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11명의 작가 '생성의 기억' 등 네 카테고리의 작품 선보여

도윤희 '고삐가 풀린 저녁'
낯익은 법정스님 얼굴과는 대조적인 육감적인 선인장, 정적인 청나라 도자기와 에너지가 넘치는 맨드라미, 그리고 노트르담 성당과 동양화가 오버랩되는 모니터 등. 언뜻 이질적이고 무관한 듯해 보이는 작품들이 저마다 독특한 개성을 드러내고 있다.

오늘의 한국현대미술에서 국내외적으로 주목받는 작가 11인이 '기억'이라는 키워드로 선보이는 <기억의 미래를 좇는 사람들>전이다. 서울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서 내달 1일까지 열리는 이 전시에는 김지원, 남경민, 도윤희, 박지현, 박진아, 신미경, 이광호, 이동기, 이동재, 이이남, 홍경택 등이 회화, 조각, 영상 등 각 분야별로 다양한 '기억'의 변주를 보여주고 있다.

작가들의 지나간 삶의 흔적들, 축적된 시간, 순간의 인상이 작가 고유의 표현방식을 통해 시·공간을 초월한 예술작품으로 재탄생했다. 이들 작품의 공통어는 '기억'이다. 작가의 작업은 그 순간 과거가 되지만 작품을 통해 미래로 남는다. 예술작품이 미래의 대중과 소통하는 매개로 존재하는 것이다.

이는 마르셀 프루스트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기억은 단지 흘러가 버리는 것, 사라져버리는 것을 회상하는 것이 아니라, 잠재된 흔적을 통해 잊혀진 모습을 의식 밖으로 되살리는 것이며, 바로 그 기억을 환기시키는 것이 예술의 진정한 역할이라고 한 것과 맥락을 같이한다.

전시에서는 '기억'이라는 매우 광범위하고 추상적인 개념을 크게 네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다. 먼저 자연의 시간, 생성의 의미로서의 기억이다.

박진아 '사다리'
도윤희와 박지현은 반복적인 행위의 흔적과 지나간 시간의 무게에서 비롯된 생명의 역사가 담긴 추상적 이미지를 통해 자연의 순환적 질서를 담아낸다. 박진아는 작품을 전시하거나 전시를 준비하는 한 순간의 장면을 포착해 그 일상이 낯선 느낌으로 환기되는 순간을 보여준다.

다음은 생(生)의 욕망, 에너지를 나타내는 '기억'으로 김지원과 이광호는 각각 맨드라미, 선인장을 통해 자연의 모습에 내재된 생의 욕망, 에너지를 환기시킨다. 반면 남경민은 거장 예술가들의 작업실을 통해 예술가의 욕망을 드러내듯 인간 내면에 감춰진 욕망을 실내 풍경의 상징과 오브제들을 통해 보여준다.

오늘날 대중소비사회에서의 이미지 기억도 비중있게 다뤄졌다. 이동기는 과거 오락문화의 아이콘이 가득한 화면으로, 이동재는 그 시대의 아이콘, 대중의 뇌리에 각인돼 있는 유명인의 특징적인 모습을 통해 대중의 의식 속에 끊임없이 각인되는 이미지 기억을 상기시킨다.

홍경택은 찍어낸 듯 좌우대칭이거나 또는 패턴화된 화려한 화면과 아이콘들을 조합해 대중문화의 시각적 영향력과 그것에 대한 기억을 환기시킨다.

문화적 기억과 경험도 이야기한다. 신미경은 비누를 재료로 과거 유물을 정교하게 복제하는 작업을 통해 과거와 현재(시간성), 문화의 이동과 전이(장소성)에 주목한다. 이이남은 '노트르담 성당과 소치의 산수도'에서 보듯 옛 명화를 디지털 영상기술로 새롭게 재현시킴으로써, 문화적 창조물로서의 시간과 동서양의 구분을 넘어서는 기억에 대해 말한다.

이동재 'Untitled'
이번 전시는 작가의 내면에 있는 경험과 순간의 기억으로부터 미래로의 소통방식을 열어 나가려는 작가의 열정과 이들의 작품이 지닌 감성적 환기력을 경험할 수 있는 자리가 될 것이다. 02)720-1020


홍경택 'Mr. Lonely'
신미경 'Translation- vase'
이이남 '노트르담 성당과 소치의 산수도' 일부
김지원 '맨드라미'
남경민 '내면의 풍경을 거닐다'

박종진 기자 jjpar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