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화동 1번지' 5기 동인 봄 페스티벌, 등 5편의 연극 무대에 올려

가정폭력, 배우자의 외도, 미국을 잠시 떠나온 미국인 등, 이들을 현대사회에 팽배한 나르시시즘과 어떻게 연결 지을 수 있을까. '혜화동 1번지' 5기 동인의 봄 페스티벌에서 나르시시즘을 통해 현대 사회의 단면을 바라본 작품 5편이 올라간다.

이윤택, 박근형, 김광보, 양정웅 등 대학로를 이끄는 스타 연출가를 배출한 연출가 동인 집단 '혜화동 1번지'가 5기 동인을 맞이하며 16년째 순항 중이다. 대학로를 파고드는 상업적 연극에 대항해 여전히 개성 강한 실험극으로 대학로 연극의 대안을 제시하는 '혜화동 1번지'는 1994년 결성됐다. 초창기 기국서, 이윤택, 김아라 등 7인이 1기로 결성한 '혜화동 1번지'는 4년에 한 번씩 후배 연출가에게 바통을 넘기며 그 정신을 이어가는 중이다.

연습실이 턱없이 부족하던 시절, 혜화동 1번지에 마련된 작은 공간은 연극적 아이디어와 텍스트가 예술로 움터가는 인큐베이터 역할을 했던 곳이다. 연습실이 남아도는 지금이야 연습공간에 대한 아쉬움은 줄었지만 잘 만든 연극에 대한 갈증은 더해간다. '혜화동 1번지'가 지금껏 순항할 수 있던 것도 이곳이 연습실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음을 방증한다.

지금껏 23명의 동인이 예술혼을 지피던 곳에 5기 동인이 둥지를 텄다. 외국인 노동자문제, 88만 원 세대의 실업문제 등 현실적이고 민감한 주제를 무대화해 온 젊은 연출가들은 '나르시시즘'으로 어떤 이야기를 풀어낼까.

당신은 나르시시스트인가.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미소년 나르키소스는 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에 반해 그만, 물에 빠지고 만다. 독일의 정신과 의사 네케는 이 소년과 연관지어 1899년 '나르시시즘'이라는 용어를 만들었는데, '자기애'로 번역되는 자기 자신이 곧 관심과 애정의 대상이 되는 것을 말한다.

정신분석학자 프로이트가 정신분석학적 용어로 사용하면서 널리 알려졌는데, 그는 이것을 유아기적 특성으로 바라봤다. 성인이 되어도 자기 자신의 관심뿐 아니라 모든 사람이 자신을 바라봐주길 원하는 이것은 곧 자기애성 성격 장애로 규정된다.

사람들의 흥미를 끄는 것들이 초 단위로 쏟아져 나오는 이 시대는 의아하게도 수없이 복제된 나르키소스들이 살아가는 곳이다. 올해의 혜화동 1번지 페스티벌 예술감독으로 활동하는 김한내 연출가는 "지금 한국사회는 자기중심적인 사고가 팽배하며, 타인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무관심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곧 '개인의 만족'이 최고의 가치인 세상이다"라며 나르시시즘을 이번 페스티벌의 키워드로 선정한 이유를 설명했다. 혜화동 1번지 5기 동인들에게 이번 작업의 과정은 '예술을 왜 하는가'에 대한, 자기 자신을 향한 질문을 던지는 계기가 되고 있다고도 했다.

지난 20일, <더 위너>(작, 연출 김수희, ~5월 1일)가 막을 올렸다. 김수희 연출가는 가정 안에서 은밀하게 이루어지는 폭력을 소재로 한국 가정의 비개인주의를 나르시시즘과 연결해 풀어냈다.

연극 <더 위너>-혜화동 1번지 5기 동인 봄 페스티벌 첫 작품
대를 이어가기 위해 아이를 낳고, 자신의 기준만 있을 뿐 가족 구성원의 감정에는 귀 기울이지 않는 기성세대의 가부장적인 사고방식을 나르시시즘의 세습에 의한 결과라고 전제한 연출가는 해설가를 통해 관객이 몰입이 아닌 거리를 두고 한국 가정을 바라보게 한다.

5월 4일에 막을 올리는 <인터내셔널리스트>(연출 김한내, ~5월 15일)는 세상의 중심이라는 미국인들의 '착각'을 통해 한국 사회를 들여다본다. 홀로 동유럽으로 출장 간 미국인 로웰은 자신 외에 영어 사용자가 없는 타국에 홀로 남겨지게 되는데, 미국과 영어에 미묘한 경계심을 드러내는 회사 사람들 사이에서 그의 처세는 어떻게 달라질 것인가를 들여다 본다.

윤한솔이 연출하는 <나는야 ?스왕>(5월 19일~5월 29일)은 '나르시시즘'을 자기성애, 성적이상, 자아이상 등으로 정의한 프로이트의 텍스트에 충실했다.

그러나 결국은 건강한 개인주의에 대한 성찰이다. 공동체에 대한 불신은 결국 개인의 존재마저 부정하고 불안하게 한다. 한 사람이 바로 설 수 있는 건강한 개인주의와는 달리 개인마저 흔들리는 허약한 개인주의의 팽창이 결국 지금의 현실을 낳았다고 보는 연출가는 무대에 직접 출연해 관객과 마주한다.

<유년의 뜰>(작, 연출 이양구, 6월 3일~6월 12일)은 충주댐에 수몰된 마을에 살았던 연출가 자신의 기억을 들춘다. 물이 가득 차 있던 여름을 지나 겨울이 되면 과거 마을이었음을 알 수 있는 소주병, 냄비, 숟가락과 신발, 농기구 등의 세간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김제민 연출가
연출가는 나르키소스가 물 위에 투영된 자신을 바라보듯, 자신의 기억을 거울 삼아 수몰지역 마을에서 살던 어린 시절 극장 안에서 마치 다큐멘터리를 찍듯 정밀하게 구축해낸다.

페스티벌의 대미는 의 <배신>(6월 16일~26일)이 장식한다. 해롤드 핀터 원작의 작품은 영화의 플래시 백처럼 극이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는 특징을 가진다.

이는 단지 영국의 한 중산층 가정에서 벌어지는 불륜, 혼외정사 등을 통해 부부간의 갈등과 배신을 들여다보고자 하지 않는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며 배신 저변에 깔린 이기심과 자기 합리화의 과정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데, 이는 타자와의 관계에서 더한 비극성을 드러내는 나르시시즘이란 잔혹한 현실을 들춘다.

인터뷰

2006년 데뷔 작품을 혜화동 1번지에서 올렸던 는 2011년 '혜화동 1번지' 페스티벌의 마지막 무대를 장식한다.

미디어 아트로 석사를 밟아 연극 연출에 영상 매체를 자주 사용하는 그는 이번 공연에서도 영상 매체 사용을 구상 중이라고 했다. 두 달여 남짓한 공연에 앞서 그의 열 번째 작품이 될 <배신>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해롤드 핀터의 <배신>을 원작으로 택한 이유가 있나.

해롤드 핀터의 작품을 연출로서 올려보고 싶었고, <나는 나르시시스트다!>라는 큰 주제에 맞는 작품으로 적합하다는 생각을 했다. 부조리극인데다 핀터가 라디오 작가 출신이어서 다른 희곡에는 없는 '사이'나 '정지'라는 지문이 들어가는 것도 재미있었다.

또 영상 매체를 사용하기 때문에, 작품 안에서 연출가가 상상할 수 있는 여지가 많은 작품들을 신중하게 고르는 편인데, 그런 점에서도 적합하다고 봤다.

이번 작품에서 영상 매체가 어떤 방식으로 보여질지 궁금하다.

처음부터 모든 것을 완벽히 계획하기보다는 배우와 연습하면서 장면을 만드는 과정에서 영감을 얻는 편이다. 기본적으로 작품이 나르시시즘적 내용을 담고 있어 자기반영적 성격을 갖기도 하지만 미디어 아트에서 비디오 역시 그 같은 요소가 있어서 통하는 게 있다고 본다.

현재 구상하는 바로는 무대 위에 있는 배우의 모습을 실시간으로 복제해서 영상으로 투영하고 영상 속 가상의 배우와 무대 위 현실의 배우가 대화하는 방식으로 풀어가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그동안 배경이나 배우와 인터랙션하는 방식으로 많이 사용했지만 극장마다 물리적 한계가 있어서 혜화동 1번지에서 구현 가능한 지점을 모색해야 할 것 같다.

이번 페스티벌에 대해 어떤 기대를 하고 있는지…

5기 동인들이 지금까지 살아온 과정도 다르고, 대학 학번도 90년대 초반부터 후반까지 있어서 '나르시시즘'이라는 하나의 키워드를 바라보고 해석하는 방식이 저마다 다르다.

그래서 어떤 작품들이 나올지 서로들 궁금해하는 눈치다. 타자와의 관계 맺기 이전에 선행되어야 할 것이 자기반성, 자아성찰이다. 이번 페스티벌 공연은 사회와 개인, 게다가 우리 연출가 자신들에게도 자기투영적이고 자기 반성적인 작품이 되지 않을까 싶다.



이인선 기자 kell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