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ry in the Kitchen (20) 와인과 소주 사이영화, 소설 속 와인과 소주의 차이점

지난주 마감을 끝내고 어느 대학 연구소에 놀러갔다. 연구소에서 기획한 행사 설명회가 있었는데, 정확히 설명회보다 설명회 이후 술자리에 가고 싶어서. 연구소에서 시작한 와인파티는 자리를 옮겨 2차로 이어졌고, 맥주보다 적게 먹을 것 같다는 단순한 계산으로 우리 일행은 위스키를 마셨다. 그래도 아쉬운 몇 명은 다시 소주로 입가심을 하고 새벽에 헤어졌다.

'감자탕에 소주를 먹어야 술 좀 먹었다고 생각하지. 언제쯤 이 버릇 개나 줘버릴까….'

머리를 쥐어뜯으며 황금 같은 토요일 오전을 그렇게 보냈다.

소주 한 잔 돌려 마셔야 마음 열었다고 생각하는 한국인의 '멘탈'은 세대와 성별을 아우른다. 술 취해 퇴근한 아버지를 보면서 바락바락 대들던 필자가 대학 입학과 동시에 아버지를 이해했으니, 이 정서는 유구하게 지속될 듯 싶다. 대세가 순한 소주로 넘어왔으니 술먹고 밤새는 시간은 점점 더 길어지지 않을까?

소주는 안되는 겁니까?

영화 <작업의 정석>
적당한 알코올은 긴장을 풀고 마음을 열게 한다. 요즘 커피만큼이나 와인이 유행하는 이유일 게다. 물론 사람마다 '적당한'의 기준이 다르겠지만.

영화나 드라마, 소설을 보면 알코올의 정치학(?)이 보인다. 격조 있는 자리에는 와인이, 소박한 자리에는 소주가 미장센으로 세팅된다. 소주가 한국 술이니 와인이 나오는 작품도 한국작품으로 국한시켜 보자.

영화 <여배우들>은 제목처럼 여배우들의 일과 일상을 그린 영화다. 윤여정, 이미숙, 고현정, 최지우 등 여배우들이 말싸움을 벌이다 한 자리에 모인다. '동페리뇽' 샴페인을 마시기 위해서. 와인의 은은한 딸기향과 부서지는 거품은 꼭 그만큼 화려하면서 덧없는 여배우들의 삶을 보여준다. 화려한 파티의 인기 품목인 이 와인은 실제로도 연예인들이 즐겨 마시는 와인이란다.

<식객2-김치전쟁>에서 김정은이 욕조에 앉아 마시는 와인은 칠레산 '1865 리미티드 에디션'이다. 블랙라벨이라는 별칭을 가진, 세계적으로 극찬을 받는 고가의 와인이다. 극중 '천재 요리사'인 김정은의 취향과 딱 맞아떨어진데다 고급스러운 욕실 분위기와도 어울린다.

<작업의 정석>에서 주인공 송일국이 손예진에게 작업을 걸기 위해 주문하는 와인은 '샤토 오브리옹'이다. 프랑스 5대 샤토 중 하나인 이 와인은 2005년 빈티지가 170만 원 대다.

영화 <내 머리 속의 지우개>
이렇게 비싼 와인이 아니라도 영화나 소설에 등장하는 와인은 나름의 '히스토리'를 갖고 나온다.

요컨대 영화나 소설에서 소주는 '그냥 소주'로 등장하는데, 와인은 '그냥 와인'이 없다. 세상에는 포도 재배와 숙성, 유통의 방법에 따라 천차만별의 와인이 존재하고, 그 와인들은 차별화를 위해 나름의 '이야기'를 만들어 낸다. 세상에 '그냥 와인'은 없는 것이다.

물과 알코올과 화학조미료의 황금비율로 만든 소주는 공산품으로 존재한다. 소주가 물 건너가면 대접이 좋아진다고 해도 저런 장면들을 소주로 대체할 수는 없다. 이런 걸 사대주의라고 해야 할까?

이건 와인도 안 된다고

예전 금융회사 영업 담당 선배가 말했다.

"우리도 분위기 좀 바꿔보자고 접대할 때 와인 시도해봤는데, 고객들이 '술발' 안 오른다고 4명이서 150만 원 어치를 먹어버리더라. 한번 고생하고 다시는 안 먹지."

대학시절 선배와 필자는 종종 한밤중에 소주나 캔맥주를 나눠마셨다. 선배의 취향이 소주에서 복분자로, 다시 와인으로 넘어가는 걸 보면서 '역시 금융산업이 대세'란 확신이 들었다. 선배에게 물었다.

"왜 소주는 되고, 와인은 안 되는 걸까?"

싼 값에 대량유통되는 소주를 와인처럼 깐깐하게 음미하는 사람은 없다. 한국인이 한해 30억 병의 소주를 마신다고 하지만, 이민정과 유이 말고 '참이슬'과 '처음처럼'의 차이를 아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모든 소주는 그냥 소주고, 우리는 소주 맛보다 '그냥 소주' 자체를 원한다.

최일남의 단편 '소주의 슬픔'은 28도 '쐬주'부터 시작한 소주꾼들의 역사를 담은 소설이다. 주인공은 술로 죽은 친구(이 친구가 하필 기자다)를 하관하고 묘 앞에서 다른 한 친구와 죽음을 안주 삼아 소주를 마시며 술문화의 변천을 주고받는다.

작가는 여기서 '술은 곧 미디어'란 말로 소주의 효능을 피력한다. 맨 정신으로 견디기 어려운 세상을 살다 보면 술잔을 기울이며 답답한 속을 털어놓을 '판'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이를 한층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이 김종광의 단편 '짬뽕과 소주의 힘'이다. 작가의 자전적 소설로 그의 아버지는 광부이자 농부이고, 공부에 한이 맺혀 있는 양반이다. 아버지는 아들이 대학교에 합격하자 아들의 손을 덥석 잡고 눈물을 흘리며 "고맙다"고 했다.

세월이 흘러 서울살이에 실패한 아들은 고향으로 돌아와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등단해 '소설가 자격증'을 얻고 여러 차례 작품을 발표해도 아버지는 이렇다 말 한 마디 없다. 배우지 못한 자신의 한을 이해하지 못한 아들이 야속했던 것이다. 이 둘의 거리를 좁혀주는 게 '짬뽕과 소주의 힘'이다.

'부자는 중국 음식점으로 갔다. 부자는 짬뽕과 소주 한 병을 시켰다. 아들은 짬뽕을 먹노라니 지난 1년간 집에 있을 때는 그렇게도 나오지 않던 말이 술술 나왔고 아버지도 소주를 들이켜노라니 "요샌 무슨 얘기를 쓰고 있는 겨?" 같은 집에서는 되지 않던 관심표현이 곧잘 되었다. 그래서 아들은 짬뽕과 소주의 힘을 알게 되었다.' (소설집 <짬뽕과 소주의 힘> 174페이지)

와인이 그 자체로 완벽한 이야기를 갖고 있다면, 소주는 함께 마시는 사람들이 소주의 이야기를 만들어 가는 게 아닐까.

"와인 좋아하세요?"

"모든 종류의 알코올을 사랑하죠."

이렇게 시작한 지난주 술자리를 다시 생각한다. 그따위 개나 줘버릴 술버릇이 없었다면 적당한 거리에서 적당한 주제로 적당하게 즐기고 상쾌한 기분으로 주말을 맞았을 게다. 다시 취재원을 만나고, 눈가에 주름이 지도록 웃으며 이렇게 말했겠지.

"아하하 어색하고 좋은데요, 교수님?"

그리고 다시 적당한 거리에서 적당한 주제로 적당하게 만나 적당한 취재거리를 나누는 제자리걸음을 반복하고 있을 테지. 이럴 때 생각나는 우리 톨스토이 아저씨.

'와인의 이야기는 고만고만하지만, 무릇 소주의 이야기는 나름나름이다.'



이윤주 기자 miss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