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일제강점기서 현대까지 미술작품과 기록물로 조망

조덕현, '리플렉션 리플렉션', 2011
개인에게, 또는 집단에게 역사란 무엇인가? 역사가 이들에게 의미를 갖는 것은 과거이지만 동시에 현재의 일부분으로 삶의 조건을 만들어 온 실체이기도 하다.

그러한 우리의 역사, 특히 격동과 파란으로 점철된 한국 근현대사를 미술작품과 기록물로 조망하는 색다른 전시가 열리고 있다.

서울 한남동 삼성미술관 리움에서 열리고 있는 <코리안 랩소디-역사와 기억의 몽타주>전으로, 일제강점기에서부터 고도성장한 오늘의 한국이 있기까지 격동의 시대가 시각예술에 어떻게 반영되고 기억되는지를 살핀다.

전시는 지난 100여 년간 미술사에 남겨진 역사적인 작품들을 씨줄로 삼고 현대 작가들이 과거의 역사와 기억을 재해석한 작품들을 날실로 삼아 근현대사를 재구성했다. 더불어 역사를 개념이 아닌 '이미지'로 읽어낸 것이 특징으로, '랩소디'라는 용어가 시사하듯이 근현대사의 굴곡이나 민족적 애환, 한국사회의 급속한 변화와 역동성을 자유로운 서사적 형식을 취했다.

전시는 크게 개항 이후 구한말부터 일제강점기를 다룬 1부 '근대의 표상(1876~1945)'과 해방 이후부터 현재까지를 포괄적으로 다룬 2부 '낯선 희망(1945~2011)'으로 짜였다.

구본창, '한국 전쟁 관련'(박외연, 어머니 전상서 철모), 2010
또한 회화를 비롯해 다큐멘터리 사진과 영상, 설치, 우국지사의 유묵(遺墨), 국내에 최초로 공개되는 조선 관련 우키요에(일본의 다색목판화) 등을 병치시켜 비교와 충돌, 동일성과 차이, 연속과 불연속을 통해 근현대사를 새롭게 해석하고 있다.

1부 전시장인 블랙박스에 들어서면 미국 화가 휴버트 보스의 개화기 덕수궁에서 바라본 광화문과 경희루를 그린 '서울풍경'(1899)과 국가를 잃은 설움을 우회적으로 표현한 안중식의 '백악춘효'(1915)가 손장섭의 '조선총독부'(1984)와 함께 광화문과 경복궁으로 상징되는 민족정체성을 반추하게 한다.

이어진 박생광의 '명성황후'(1983), 김은호의 '순종어진'(1923~1928사이)과, 망국의 한을 담은 채용신의 '유학자 초상'(20세기초)은 서용선의 '동학농민운동'(2004)과 함께 배치돼 암울한 시대상황을 조명한다.

일본 메이지시대(1868~1912)의 조선관련 우끼요에와 사진 평론가 이경민의 일제강점기 다큐멘터리 사진 동영상인 '인물도감', '한성에서 경성으로-식민지 수도 경성의 변모'는 일제가 조선 통치를 어떻게 정당화하고 있는지를 살펴볼 수 있고, 조선황실의 비극적인 가족사를 다룬 이상현의 2시간 분량의 영상물 '조선의 낙조'(2006)는 구술사를 통해 한국 근현대사의 단면을 보여준다.

1910년대 이후 일본 유학을 통해 인상파와 후기인상파 등을 배우고 돌아온 화가인 김기창의 '가을'(1934), 이인성의 '경주의 산곡에서'(1934)는 식민지 정책과 부합하면서 지역적 색채를 나타내고 있고, 1930년대 야수파, 입체파의 영향을 받은 구본웅의 '인형이 있는 정물'(1937), 김환기의 '론도'(1938) 등은 당시 화단의 서구 추상미술에 대한 관심을 보여준다.

서도호, '유니폼/들 자화상/들 나의 39년 인생', 2006
1930년대 신여성과 당시의 모습으로 분장한 딸을 함께 묘사한 조덕현의 '리플렉션 리플렉션'(2011)은 시공간을 뛰어넘어 한국사회에서 여성의 삶을 반추한다. 올해 탄생 100주년이 되는 무용가 최승희의 드문 영상물도 선보인다.

그라운드 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2부 전시의 시작은 해방 공간의 혼란과 분열상을 이쾌대의 '해방고지'(1948년)와 강요배의 '한라산 자락 사람들'(1992)을 대비시켜 보여 준다.

이어 한국전쟁과 민족분단의 비극, 이에 따른 반공 이데올로기 등을 다룬 다양한 작품을 병치해 주제를 부각시키고 있다. 변영원의 '반공여혼'(1952), 이중섭의 '투우'(1956)와 구본창의 한국전쟁 관련 사진들(2010), 신세대 작가 조습의 '그날이 오면'을 함께 연출해 흥미를 돋운다.

또 장욱진의 '나룻배'(1951), 박수근의 '시장'(1950년대) 등 고단했던 서민들의 삶을 담은 작품들과 기억을 통해 과거를 재구성한 윤석남의 '어머니Ⅱ-딸과 아들'(1993), 안창홍의 '봄날은 간다'(2005) 등을 비교해 보도록 했다.

1960~70년 대 '박정희'로 상징되는 산업화, 새마을운동과 유신, 민주화 등의 기억도 회화(이종상 '작업', 1962), 사진 등을 통해 되살려지고, 백남준, 권진규, 전혁림 등의 작품은 당대 미술계의 변화와 혁신을 보여준다.

이상헌, '조선의 낙조', 2006
1980년대 이후는 우리의 일상 문화, 사회와 역사에 대한 관심이 미술계에 본격적으로 확산된 시기로 김용태의 'DMZ'(1989), 신학철의 '한국근대사-종합'(1982~1983)은 한국사회의 풍속도, 거대서사를 형상화한 경향을, 서도호의 '유니폼/들:자화상/들:나의39년인생'(2006)은 개인적 경험과 기억을 토대로 한국사회의 문화적 정체성을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2000년대를 전후해 오늘에 이르는 한국 현대사의 모습은 풍요로워진 자본주의의 양면성(오형근 '아줌마' 1997, 김기라 '코카킬러', 2010), 재개발(안세권 '서울, 침묵의 풍경', 2011), 전통과 현대의 혼재(구성수 '마술적 리얼리티', 2005), 다문화사회(김옥선 '해피투게더',2002-2004) 등을 통해 드러낸다.

전시장을 돌아 보면 우리 근현대사를 일람하거나 현장에 와 있는 듯한 생생한 감흥을 경험하게 된다. 리움 측이 "기성세대에겐 그간의 세월을 회고하는 계기가 되고, 청소년들에겐 우리의 문화와 역사를 이해하고 좀 더 친근해지는 기회가 되길 기대한다"고 말한 것과도 부합한다.

역사와 기억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가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하는 전시는 6월 5일까지 계속된다.


이쾌대, '해방고지', 1948

박종진 기자 jjpark@hk.co.kr