옛 연출가를 모두 기릴 수 있는 의미 있는 무대가 될 것이다. 세 예술가, 니나, 드레쁠레프, 뜨리고린의 내면을 함께 들여다보자.

4월 12일부터 5월 8일까지. 명동예술극장. 1644-2003



송준호 기자 trista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