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미디어 아트 프로젝트] 4人의 미디어 매체 통한 커뮤니케이션과 백남준 특별전도
2009년 11월, 둥근 머리와 기다란 팔다리를 가진 사람들의 형상이 유유히 캔버스 위를 걷는 줄리언 오피(Julian Opie)의 '군중(crowd)'이 본격적인 대도시 미디어 캔버스의 등장을 알렸다.
4만 2000여 개의 LED 전구가 쓰인 서울 스퀘어의 미디어 캔버스는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다. 이후 서울역 주변은 밤이 되면 낮과는 전혀 다른 경관을 선보인다.
그동안 이곳에는 기념일을 테마로 한 그래픽 아트가 선보였고, 2010 남아공 월드컵 응원전과 관객과의 소통을 시도한 인터렉션 게임도 등장했다. 연일 새로운 매체에 대한 실험이 이어진다. 이번 4월 한 달간 이곳에는 독일 출신의 미디어 아티스트 4명이 참여하는 <독일 미디어 아트 프로젝트>와 백남준의 특별전이 선뵌다.
코리나 슈니트(Corinna Schnitt), 로버트 자이델(Robert Seidel), 얀 페르벡(Jan Verbeek), 하이케 바라노프스키(Heike Baranowsky) 등 네 명은 독일의 30, 40대 작가다. 아날로그 시대에서 격변의 테크놀로지 시대를 동시에 경험한 이들은 미디어 매체를 통한 커뮤니케이션에 주목한다.
일기장이나 개인수첩에 할 만한 개인적이고 닫힌 행위는 미디어 캔버스를 통해 열린 소통의 행위로 변한다. 독일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그녀는 일상적인 상황에서 벌어지는 개인의 행동과 타자와의 관계 맺기에 주목한다.
이번 작품에서 그녀가 차용한 문장이나 단어는 실제 광고에 등장한 것들을 모은 것이지만, 상업적 맥락은 제거된 채 관객들에게 순수하게 질문을 던진다. '당신은 살기 위해 일합니까, 일하기 위해 삽니까?', '당신은 아름다운 삶을 어떻게 묘사하십니까?'처럼. 어떤 대답도 남기지 않은 채, 그녀의 사적이면서 철학적인 질문들이 이어진다.
<독일 미디어 아트 프로젝트>에서 최연소 작가로 참여한 34세의 로베르트 자이델. 대학에서 생물학을 전공한 독특한 이력의 작가는 이후 바우하우스에서 미디어 디자인 학위를 받았다. 생물학에서 받은 영향은, 유기체적 역동성과 마치 에너지를 색으로 표현한 듯한 다채로운 색채의 사용에서 어렵지 않게 드러난다.
어떻게 보면 물감이 종이 위에서 번지는 수묵화 같기도 하다. 이미 성공한 미디어 작가의 반열에 오른 그의 작품은 어렵지 않게 거리를 오가는 시민들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위 두 명의 작가와 달리 얀 페르벡과 하이케 바라노프스키의 작품은 다소 단조로워 보일 수 있다. 백남준의 수제자로도 유명한 페르벡은 영상과 음향의 접목과 여기에서 비롯된 움직임에 주목한다.
"동작과 시간의 분리가 가능할까?"라는 질문은 그의 작품 세계를 관통한다. 에스컬레이터를 여러 각도에서 포착한 영상과 그것이 내는 덜컹거림, 겨울의 숲과 철로를 빠르게 훑어내고 몇 개의 음계를 반복하는 영상 등이 그의 초기작이다. 짧은 영상 속엔 단편적인 에피소드와 반복되는 행위를 통해 주제를 강력하게 전달한다.
서울 스퀘어에 그가 선보이는 작품은
하늘에 고정되어 있어야 할 것 같은 달이 마치 헤드라이트처럼 지구의 벽이나 천정 등의 공간을 유영한다.
독일에서 온 네 명의 작가가 2011년 신작을 선보이는 것과 달리, 특별전에는 최초의 미디어 아티스트 백남준의 오래된 영상 <조곡 212 중 패션/Fashion from Suite 212>가 공개된다.
백남준 아트센터와의 협업으로 백남준이 1977년에 제작한 영상을 3분 분량으로 편집한 작품으로, 본래 5분 길이의 비디오 시리즈 30개로 구성된 작품은 다양한 관점으로 뉴욕을 스케치했다. 이는 백남준 작품을 국내 최초로 외부 상영하는 전시기도 하다.
<독일 미디어 아트 프로젝트>는 서울역 맞은 편에 선 서울 스퀘어 빌딩 외관에서 4월 31일까지, 저녁 8시부터 10시까지(화, 목, 토, 일) 정시마다 30분간 표출된다. 백남준 특별전은 15일부터 31일까지 만날 수 있다.
이인선 기자 kell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