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복재생'
어느 작가든 애정을 쏟는 특징적인 오브제가 있다. 작가 성경원의 오브제는 '컵'이다.

티백이 담긴 종이컵, 커피 전문점의 일회용 컵 등 일상적이고 흔한 컵들. 일상적이고 흔한, 찢어지고 해체되기 쉬운, 게다가 기억에서 쉬이 잊히는 종이컵은 어쩌다 작가 성경원의 눈에 띄어 개인전에까지 오르게 되었을까.

작가는 컵의 일상성과 일회성에 주목했다. 컵이 흔한 오브제인 것도 선택에 한 몫을 했다.

흰 벽이나 붉은 바닥에 일렬로 놓인 컵의 군집은 거리의 군중을 닮았고, 반복적으로 재생되는 컵의 이미지는 일회적인 삶의 순환 고리를 보여주는 듯하다. 무엇을 담고, 뱉고, 액체를 오래 담고 있다 파괴되는 컵의 속성은 사람의 그것과 꼭 닮았다.

작업 중에서, 작가가 스스로 만든 '가짜 컵'과 그것을 찍은 영상 작업인 'disposable' 연작이 흥미롭다. 작가는 컵의 기능을 일시적으로 할 수 있는 가짜 컵을 만들어 음료를 붓는다.

뜨거운 액체가 담긴 컵은 잠시 그것을 견디지만, 곧 무너지거나 터져 제 역할을 잊는다. 작가는 이 컵을 손으로 뭉개 형태를 없애는데, 평론가 박영택은 '다소 처참한' 풍경으로 회고하며 "종내 흙으로 돌아가는 인간의 몸을 연상시킨다"고 말했다.

'깊이를 지닌 텅 빈 내부'에는 모든 것이 들어갈 수 있고, 그러나 영영 들어가지는 못한다. 컵은 물체가 지나는 통로이고, 컵은 언젠가 사그라져 제 기능과 흔적을 잃는다.

갤러리 룩스에서 4월 13일부터 4월 25일까지. 02)720-8488



이인선 기자 kell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