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코 & 슬로바키아 현대사진전

이고르 말리예프스키, 'Peter's Shadow', 2000
검은 옷은 입은 사람 양 옆에 하얀색의 날개가 돋아났다. 천사의 현신일까, 하고 자세히 들여다보니 양 옆엔 날개가 아닌 하얀 옷을 입은 두 사람이 있다. 마치 하늘을 날고 있는 것처럼 촬영됐지만 알고 보면 모델들은 모두 바닥에 누워 있다.

조감도 방식으로 흘러가는 그림자나 물로 그린 그림 등을 이용해 빌딩 꼭대기에 올라가 바닥에 누운 모델을 촬영하거나 콜라주나 몽타주 방식을 선호하는 미로 스볼릭의 작품이다.

예술성에 유머를 더해낸 그는 동유럽을 넘어 세계적인 인지도를 얻는 작가다. 기실 그만큼 많이 알려진 동유럽의 사진작가는 많지 않다. 특히, 체코와 슬로바키아라고 한다면 떠올릴 수 있는 사진작가가 몇 명이나 될까.

체코와 슬로바키아에 대해 떠올릴 수 있는 것 또한 몇 가지로 압축된다. 오랫동안 사회주의 국가였던 탓에 여전히 걷히지 않은 음울한 거리의 분위기, 야경이 아름답기로 손에 꼽히는 프라하의 밤, 체코와 슬로바키아가 하나의 공화국일 당시인 1968년에 일어난 민주 자유화 운동인 '프라하의 봄' 정도다.

하지만 한국과 수교를 맺은 지는 올해로 21년째다. '체코슬로바키아'가 분리된 시기는 1993년으로, 그보다 3년 전인 1990년에 한국과 수교를 맺었으니, 지난해에는 수교 20주년을 맞았다.

라덱 체르막, 'Personal landscape No. 086', 2005
그리고 최근 열린 사진아트페어 서울포토 2011에서 체코와 슬로바키아를 주빈국으로 선정해, 본격적으로 그곳의 사진작가와 작품을 소개하는 장이 마련됐다. 그들의 작품 세계를 이해하기엔 4일간의 짧은 아트페어 속 전시는 막을 내렸지만 이들 작품은 고스란히 자리를 옮겨 전시 중이다.

지난 4월 19일부터 오는 7월 17일까지 롯데갤러리 본점과 에비뉴엘 전 층에서 전시되는 체코&슬로바키아 현대사진전 <아방가르드의 후예> 전이 그것.

이고르 말리예프스키(Igor Malijevsky, Czech), 얀 포흐리지브니(Jan Pohribny, Czech), 유디타 차데로바(Judita Csaderova, Slovakia), 카트카 프라츠코바 (Katka Prackova, Slovakia), 밀란 파노 블라트니(Milan Fano Blatny, Slovakia), 미로 스볼릭(Miro Svolik, Slovakia), 라덱 체르막(Radek Cermak, Czech), 바츨라프 이라섹(Vaclav Jirasek, Czech) 등 8인의 체코와 슬로바키아 작가들 작품 60여 점이 관람객들과 만난다. 1948년생부터 1978년생까지 작가들의 나이도 다양하다.

"체코가 다큐멘터리적인 성격이 강하다면, 슬로바키아는 이미지 사진이 강하죠. 얀 포흐리지브니는 빛과 돌, 조형물에 인공적인 연출을 더해내고, '사진 만다라'로 유명한 밀란 파노 블라트니는 컴퓨터 합성이 아닌 암실에서 수작업으로 콜라주 작업을 합니다. 카트카 프라츠코바는 명과 암, 보이는 것과 은폐된 것 사이의 경계를 넘나드는 긴장감과 신비함을 표현하죠." (성윤진 큐레이터) 다른 작가들보다 며칠 앞서서 전시의 포문을 연 세 명의 작가에 대한 설명이다.

보통 그들이 하는 젤라틴 인화였다면 작품의 깊이감이 더 잘 표현되었겠지만 해외 전시인 탓에 C-프린트 전시라는 점이 다소 아쉬운 점이라고 성 큐레이터는 덧붙였다.

미로 스볼릭, 'Afler my death', 1986
그럼에도 동유럽 작가들의 깊이감과 생동감은 발길을 잡아두기에 충분하다. 컴퓨터 그래픽을 이용한 세련된 기술력보다는 여전히 맥이 이어지는 전통적 사진 기법을 통해 여전히 예민한 사진가의 감각을 드러낸다.

사회주의 치하에서 움튼 블랙 코미디 역시 사진 속에 은근히 배어들었다. 미술평론가 안나 막시모바는 "비극과 희극이 섞여 나타나는 유머코드는 비단 사진뿐 아니라 문화, 영화, 다른 장르의 미술에서도 흔히 발견되는 체코, 그리고 슬로바키아의 특징으로 꼽힌다"고 말한다.

연출이나 가공을 통해 몽환적이고 초현실적인 이미지를 완성하는 유디타 차데로바, 상징적 이미지를 섬세하게 표현하는 시인이자 사진작가인 이고르 말리예프스키, 종종 공포감이 느껴지는 독특한 초상사진을 촬영하는 바츨라프 이라섹, 나타났다 금방 사라지는 상상 속 풍경을 묘사하는 라덱 체르막 등의 작품 역시 체코와 슬로바키아의 예술 세계를 이해하는 좋은 계기가 될 듯하다.


카트카 프라츠코바, 'To the Light', 2005
얀 포흐리지브니, 'Heads', 2005
밀란 파노 블라트니, 'Photomandala Wolfsburg, 2000
유디타 차데로바, 'Flowing', 1989
배출라프 이라섹, 'Upsych 316a', 2010

이인선 기자 kell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