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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바보야'
몇 년 전만 해도 종교를 소재로 한 영화들은 성탄절, 석탄일 등 해당 종교인들을 위한 특별행사로만 상영되거나 TV를 통해 방영되었다. 하지만 최근 극장가에서는 종교의 종류를 떠나 영혼을 적시는 영화들이 꾸준하게 관심을 받고 있다. 관객들은 이 영화들에서 무엇을 보고 있는 것일까.

시대의 멘토였던 거룩한 두 '바보'

4월과 5월에는 국내 양대 종교단체인 기독교와 불교의 부활절과 석가탄신일 행사가 있다. 그리고 비슷한 시기에 또 하나의 의미 있는 행사가 열린다. 종교를 뛰어넘은 시대의 두 성인, 고 김수환 추기경과 고 법정 스님의 전기 다큐멘터리가 잇따라 개봉하는 것이다.

먼저 4월 21일 개봉하는 영화 <바보야>는 '바보 사랑'을 실천했던 김수환 추기경의 선종 2주기를 기념해 제작된 다큐멘터리다. 카메라는 스스로를 '바보'라고 불렀던 생전의 김수환 추기경의 행적을 좇으며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의 허기진 영혼과 육신을 살찌우는 그의 '바보 영성'을 조명한다.

뒤를 이어 다음달 12일 개봉을 앞둔 <법정 스님의 의자>는 법정 스님 입적 1주기가 지난 첫 번째 석가탄신일에 개봉을 맞췄다. 평생 나눔과 소통, 자비를 강조하며 무소유의 삶을 살다 간 법정의 삶을 담은 이 다큐멘터리는 치열한 경쟁 아래 성공과 실패만을 논하는 이 시대에도 여전한 울림을 전한다.

두 성인의 삶이 아직도 이 사회에 큰 감동을 주는 이유는 두 영화의 포스터에 압축적으로 나타나 있다. <바보야>의 포스터는 2007년 동성중고 100주년 기념전에서 김수환 추기경이 검정 유성 파스텔로 직접 그린 자화상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투박하지만 간결한 선과 상대적인 여백의 미는 김수환 추기경이 추구했던 소박한 삶과 행복감을 그대로 전해준다. 영화의 제목이자 포스터에도 담겨 있는 법정 스님의 의자는 그 자체로 '무소유의 정신'을 의미하는 물건이다. 그가 일평생 사용했던 이 의자는 늘 비어 있지만 누구든 와서 언제든 쉬어갈 수 있는 곳을 가리킨다.

소박하면서도 치열했던 이들의 삶이 담긴 유품은 존재증명을 위해 전전긍긍하는 현대인들에게 묵직한 성찰을 안겨준다. 가진 것 없이 바보처럼 우직한 삶을 살았던 이들의 메시지가 여전히 유효한 이유다.

희망과 공감으로 상처 보듬는 종교영화

이처럼 종교인들의 삶이나 특정 종교의 가르침이 하나의 종교를 뛰어넘어 사회 전체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은 감성을 자극하는 보편적인 메시지에 있다. 최근 몇 년간 꾸준한 흥행을 보이고 있는 종교 다큐멘터리들의 선전이 이를 뒷받침한다.

영화 '울지마 톤즈'
시작은 2009년 <소명>에서부터였다. 아마존 원시부족들과 함께 사는 선교사의 이야기를 그린 이 영화는 10만 관객을 돌파하며 종교 다큐 신드롬을 쓰기 시작했다. 지난해에는 이스라엘에서 벌어지는 분쟁을 다룬 <회복>이 역시 15만을 돌파해 <소명>의 기록을 깼다.

<소명>은 지난해 2편인 <모겐족의 월드컵>을 개봉해 전편의 호응을 이어갔고, 지난 7일에는 3편 <히말라야의 슈바이처>를 새로 내놓으며 기독교영화의 새 장을 쓰고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지난해 개봉한 <울지마 톤즈>의 저력이다. 아프리카 수단에서 활동했던 '한국의 슈바이처' 고 이태석 신부의 이야기를 다룬 이 영화는 올해 초까지 무려 41만 명을 돌파하며 종교 다큐에서 흥행 신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이 같은 종교영화들의 선전은 영화의 메시지가 관객의 감성을 자극하는 데 성공한 것도 있지만 시대적인 배경과도 맞물린다는 평이다. 신윤성 문화칼럼니스트는 "대립과 경쟁의 시대가 가속되면 사람들은 다시 화해와 상생에 관심을 돌리게 된다"고 말한다. 싸움에 지친 영혼을 화해를 통해 위로받고 싶다는 말이다.

이는 종교계에서도 마찬가지다. 종교 간 갈등으로 반목했던 종교인들은 지금 이해와 화합을 통해 서로에게 다가가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지난달 개봉한 <내 이름은 칸>은 그런 종교 간 화합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영화는 9.11 테러 이후 자신에게 향한 인종과 종교의 편견을 더 큰 사랑으로 포용하고 약속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IQ 168의 바보 칸의 여정을 다루고 있다.

국내 7대 종단과 이슬람 지도자들은 얼마 전 이 영화의 관람을 위해 이례적으로 한 자리에 모였고, 관람 후에는 영화의 감동을 그대로 종교 간 화합에의 의지로 이어가 화제를 모았다.

이날 행사에 참여했던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총무 김영주 목사는 "종교 간 갈등이나 편견, 피부색, 생각이나 문화의 차이 같은 것들이 얼마나 허망한가 느끼게 했다"고 감회를 밝혔고, 조계종 문화부장 효탄 스님은 "다종교 사회에 살면서 종교 이전에 인간으로서 어떻게 이웃과 공존하고 평화롭게 살 수 있는가에 대한 답을 얻을 수 있는 영화였다"라고 말했다.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종교영화는 단순히 특정 종교의 메시지만을 전달하지 않는다. 이 영화들은 지친 사람들의 마음을 위로하고 희망을 불어넣으며 공감을 얻고, 그것이 바로 종교의 역할이라고 말하고 있다.



송준호 기자 trista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